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협 선거 ‘오당삼락(五當三落)’
농·수·축협 선거 ‘오당삼락(五當三落)’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3.3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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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업무추진비 눈먼 돈…개인 활동비처럼 전용
농협조직 머슴이 상전행세…고통 수반하는 개혁필요

# ‘오당삼락(五當三落)!’
고3 수험생 이야기가 아니다. 일선 농·수·축협조합장 선거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말이다. 5억 원을 쓰면 당선되고 3억 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의미다. ‘돈 선거’ 세태를 빗댄 일종의 비아냥거림이다.
  
전남지역 조합장 선거가 돈 선거, 금품선거, 흑색선전 등 혼탁으로 얼룩지고 있다. 조합장 선거에서 각종 잡음과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막대한 특혜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이다. 일단 조합장에 당선되면 억대에 가까운 연봉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교육지원 사업비와 법인카드 등 조합장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업무추진비도 어마어마하다. 인사승진을 미끼로 한 금품수수, 마트납입 물품의 구매와 판매에 따른 구전(口錢) 챙기기, 각종 공사 인·허가 과정의 리베이트 수수 등의 유혹도 만만찮다.
  
전농 광주전남연맹 정영석 사무처장은 “과장에서 상무로 진급하는데 3,000만원, 상무에서 전무가 되는데 5,000만원이 든다는 말이 있다”며 “이런 이야기는 이제 조합원들 사이에서 비밀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게다가 현직 조합장은 조합 돈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프리미엄을 누린다. 각종 선심정책으로 조합원들의 표심을 잡고 합법적으로 조직관리가 가능한 까닭이다. 일선조합장들은 주요 요직에 있는 사람과 표를 움직이는 사람, 내부비판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며 조직 관리를 하고 있다. 현행 농협법에 따르면 조합장이 내부조직 관리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합법적이다.
  
차기 조합장으로 나설만한 내부 직원들에게는 명예퇴직 위로금을 듬뿍 안겨주며 후보출마를 만류하기도 한다. 경쟁이 될 만한 인사들은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거나 아예 한직으로 보내 버린다. 목포수협이 조합장에 출마하려던 한 예비후보자의 자격을 박탈한 것이 그 사례다.
  
조합장 자리가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출마 등 정계입문의 필수코스라는 점도 선거과열의 한 요인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권도 조합장의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다.

조합장 관리 하에 있는 마을 영농회장, 부녀회장, 농협이사, 대의원들이 표밭갈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조합장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현실이다.
  
정 처장은 “과거에는 유력정치인의 조직을 면장이 관리했다면 지금은 조합장이 관리하고 있다”며 “조합장이 지역경제권을 장악하고 직선으로 선출되다 보니 면장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협 비리 척결을 위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농협 본점을 항의방문했다. ⓒ 나주농민회
 
# ‘주먹구구’

지역농협의 비전문성을 두고 한말이다. 지역농협의 금융사고가 타 금융권보다 높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인맥중심의 직원특채가 부른 필연적 산물이다. 지역사회 특유의 형님-동생문화에 기인 탓이 크다. 특히 조합장이 선거과정의 공신목록을 일차적으로 관리하다보니 인사와 대출비리의 난맥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조합장의 경우 임기 내에 ‘본전’을 챙기고 ‘여유 실탄’까지 확보하려다 보니 대출비리 등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조합장은 이 때문에 임·직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합의 연체 채권율이 높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조합장이 선거를 도와준 사람의 채권을 회수하지 않고 있어서다. 연체가 누적되면 규정에 따라 채권을 확보하고 처분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조합장들은 또 조합원들에게 될 수 있으면 많은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조합손실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다.
  
정 처장은 “일부조합이 적자 손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익이 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재고자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며 “현재 농협의 고정자산을 재평가하게 되면 대손충당금 등 다방면에서 여러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의 부실을 부르는 요인으로 법인카드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법인카드는 조합장과 전무, 상무, 지도과장 등이 사용하고 있다.
  
정 처장은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카드깡, 유흥업소 접대비 등 여러 가지 불법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남 모 농협에서는 법인카드로 기백만원의 유흥접대비를 사용한 예도 있다.
  
농협중앙회는 법인카드 1년 사용한도를 1,200만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추진비는 매출과 규모에 따라 농협별로 차이가 있지만 산출 공식에 따라 책정되고 있다.
  
정 처장은 “조합장이 사용하는 업무추진비와 교육지원 사업비, 각종 협찬 비는 눈먼 돈”이라며 “조합장이 마치 개인 활동비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농협법 개혁안에서는 조합장이 개인 명의로 각종 경조사비를 지출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 ‘개혁요원’
 농민회 등 농민단체들은 지역농협 개혁을 위해 ▲중앙회장의 권한 축소 ▲자산규모 1,500억 원 이상 지역농협 조합장의 비상임화 의무화 ▲조합선택권 광역단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농협법 개정안’의 통과여부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중앙회장 및 지역농협조합장 비상임화에 대해 일선 조합장들이 강력반발하고 있어서다. 농협노조도 농협통폐합으로 인한 구조조정을 이유로 반대 입장에 합류한 양상이다. 민주당 역시 농협법 개정안을 ‘MB악법’으로 분류해 놓았다.
  
정 처장은 “농협노조가 조합원들의 복리와 후생만 챙기고 있다”며 “농협법 개혁안 통과가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5일 일선농협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일선 조합장들이 중앙회장 해임권고안 제출을 시도한 것. 중앙회장이 간선제와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한 이사 선출안의 수용을 언급하고 나섰기 때문. 결국 중앙회장은 일선 조합장들의 ‘새벽거사’에 밀려 ‘개인의견’이라며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민주당도 농협개혁안에 부정적이다. 현재 농협개혁안대로 진행되면 중앙회는 정부가 장악하고 지역농협은 농민단체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협개혁의 칼날이 중앙회 내부 구여권 인맥을 향하고 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일선 조합장들은 비상임화 의무화 조항에 강력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전형적인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판했다. 광주전남연맹 변덕중 정책국장은 “조합장이 비상임화 되면 보수도 줄고 먹을 것이 없게 된다”며 “일선 조합장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 국장은 또 “농협이 현재 상황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며 “농협이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협이 농민소득을 보장하고 농가상품을 판매하는 농정업무, 농정활동, 대정부 홍보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외도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위에도 불구하고 농협개혁에 대한 아래로부터 역풍이 만만치 않다. 지역사회가 지연-혈연-학연으로 촘촘하게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는 까닭이다.

변 국장은 “조합에 문제라도 제기하면 가장 친한 사람이 찾아와 호소하고 관리를 한다”며 “조합장이 경영인인데다 정치적 역량까지 갖춰 상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변 국장은 또 “대의원들이 개혁을 요구하면 조합장이 “이러다 조합 망한다”고 소문을 낸다”며 “그러면 농민조합원들이 “도둑을 잡되 다치지 않게 잡으라”고 한다”고 기가 막혀 했다.
  
변 국장은 농협개혁이 안 되는 이유로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처지를 들었다. 조합원들이 농협의 채무자 신세라는 것이다.
  
변 국장은 “지금 농협은 머슴이 상전행세를 하는 주객이 전도된 조직”이라며 “조합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껍질을 벗기는 고통으로 개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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