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장이다”
“나는 사기장이다”
  • 범현이
  • 승인 2009.03.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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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만 만드는 도예가 이상목(50)

 어둑해져가는 시간. 날마다 다니는 길을 잘못 들어섰다. 너무 익숙해 굳이 핸들 조종을 하지 않더라도 자동차 바퀴가 스스로 알아서 갈 길이었다. 너무 혹사를 시켰거나 아니면, 익숙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개척하고 싶었던 걸까. 골목을 들어서서야 잘못 들어선 길임을 안다.

완전 투명유리 속, 환한 불빛이 가득 새어 나오는 건물 모서리를 보고서 웃음이 나온다. <남도 사발 이야기>라고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오전에 통화를 한 이상목 씨가 거기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제 새로 작업실 이사했으니 담에 봅시다”며 이사한 위치도 알려주지 않던 작가였다. 바퀴가 새로운 길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기억해내 미리 찾아간 것이다.

▲ 공예가 이상목.

조선 땅에는 각 지방마다 독특한 사발이 있어

국어사전을 펼치자 <사발(沙鉢)>은 ‘사기로 만든 밥그릇이나 국그릇. 아래는 좁고 위는 넓은 모양임’이라고 정의가 표기되어 있다. 지금껏 막연하게 순우리말일 것이라 여겼던 사발이란 단어도 한문으로 이루어진 단어였음을 안다.

작가는 그 많은 도자기 형태 중 사발만을 제작한다. 물레를 사용해 만들어진 사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모양이 아닌 각기 다른 모양의 선을 유지한 사발의 형태를 유지한다. 전통의 사발은 대부분이 넓이 14.2cm~15.8cm, 높이 7.8cm~8.4cm, 450g~480g의 중량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작가는 크게 구애받지도 않는다. 단지 사발의 선과 쓰임새에 주목할 뿐이다.

사발만을 만든 작가가 또 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스스로를 조선의 마지막 사기장이라 칭하던 전통 조선사발의 선구자 고 신정희(申正熙) 옹이다. 아버지의 명맥을 이은 그의 아들 신한균은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밀쳐두고 소설도 한 권 펴냈다. 이유는 단지 우리 사발에 대한 정확한 알림을 위해서다.

<젊은 시절 나는 그 사발들을 알고 싶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 때 나는 우리 사발이 각 지방 사람들의 심성과 기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사발은 보지 못했다만, 경상도 사발은 섬머섬애, 전라도 사발은 새악시, 충청도 사발은 부잣집 맏며느리 같았지. 경기도 사발은 기생 같았고, 강릉 사발은 경상도 사발처럼 투박했다. 전라도 땅에 갔을 때 덤벙이 분청자 제기를 보았다. 그 덤벙이 분청자는 다른 제기와는 달리 다정하고 부드러웠단다. 형태는 파격적이었지만 자연미가 그대로 녹아 있었어. 우리 백성의 삶과 죽음, 심성과 생활을 모두 담은 그릇처럼 느껴졌단다. - 신의 그릇1 / 신한균, 아우라. 2008>

사발 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을 담아

‘사발’은 원래 밥이나 국, 술 등을 담는 우리 고유의 그릇이다. 작가의 작품은 수공예적이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사발이다. 사발로는 막사발 종류가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분청사기, 청자, 백자 순이다.

“막사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조상들의 유물은 국내 어디에도 없다. 사발전쟁이라 불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격하시킨 이름을 우리가 무성의하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하는 작가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까지 탐욕을 부렸던 품목인 그 사발만을 빚어낸다.

“우리 사발의 특징을 한데 보여주는 게 분청사발이고 묵직하면서도 손에 딱 걸리는 맛은 분청사발에서만 난다”면서 분청사기에 힘 있게 돌아가는 귀얄기법, 묵직하게 발라지는 덤벙기법 등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기법이라고 설명한다.

덤벙기법은 초벌구이한 작품을 유약 안에 덤벙 넣어서 유약의 흐름이나 효과를 보는 기법이며 귀얄기법은 귀얄붓을 이용해 백색토로 원형을 추상화해서 그려 넣은 기법이다.

“사발은 물레작업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컵이나 쉬운 작품들을 만들고 잠깐 거쳐 가는 작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면서 “가장 간단해 보이지만 하면 할수록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고 설명한다. 너무나 조그마한 부분이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자신이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에도 작가는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며 자신을 집착한다.

“하면 할수록 힘들어진다. 조그만 변화가 내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선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에 내 눈에 변화무쌍하게 보여 잠시도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한국미협, 광주전남도예가협회, 신도예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발 - 너는 내 운명

98년부터 사발을 애인으로 어루만졌으니 10년차가 넘었다. 작가의 사발은 굽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주로 사용하는 흙은 신청토, 조형토이며 모래성분이 함유된 재료까지 사용해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유약으로는 바르는 화장토부터 무광재유, 투명유, 사피유 등을 사용하며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흑유다. “구워내면 온통 검정색으로 빛나는 흑유를 좋아한다.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이다”고 덧붙인다.

2008년, 서울의 전시에서도 작가는 사발만을 고집했다. “꼭 사발만을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하면 할수록 사발의 선, 사발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다”고 웃으며 고백한다.

작업실 벽에는 처음 사발 작업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시간별로 선을 비교하고하고 있다. 분청에서부터 온갖 형태의 선을 가진 다양한 사발들이 일렬로 서 있다.

서양의 도자기 책에는 우리의 막사발들이 흔히 티볼(Tea bowl)로 쓰여 있다. 고유명사가 아닌 티볼은 우리가 고쳐 나가야 할 이름이다. 이것은 물론 일본책들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사발은 세계의 도예가들에게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예술적인 차 사발로 자리 잡고 있어서 국내의 여러 박물관을 찾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것들을 볼 수 없다. 임진왜란 때 모두 침탈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기장이다

“나는 사기장이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 모두다 우리의 도자기이다. 그런데 나는 분청사기만 만든다. 세계 도자사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했던 도자기가 분청사기이다.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가며, 간결한 그림이지만 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분청사기가 좋다.
여러 형태 중에서 나는 사발만 한다. 우리 사발의 특징이 있는 사발, 묵직하면서 손에 딱 걸리는 맛이 느껴지는 분청사발이 나는 좋다. 힘 있게 돌아가는 귀얄기법, 묵직하게 발라지는 덤벙기법, 내가 좋아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게 사발이다. 늘 하는 작업이지만 눈에 보이는 선은 항상 다르다. 정말 모르겠는게 사발 선이다. 나는 오늘도 그 신비로운 사발 선을 찾아보고자 노력한다.“ - 사기장 생각. 작가노트 중에서

“30회까지 개인전을 하면 무언가 보이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세계로 내놓을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바람이에요”

문의 : 011-602-6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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