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향기를 찾아서
매화꽃 향기를 찾아서
  • 전고필
  • 승인 2009.03.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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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산이면의 보해매화농원

2월초 낯선 전화번호가 울렸다. 해남하고도 산이면에서 온 전화였다. 산이면 사무소에 근무한다면서 산이면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래 매화꽃을 보러 세 번 정도 찾았다고 했다.     

과거 같았으면 그 땅은 뻘 낙지로 유명한 땅이었을 터인데 간척으로 인해 갯벌에 기대인 삶 보다는 밭농사 중심으로 바뀐 곳 아니냐는 것이 내가 아는 산이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그러자 산이에서 매화축제를 준비하고 있으니 도와 달라고 청한다.
  
워낙 지역의 인지도가 낮다 보니 매화를 매개로 하여 지역을 알리는 축제를 해 보려는데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몇 개의 축제를 관여했지만 신통치 않았던 기억이다. 추구하는 이상과 지역에서 마주친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며 마당을 깔아 놓았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언제나 미미했던 것이다. 특히나 돈이 많이 들어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아찔하지만 길 위에서 생기는 일들은 모두 배움이 있는 터라 자세를 가다듬고 얼마정도의 예산을 두시냐고 여쭸다. 4천만 원이란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돈이기도 하지만 다른 여타의 축제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금액이다. 게다가 기획자의 의도에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말씀까지 이어진다. 그럼 축제가 시끄럽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다. 조용하면서 마음에 간직하는 축제로 바라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2009년 2월 초부터 산이면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2월 5일 내려간 산이에서 추진위원들과 만나고 오랜만에 보해 매실농원에 들어갔다.

▲ 역시 하얀 매화의 청아한 모습에 푸른 봄보리가 제격이다. 보해가 치르는 사진대회처럼 몇 명 원색 옷 입은 사람 앉혀두고 싶지만 바람 탓인지 아무도 없다.
  
197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농원은 전체 면적이 14만평에 이른다. 구릉지를 이용하여 식재한 매실은 총 7개의 단지로 나뉘어져 있고 그 모습을 보면 마치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땅은 산이의 90%를 덮고 있는 황토 그대로였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중인 ‘탐매 전’에 등장하는 매화나무처럼 그렇게 재래종이 중심이 되고 교배종까지 합하면 총 50여 종의 청매와 홍매, 백매들이 산개해 있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인지라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는 매화들이 있고, 조급한 매화는 볕 바른 곳에서 이미 꽃을 피워 올리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마주치기 시작한 매화는 매 주 간격으로 한 번씩 나와 상면하였다.
  
2월 초순임에도 곧 피워 올릴 것 같았던 매화 덕분에 축제시작일인 3월 21일 이전에 피워버리면 어쩔까 라는 조바심도 주었지만 가끔씩 내려주는 고마운 비와 서슬 파란 해풍이 찾아와서 매화의 이른 개화를 늦춰주고 있었다.
  
그 사이 축제는 식물성 축제를 표방하며 서서히 내용을 갖추어 갔다. 지역내부의 사람들이 지닌 문화적인 역량을 가장 먼저 무대로 올리고 나머지 부분을 밖에서 공급하는 방식으로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잡았다.
  
그리고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각 40여개에 달하는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사진을 담았다. 그 사진은 무대 뒤의 매화꽃 모자이크 배경으로 아름답게 채워질 것이다.
  
꽃을 보러 갔는데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 심혈을 기울여 보지만 의도대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 전망대에 올라서 보니 온통 흰 물결일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 하나를 보니 방금 튀어져 나온 튀밥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매화나무에 달라붙은 것 같아 보였다.
  
어제 또 찾았다. 차가운 해풍이 치밀어 올라와도 참지 못한 꽃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홍매는 마치 작은 횃불처럼 달아올랐다. 백매는 고운 잎이 금새 날아가 버릴 듯이 윙윙거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보았던 달밤의 백매는 너무나 애잔했다. 왜 그리 슬픈 모습을 띄고 있는지 안타까웠다. 오늘처럼 비라도 내릴 적이면 매화밭은 더욱 절정이다.
  
축축하게 내리는 비는 매화의 향기를 날려 보내지 않고 제 자리에 묶어 둔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걷다보면 어느새 매향이 코끝으로 다가온다. 그 향기 달아나지 않고 계속 축적된다. 황홀경이다. 3월 12일 어림잡아 30% 정도 만개한 상황인데 추운 토요일 일요일 지나고 기온을 회복하면 다음주중이면 클라이맥스를 이룰 것이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매향의 천국으로 매원은 취해 있을 것이다.

▲ 저 벌 매화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 몇 분간을 꿈쩍하지 않는다. 벌이 있어 매화는 또 매실이 되는 것인데 사라진 한봉 대신 양봉꾼들이 돈을 받고 이 벌들에게 일을 시키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아. 봄이 왔다. 보는 봄도 좋지만 절로 취해 보는 봄도 좋지 아니한가. 고향같은 언덕에서 꽃놀이 한번 제대로 즐겨보자. 비단 산이면이 아니어도 좋다. 광양도 좋고, 전남대 교정도 좋고, 중외공원도 좋고, 시대를 넘어선 그림이 있는 광주박물관이면 또 어떠냐. 이 광기의 세상 온갖 잡사를 매향으로 단도리하고 넘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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