“미래의 유산으로 남는다면 여한 없어”
“미래의 유산으로 남는다면 여한 없어”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9.04.14 09: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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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선 전 광주광역시 환경시설공단 이사장

조선중기 가사문학의 산실 송강 정철(1536~1593)유적지가 생태문화마을로 거듭난다. 이는 송강 16대손인 정구선(70), 홍혜미(64) 부부의 ‘통 큰’ 기부가 있어 가능했는데 정씨 부부는 지난달 24일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 일대 토지 4만㎡와 건물 3동(20여억원 상당)을 자연환경국민신탁(이하 국민신탁)에 흔쾌히 내놓았다.

정씨는 “모두의 미래자산으로 남기는 것이 문화유산을 의미 있게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이를 통해 송강 선생의 문학 혼(魂)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길 바란다”고 기증이유를 밝혔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밀알운동에 뛰어든 뒤 반평생을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정씨를 9일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바람소리’에서 만났다.

▲ 정구선씨는 1939년 전남 담양출생으로 58년 대학생활 중 밀알회를 결성해 농민운동, 신협운동, 민주화와 환경운동 등 시민운동에 헌신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초대의장, (사)무보협 상임의장, (재)무등산공유화재단 상임이사, 자연환경국민신탁 설립위원을 지냈다. 2002년 광주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하기도 했다. 폭넓은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광주시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장, 광주시 환경시설공단 이사장 등 공직을 역임했다.
-. 밀알운동, 환경운동하면서 특별한 가치관이나 소신이 있었다면?

전남대 농대생 7명이 주축이 돼 만든 ‘밀알회’를 시작으로 봉사활동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후 광주YMCA 등에서 사회교육운동을 했는데 씨알 함석헌 선생 등의 영향이 컸다. 백성이 깨어야 나라가 살고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밑바탕에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끊임없는 사회교육운동을 통해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지역을 변화시키려면 시민들의 힘이 모여야 한다.

-. 농촌지도소와 군청 산림과 공무원, 밀알신협 이사장, 신문사 광고국장, 증권사 업무추진본부장, 건설회사 CEO, 공직생활 등 참 많은 직업을 거쳤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시민단체 활동이란 게 원체 배고픈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다행히 발이 넓어 항상 날 오라는 곳은 많았다. 하지만 평생 동안 시민운동이 1순위였지 개인적인 영달 때문에 직장을 선택하진 않았다. 그 때마다 사심 없이 열심히 일했고 가는 곳마다 일 못한다는 소린 듣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이날까지 두 짐을 지고 뛰었지만 내 꿈은 언제나 시민단체에서 월급 받고 원 없이 일해 보는 것이었다.

-. 선생을 말할 때 밀알운동을 빼놓을 수 없는데.

71년 6월 28일 밀알신협과 함께 광주YMCA, 광주YWCA 세 개의 신협을 같은 날 창립했다. 전국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엄혹했던 유신시대에 합법적인 협동조합운동으로 경제운동과 간접적인 민주화운동을 병행하자는 뜻이 있었다. 정권이 새마을운동을 마구 밀어붙일 때 민간운동을 하자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총 네 번의 신협 이사장을 거쳤고 83년까지 밀알중앙회 임원을 했다.

-. 송강 유적은 어떻게 기증하게 됐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문화유산을 미래의 자산으로 남기자는 결심을 했다. 개인이 가지고 있어봤자 더 좋게 만들 수도 없고 선조의 문화유산을 잘 가꿔 유용하게 쓰였으면 싶었다. 사유재산보다는 공유재산이 많은 나라가 좋은 사회다. 지자체에 기증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영국에 가서 국민신탁을 통해 옛 성터가 잘 보존된 것을 보고 지난 추석 때 가족회의를 열어 뜻을 모았다.

-. 반대 의견은 없었나.

밀알회 하면서 집과 땅을 여러 번 날리고 84년 건설회사 부도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가 평생을 은행 빚 갚느라 생활고에 시달린 점 아직도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이번에 기증한 땅도 아내의 교직생활 퇴직금을 털어 지난해에야 모든 빚을 청산하고 깨끗한 상태로 기증했다.

지금의 식당 부지는 전적으로 아내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하려면 전부 내놓아야 한다며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통도 크고 대단한 사람이다. 또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아들과 예일대 박사출신 며느리도 흔쾌히 동의하고 이곳을 어떻게 잘 가꿀 것인지 매일 궁리 중이다. 가족들이 큰 힘이 됐고 자랑스럽다.                     
 
-. 어떻게 조성되었으면 싶은가.

