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게임’과 남북관계
‘겁쟁이 게임’과 남북관계
  • 최용선
  • 승인 2009.03.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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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선(전남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경제학에서 행위자의 합리적 선택을 설명하기 위해 ‘겁쟁이 게임(chicken game)’을 흔히 예로 든다. 이 게임은 도로의 양쪽에서 A와 B라는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까지 핸들을 꺾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패배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겁쟁이’라는 놀림을 받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핸들을 꺾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두 사람 모두 핸들을 끝까지 꺾지 않으면, 충돌로 인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가 만약 A라면, B가 어떤 선택을 취할지를 예상할 수 있다면, 어떠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까. 
  
냉전반북주의로 무장한 이명박 정권은 집권과 더불어 남북관계를 ‘겁쟁이 게임’ 상태로 되돌려 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비핵·개방·3000’과 같은 경직된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 대결주의에 익숙한 세력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강경행동을 촉진시켰다. 특히 작년 여름 우발적인 금강산 관광객 총격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북한을 자극했다.
  
남북관계, 겁쟁이 게임 양상
  
남북관계가 좋았다면 슬기롭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우리 정부는 2001년 이후 줄곧 이어지던 북한에 대한 정부차원의 인도적 식량지원과 비료지원, 북한의 경제회생에 필요한 경공업 원자재 지원도 끊어버렸다. 그리고 국제사회를 통한 북한압박을 모색했다.
  

북한도 작년 3월 이후 당국자 간 모든 대화를 중단하고, 올해 들어서는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폐쇄마저도 언급하며 남측인원의 출입제한 조치를 반복하고 있다. 꽃게잡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월 이후에는 서해상 NLL에서 과거 서해교전과 같은 극단적인 군사적 충돌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이제 북한도 ‘겁쟁이 게임’에 가속 기어를 넣으며 돌진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남북관계를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단기적 처방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현재 대북정책의 목표를 남북관계 진전에 두고 있지 않음을 내비쳤다. 이번기회에 북한을 제대로 굴복시키겠다는 뜻을 꺾지 않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문제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겁쟁이 게임’이 한반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걱정해야 한다는데 있다. 남북관계가 좋던 시절에는 국지적으로 발생한 안보리스크가 우리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데 반해 이제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개성공단 폐쇄’시 우리경제가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손실이 2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통일부가 내세우는 7,300억원의 30배에 달하는 규모다.
  
안보리스크, 경제 불안 가중시켜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침체 상황에서 안보리스크의 발생으로 인한 남북관계 악화는 국내경제의 불안·침체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해외투자자들의 자금회수를 촉진시킬 가능성도 높다. 때문에 우리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더 이상 남북관계에서 ‘겁쟁이 게임’이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 “남북 간의 합의 정신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에 진정성이 있다면, 지난 10년간 남북이 쌓아온 ‘남북 간 합의정신’의 기조가 더 이상 불필요한 ‘겁쟁이 게임’을 하지 말자는데 있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을 한번 굴복 시키자고,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반 토막 나버린 나라경제를 더 거덜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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