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時]와 시기(時期)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때[時]와 시기(時期)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 박상은
  • 승인 2009.03.06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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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광주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 간사

어릴 적 어머니는 “사람은 때[時]를 알아야 하고, 모든 게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만 놀고 들어가서 공부해라!’의 완곡한 표현이었으리라. 동무들과 구슬치기에 푸~욱 빠져있는데 어디 귓등으로나 들렸겠는가. 그저 만날 듣는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그 귀찮은 잔소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해 후회로 돌아오곤 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학교가 가기 싫어졌다. ‘배라도 아팠으면…’, ‘난 왜 이렇게 건강해서 감기도 안 걸리는 거야’라며 학교를 가지 않기 위한 핑계를 필요로 했다. 그건 어제 어머니가 말씀하신 숙제할 때를 동무들과 노느라 정신 팔려 놓쳤기 때문이었다.

몇 수 앞 내다보시는 어머니 걱정

이미 때를 놓친 것을 어쩌겠는가. ‘오늘은 어쩔 수 없고 내일부터는 꼭~’이라고 선생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며 다짐했다. 그러나 그날도 동무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고, 어머니는 또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다음날 후회를 하고 또 선생님께 혼이 나고,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충분히 철이 들었을법한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줄 모르고, 때를 놓치는 반복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어머니는 레퍼토리만 ‘공부’에서 ‘결혼’으로, ‘결혼’에서 이제는 ‘손주’로 조금씩 변해갈 뿐 어머니의 때에 대한 강조는 계속 되고 있다.

한 번쯤 어머니의 때에 대한 말씀에 앞서 ‘그건 벌써 했어요’라며 앞서보려 하지만, 어머니의 때는 언제나 한발 앞에 있는 듯하다. 바둑으로 치자면 어머니는 항상 몇 수(數) 앞을 보고 계신 것이다.

또 다른 때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해보려 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어머니의 때를 앞서지 못하는 답답함 보다 더욱 안타까운 때에 대한 얘기라 마음이 무겁다.

광주시 종합건설본부와 공원녹지과는 각각 남광철교(橋) 등 광주천 횡단 9개 교량의 재가설 및 리노베이션을 위한 ‘광주천 교량경관 개선사업’과 옛 남광주역주변 푸른길공원(350여m)에 대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남광주 푸른길과 광주천(남광철교)은 씨실과 날실과 같이 종횡으로 광주도심의 생태녹지축, 생활의 축으로써 서로가 만나는 공간적으로 중요한 연결점이기도 하다.

시기적으로도 비슷한 시기에 시행되고, 두 사업간 광주천과 푸른길 간의 연결방식과 디자인적 통일성 등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서로를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며, 각각의 사업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일정한 경쟁관계가 우선된다면 이후 푸른길과 광주천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그 불편함은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업은 행정업무 시스템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각각의 사업으로 분류되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두 사업이 연계고리를 찾고, 함께 풀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건설본부와 공원녹지과 부서 간 내부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사업의 공유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부족해보일 뿐이다.

이러한 의구심과 우려를 들게 하는 것은 시 건설본부의 때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지난 2월 25일 ‘남광주 푸른길구간과 남광철교의 설계를 위한 주민 워크숍’이 전문가, 주민, 관계공무원 등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워크숍에서는 푸른길과 광주천의 연결, 남광주 역사성, 설계의 방향, 주민들의 요구사항 등 다양한 의견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이야기됐다.

워크숍 불참한 시 건설본부 아쉬워

그러나 아쉽게도 시 건설본부에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시민들이 담당부서의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견을 모으고, 보다 나은 방향을 시민-전문가-행정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만들자는 자리에 대해 “아직 참여해서 할 얘기도 없고, 얘기를 들을 시기(時期)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고, “이후 시기가 되면 의견수렴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 의견을 받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의견을 들을 시기가 되면, 아니 행정절차상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한 시기가 되면 그때 의견을 한번 내보기는 내봐라’식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곧 시민과의 소통에 대한 건설본부의 인식 수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런지.

행정이 요구하는 시기에 시민이 맞춰야 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사고는 광주시가 지향하는 행정의 방침과도 다소 차이가 있지 않은가 싶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시기’가 도대체 언제이며, 반드시 행정이 요구하는 그 때이어야만 하는지? 어머니의 ‘때’와 그들의 ‘시기’는 사전적 의미는 같으나, 표기방식이 다르듯 속내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서로 다른 것이 아쉽고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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