영국은 5대양 6대주를 침략하면서도 셰익스피어를 늘 앞세웠고 독일도 나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독일문화원 이름을 ‘괴테 인스티튜트’로 지었다. 한반도는 앞으로 지정학적 위치 상 주변 열강들의 국제교류의 장소가 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부국이 아닌 부드러운 문화와 환경을 중요한 테마로 내세워야 한다. 

송강은 고산 윤선도와 함께 한글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분이다. 송강 문학이 탄생한 이 곳, 무등산과 가사문학관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들고 싶다. 또 송강은 기념비적인 문학 업적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싸움에 휘말린 바도 있어 이곳이 화해의 집, 평화의 집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무엇보다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 되기보다 미래를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창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등산 보존이 세계 브랜드로 키우는 길"


-. 특별히 국민신탁에 맡긴 이유는.

환경부의 위촉으로 2005년부터 설립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2005년 특별법이 통과돼 2007년 설립된 국민신탁은 민간특수법인으로 제3섹터 성격이 강하다. 정부와 지자체에 기부하면 단기간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조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국민신탁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간에 상관없이 긴 안목으로 조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정주민을 내쫓지 않고 같이 참여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꿔나가는 공존의 방식이 맘에 들었다. 내 개인 것이라면 불가능할 일을 여럿이 공유함으로써 훌륭하게 가꿔나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의장, 광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을 지냈다. 무등산개발조례를 놓고 논란 중인데.

무등산은 기암괴석이 많다든지 특별한 특색이 있는 산이 아니다. 관광개발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무등산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려면 손대지 말고 그대로 아름답게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등산만큼 도심에서 가깝고 산책하기 좋은 곳이 어디 있는가. 이왕 어등산을 개발하기로 했다면 무등산은 보존해야 한다.

케이블카 개발은 절대 반대다. 자동차를 타고 상봉까지 오를 수 있는 마당에 무슨 케이블카를 말하는가.

-. 광주시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장과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할 거면 단체장을 해야겠더라(일동 웃음). 빠듯한 예산가지고 창의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재량이 거의 없다. 예산이 있어야 아이디어 혁신도 하고 창의적인 발상도 하는데 금 그어주고 그 안에서 노라 하니 조금은 답답했다. 그래도 밀알 일을 오래해 없는 예산을 쪼개 적지 않은 기금을 불려놓고 나왔다.

환경시설공단에서 일할 때는 음식물사료화공장에서 전국 최초로 사료화 퇴비화에 성공하고 10만ppm 오폐수를 2000ppm이하로 만들어 배출하는 하수종말처리시설이 환경부 시범시설로 지정받았다.

-. 시민운동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일부 시민단체가 정치권과 손을 잡거나 이권운동으로 전락한 데 대해서는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시민단체의 질이 떨어지면 더 이상 시민단체라 부를 수 없다. 시민운동이 시민의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수하고 인간적인 인재들이 활동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기반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여력이 된다면 젊은 활동가들을 후원하는 밀알들을 모아 NGO센터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젊어서부터 마음 놓고 해보고 싶은 일 못한 것이 여한으로 남았다. 

-. 지역발전을 위해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광주의 랜드마크는 무등산과 극락천이다. 이 두 곳을 시민들이 쉬고 즐길 수 있도록 잘 보존하고 가꿔나가야 한다. 5·18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정신적인 지주로 가꿔나가야 한다. 광주는 평등사회를 위해 앞장 서 싸워왔다. 이제는 좌우대립의 시대는 지났다. 화합과 통합의 시대를 위해 서로가 노력해야 할 때다. 그리고 앞으로는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광주전남은 문화원형이 그런 대로 잘 보존된 곳이다. 긴 안목으로 10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단기적인 안목으론 졸속 개발에 그칠 뿐이다. 생각이 커져야 하고 가슴이 넓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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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2009-04-14 22:09:21
호남 유림의 씨를 말리다시피 했던 정철의 후손이 그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던 윤선도를 자신의 조상과 나란히 호명하는 모습에서 훗날 전두환의 후손이 광주 시민을 향해 자신의 할아버지는 광주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상상될까요?

무개협 2009-04-15 06:47:16
정철선생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등산개발과 보전에 관해서는 이제 정구선옹의 의식변화는 달라져야한다.
담양남면에 몰리는 인파를 보고도 30년전의 생각을 하는가.
그인파에게 부응하는 누릴수있는 享有의 생각은 안해보았오.
당신이 내놓은 사재에 대해서도 이용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이용되길 원한다면 그생각이 다산선생의 바램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