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 길을 나서다.
무의식 - 길을 나서다.
  • 범현이
  • 승인 2009.03.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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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과 실로 인연을 따라 길을 나서는 작가 오영정(30)

봄을 맞은 작업실 마당은 햇살이 따사롭다. 작은 토분들 하나하나마다 들꽃들이 새싹을 틔우고 있다. 신선한 바람에 따사로운 햇살이 어우러져 도심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당 한쪽, 방금 연탄 광을 뒹굴고 나온 것 같은 흑연색의 삽살개가 웃음이 나온다. 눈을 다 가려버린, 기다랗고 푹신해 보이는 털을 가진 삽살개다.

프랑스 작가가 지난여름 머물고 걸어두고 갔다는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상의 소리를 들려준다. 처마를 올려다보다 깜짝 놀란다. 거기에 지금은 이미 사라져버려 찾아보기에도 힘든 제비 집이 붙어있다.

작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광주 근교이다. “광주에서 20분도 걸리지 않는 이곳은 완전 청명해요. 공기도 신선하고 너무 맑아 때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사는 느낌을 받곤 해요” 말하는 작가의 눈빛이 하늘을 닮아 맑고 푸르다.

▲ 오영정 作 「관계」

기억에 못을 박아 인연의 실을 길게 늘어트리다


망치가 되고 바늘이 되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 동안 스스로 육탈한다. 짧지만 날카롭고 선명한 못으로 궤적을 꿰뚫으며 스스로 비명을 지른다. 붉은 바탕 위에는 붉게 소리 지르고, 노랑 바탕 위에서는 노란 안심을 나타낸다.

인연을 따라 스스로의 내면을 중첩 시키며 새로운 못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크기와 길이가 다른 세 가지의 못들이 피아노처럼 세상을 연주하며 운율을 따라가 색실을 만나고 비단결로 휘감긴다. 비로소 작품으로 완성된 못과 실은 이내 작가의 세상이 된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새롭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항상 알고 있었고 늘 경험하고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란 뜻이다. “그 안에서 파생되는 관계를 재배열 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누구나 감정적 충격을 느끼게 하고 싶을 뿐이다”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한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하는 무의식적 욕망이나 기억의 실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작가가 그림 안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일상적인 패턴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조차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견고한 일들이 일어나고 또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인 지 알리고 싶은 것이다.

▲ 오영정 作 「소음」

마음으로 빚어진 표정들 - 길을 나서다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은 2008년 중국 북경의 ‘송좡 국제 미술제’ 초청작가로 송좡 예술 특구 한국관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 일부다. 중국에서만 전시 됐을 뿐 국내에서는 아무 곳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일일이 계산된 치밀함으로 못을 박고 가느다란 실을 연결해 형상을 만들어 낸 작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 보는 관람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낸다. 50cm·50cm의 작은 네모들이 서로 이어지고 인연으로 연결되어 모자이크로 작가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작은 네모들을 서로 연결하고 모양을 맞추면 작은 네모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다시 열린다.

<닫아버린 진실>에서는 텅 비어 있는 화면 곳곳에 몸통에서 각각 분리 된 눈빛, 방향을 잃은 다리, 무언가를 듣고자 노력하는 귀가 아주 조그만 나무 그늘을 중심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닫아버린 진실이 느껴진다. 어쩌면 닫아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인가의 소통을 아예 절단해 버린 듯하다.

▲ 오영정 作 「시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시리즈.

<시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시리즈는 한마다로 우울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무언가가 속내를 들켜버려 깜짝 놀라게 한다. 우울한 가라앉은 깊은 눈빛, 반만 보여주는 얼굴, 그 반쪽의 얼굴과 얼굴이 모여 시간과 시간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다시 우울함이 모여 더 깊은 내면을 드러내 한 번만 더 들여다 봐주려고 강렬한 메시지를 보낸다.

<관계>에서는 텅 빈 몸통 안, 줄이 달린 형체를 가진 사람들이 그네놀이를 즐긴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몸 통 안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반쪽마저 불완전한 얼굴들이 형체를 찾아가기 위한 여행을 즐긴다. 작가가 말하려하는 것이 무엇인 지 조금은 알겠다.

▲ 오영정 作 「만찬을 즐기다」

건조한 못과 실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

각각의 조형으로 빚어진 못과 실을 따라가다 보면 형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군상들이 놀랍다. 가느다란 실이 놀라울 정도로 얼굴의 표정들이 각각 살아 움직인다. 마음으로 빚어진 표정들이다. 가느다란 눈, 동그란 표정, 손과 발 등 인체를 비롯해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들이 바로 그 안에 가느다란 실과 못으로 직립으로 표현되어 있다.

못이란 소재가 딱딱함과 건조함을 안겨주기보다 서로서로 이어진 실들로 인해 오히려 편안한 인상을 준다. 갖가지 색의 실도 작가가 의도한 바를 살려주기에 충분하다. 바탕의 빛나는 윤기 나는 액자 안, 색들은 고광택을 자랑하는 자동차 도료를 사용했다.

▲ 오영정 作 「닫혀버린 진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15점으로 <만찬을 즐기다>, <마음의 도피>, <닫아버린 진실>, <소음>, <관계>, <시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등 인간 내면에 흐르는 중첩된 자아를 들여다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퍼포먼스도 즐겨한다. 자신의 작품 안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언어들을 익숙한 몸짓으로 풀어내 몸으로 표현해낸다. 작가는 조선대에서 섬유를 전공했으며 지난 2008년 동안에도 일본 국제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발 초청작가, 광주 국제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발 초청작가, 부산국제미술제 초청작가, 5.18민중항쟁 28주년 기념 도청기획전, 신개념 목포오거리 다방전 등 왕성한 활동이 돋보였으며 현재는 5월 공연 예정인 광주 인권 아트 퍼포먼스를 기획· 준비 중이다.

일시 : 4월15일(수)까지
장소 : 임동 오거리 북광주 우체국갤러리
문의 : 010-7914-0833

▲ 오영정 作 「마음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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