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 저수지 시뻘겋게 울다
풍암 저수지 시뻘겋게 울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3.30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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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호수공원 조성한다더니…인공물로 떡칠”
구청장 ‘치적용’ 전시행정…습지 파괴 등 난개발

▲ 친환경 호수공원으로 조성한다던 서구 풍암저수지가 애초의 자연미를 걷어내고 인공구조물을 덧씌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과연 인간의 이기와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햇볕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햇살을 머금은 물빛은 서럽게 고왔다. 창졸간에 쉼터를 잃어버린 물새는 구슬피 울었다. 새순이 돋아나던 가지는 포클레인의 난폭한 삽질로 찢기고 부러져 나갔다. 파랗게 물들어가던 수변경관은 인공석축이 들어서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연꽃군락과 습지도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흐르던 물길은 육중한 보에 가로막혔다. 콘크리트 배수관과 검정색 PVC 관에서 간신히 흘러나온 물이 주변을 할끔거린다. 3월의 화창한 봄날, 서호팔경(西湖八景)의 하나라던 풍암 호수는 한마디로 기괴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친환경 호수공원을 조성한다더니 인공구조물로 떡칠을 하고 있네 그려.”
지나가던 노인이 “카악”하고 가래침을 내뱉는다. 언짢은 표정 속 간간히 무언가 잔뜩 뒤틀린 심사가 끈적하게 묻어난다.

“연꽃이랑 수생식물이 지천이었는데 왜 다 뽑아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더 심어도 부족할 판국에.”저수지를 바라보던 또 다른 시민은 입안에서 ‘끌끌’하고 혀 차는 소리가 연신 끊이지 않았다.

수천 년을 지내오는 동안 호수의 터줏대감 노릇을 했던 뭍 생명들이 속절없이 쫓겨나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내치는 또 다른 강제철거의 현장이다. 반쯤 흙에 묻힌 파란 새싹들이 하염없이 두 눈에 밟혀왔다. 

‘아름다운 서구를 걸읍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냥 신이 나는 모양이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품새에는 얼핏 자부심도 묻어나는 것 같았다. 주변 환경개선이 가져다 줄 실익에 주판알을 퉁기느라 바쁘다. “환경이 밥 먹여 주냐”는 코웃음 소리도 들린다. 당장 집값 오르고 땅값 올라 내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놀부 심보에 다름 아니다.

호수중앙에서 뿜어져 나올 ‘분수’와 호수 위를 지나는 ‘목교’가 보여줄 인공미만 눈에 선하다. 풍암 호수가 내뱉는 고통과 신음소리는 한낱 불평거리에 불과하다. 쉴 곳을 잃은 새들의 고단함은 그저 호강에 겨운 사치거리다. 나무를 베어내고 평평하게 돋아버린 습지에 묻힌 뭍 생명들의 죽음은 인간의 안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체 인간의 이기와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친환경 개발을 한다면서 호수공원 곳곳에 인공구조물을 쳐 박은 것은 일종의 학살행위다. 구청장 치적만 눈에 보일뿐 애초부터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던 까닭이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 부른 비극적 참사다. 자연은 인간의 눈요깃감을 위한 부속물이 아니다.

그간 호수 생물은 인간 없이도 잘 지냈다. 아니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을 때 호수는 평화 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생식물이 자생할 수 있는 공간엔 인공구조물과 관상용 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물결이 핏물인지 진흙탕물인지 시뻘겋게 울고 있다.

‘풍류와 생태가 어우러지는 풍암 호수 공원.
호수는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풍류이며 무엇을 위한 생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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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산 2009-03-31 14:05:39
앞으로 지역을 개발할때 제발 생태전문가를 모셔서 도시를 디자인하라.
생태적 개발이란 미명아래 소박한 아름다움이 다 사라진다면 무슨 소용이냐.
무너진 산책길 보수하고 그렇게 시작하더니 갑자기 대규모 토목공사로 발전하는
풍암저수지 개발,저수지 길을 걸으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