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도는 시계
거꾸로 도는 시계
  • 리명한
  • 승인 2009.04.0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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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리명한

‘세상에서 죄지은 놈 잡아들이라 하면 가난한 놈부터 잡아 온다’는 속담이 있지만 권력이나 부와 거리가 먼 사람일수록 법이라는 덫에 걸려 치도곤을 맞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오랜 싸움 끝에 제도를 명문화하여 인권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을까 했더니, 억하심정으로 오그려먹겠다고 안달이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힘센 자가 완력 믿고 낮도깨비 짓 못하도록 입으로, 눈으로, 글과 사진으로 감시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발을 묶고 입을 막아 국민들을 듣보지 못하는 부실인간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하니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나폴레옹을 되살려 황제로 맞이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역류하는 시대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대한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자유롭고 살기 좋은 나라 만들자고 울부짖었던 때로부터 육십오 년이 흘렀는데 제대로 된 나라는 만들려 하지 않고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마술놀이를 하고 있으니 아무리 어리석은 민초들일망정 심보를 투시하지 못할 자는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기에 기다리다 지친 몸 가눌 길이 없어 한탄강 가에 가서 한숨을 지어야 할 것인지, 낙화암 찾아 투신의 의지라도 다져야 할 것인지. 역사의 물길은 반세기 넘도록 황하(黃河) 물처럼 맑아지려 하지 않는다.
  
뒷걸음질 하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육십년 만에 싹이 트기 시작한 통일의 나무는 혹독한 한파를 만나 동태로 변하려 하고 있고 일진회원들을 동원하여 난장판을 벌이는가 하면 대문짝에 못을 박고 있으니 갈수록 태산이다.
  
까마득한 그 날 대한민국 국회의장이라는 분이 유럽을 다녀오다가 인도 땅에 들러 중립국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걸려들 뻔했었고 이승만 대통령과 겨루었던 진보당의 조 당수는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는가 하면, 동아일보 김삼규씨는 중립화통일론을 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민족일보 조 사장은 4.19의 감격 속에서 신문 만들어 통일을 외쳤다가 민족을 중흥하고 백성들에게 밀가루를 분배해서 기아를 벗어나게 했다고 자찬해 마지않았던 대통령 손에 걸려 목숨을 잃었었다.

6.15정신 살려나가야
  
오래 살다 보면 좋은 꼴 보게 되는 날도 있다더니, 빌며 고대했던 통일의 날이 가시화되는 듯한 사건이 일어났었으니 그것은 이천 년 유월 십오일이었다.

남북의 수령들이 손을 맞잡고 통일의 지도를 그려 놓고 공동선언 하는 것을 보고 미치도록 환호하며 하나 되는 날이 가까워 왔음을 축복하였건만, 다시 원수가 되어 어금니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게 되어버렸으니 영악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남세스러워 삿갓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촛불이 찬란하게 밤거리를 수놓았다. 가녀린 꽃 한 송이씩을 들고 어떻게 붉은 홍수를 막아보겠다고 했던 것일까. 당랑거철(螳螂拒轍)도 유만부동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라 하였지만 촛불은 거룩한 신의 제단을 밝히고, 부처님 얼굴을 황홀하게 비추어 주고, 아기 내려달라고 암굴 속에서 신령께 빌고 있는 부인의 얼굴도 환하게 해주는 위대한 힘을 잦고 있는, 천하를 바꿀 수 있는 요원의 불길이었다. 그것은 들판에 타고 있는 불이 아니라 거리를 뒤덮은 민중들의 가슴속에 이글거리는 분노였으니, 무소불위의 용맹성을 자랑하는 대통령까지 사죄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민심은 천심인 것이다. 
  
인권 없이 민주 없고 통일 없이 독립 없다. 구태여 지분을 갈라본다면 인권은 온 인류의 공유물이고 통일은 우리 민족의 것인데 참담한 것은 골통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현실 속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두 개의 짐을 지고 숙명과도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현실 속에서 펼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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