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스며들기’
‘붉게 스며들기’
  • 범현이
  • 승인 2009.02.27 18: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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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의 언어로 소통하는 설치미술가 윤익(44)

다른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목, 주유(注油)를 하다가 그를 만났었다. 작년 여름쯤이었다. 초롱한 눈빛에 갈래머리를 묶은 서너 살배기 딸을 안고 있는 그를 향해 눈인사를 하며 곧 찾아갈 것처럼 약속을 받았었다. 해 넘긴 약속을 그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준다.

북구 자미갤러리 근처, 자주 다니던 길목에 작업실이 있다. 동그란 모양이 인상 깊은 새장이 여러 개, 전시가 끝난 후 다시 작업실로 돌아 온 푸른 빛나는 작품들, 심장처럼 살아 움직이며 잔잔하게 미동하는 붉은 섬유들, 여러 모양의 유리잔들, 이제는 일부러 찾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푸른빛 나는 가시나무들이 작가의 이미지와 함께 호흡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견고한 느낌이다. 쉽게 다가설 수 없으나 일단 마음이 열리면 더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사람이기보다는 자연에 더 가까운, 이미 자연에 동화되어 스며들어가고 있는, 스며드는 것이 곧 자신의 작품 그대로인 듯한 느낌.

▲ 윤 익 작가.

리어카의 꿈, 시간의 꿈 - 다시 스며들기


하얀 벽 한 쪽에 세워진 리어카가 있다. 아주 오래전 효용을 다한,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한 때는 젊은 날도 있었으리라. 아주 높이 하늘 닿게 물건을 싣고 세상 안 가 본 곳 없이 제 바퀴를 굴려가며 실었던 물건만큼 녹록한 땀을 흘렸으리라.

작가는 중흥동 소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리어카라고 했다. 골목골목을 누비다가 이미 버려져 있는 리어카를 발견했다. 너무 오래 그곳에 있어 있는 지 없는 지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작가는 이미 자연이 되어버린 리어카를 그대로 둔 채 설치를 했고 지나는 사람들은 젊은 날 바라보았던 눈빛으로 다시 리어카를 주목했다.

▲ 윤익 作「무제-목재창문에 조화와 조명을 포함한 기계장치 / 2008」

리어카에 자연의 심장이 다시 생겨 피스톤을 시작한 것이다. 리어카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밥’의 꿈이 아닌 희망의 ‘빛’의로 생성되는 꿈이었다.

“리어카는 단지 리어카가 아니었다. 충분히 낡아있는 중흥동과 닮았다. 신도심 개발로 밀려나는 옛 영화를 가진 중흥동의 모습이, 한 때는 너무나 왕성한 기운을 자랑했을 리어카와 한 몸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사회가 갖는 모순과 불협화음을 보았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리어카는 배를 내밀며 아. 이제는 정말 쉬어야지 하는 표정으로 들어와 바로 작가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변화해 가는 모든 것들을 기억으로 혹은 삶의 통장 안으로 차곡차곡 시간을 저금해둘 뿐이다.

전시장 밖으로 걸어 나온 미술 - 자연에 스며들기

▲ 윤익 作「무제-금속구조물에 붉은색실 / 가변적크기 / 2008」
전시장 안 전시보다 도시 전체와 함께 호흡하기를 즐긴다.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였으니 자연인인 사람이 만들어 낸 예술품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니, 이런 생각마저도 이미 오래 전 버렸다.

파리에서 가진 전시 역시 공원에서 열린 공원과 함께한 전시였다. ‘만지지마세요’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 놀아 주세요’가 설치물의 요구였다.

나뭇가지에 색깔만 다른 가지로 새롭게 솟아 나온 작가의 설치 작품들은 공원을 산책하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된다. 몸에 휘감기도 하고 목에 걸치기도 하며 붉은 천을 투과한 다른 느낌의 형상들을 그림자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작품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 이미 조성된 공원 안에서 같이 호흡하며 맞물림으로 섞여진다.

작가의 의도대로 비빔밥이 되어간다. 다양한 맛을 가진 초록의 나무들과 유들유들한 정원의 길들, 형형색색의 꽃들, 소리로 세상을 읽어가는 새, 희망을 높이 올려주는 나팔꽃 같은 분수가 함지박 안에 가득 모이고, 빛나는 햇살이 참기름 고소함으로 섞여 아이들은 맛있게 떠먹으며 웃고 배부르다. 흘려도, 엎질러도 맛있고 유쾌하다.

세상은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초록 나뭇잎 역시 초록이 아닌 이유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들여 마시며 호흡하며 살아가는 산소 역시 그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다른 무엇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이다.

우리는 이미 자연 안에 스며들어 있다. 분리할 수 없는 서로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부인할 수 없는 상호보완성 있는 강한 흡착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조형의 언어를 사용해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기를 즐긴다.

▲ 윤익 作「무제-노는전봇대에 금속구조와 프라스틱구와 투명사진 / 가변적크기 / 2007」

국제미술교류센터 아트 파티(Art Party) - 시장 안으로 스며들기

“고정되고 굳어져 고착돼버리고 싶지 않다.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는 작가는 입체, 공간, 평면, 시간성까지 고루 넘나들지만 사용하는 오브제는 자연의 물성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DNA 사용을 즐긴다. 나무, 돌, 유리, 물, 빛, 새집 등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스며들기다. 자연 안으로 자연인으로, 예술인으로 자신의 예술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사각 틀 안에 갇혀있는 그림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 때 그가 새장으로 작품을 즐겨한 이유다. 그가 표현한 것은 단순히 보여 지는 새장이 아니다. 새장 안에 담겨있고 혹은 공기의 순환으로 들숨, 날숨을 거듭하는 자유다. 새장 밖에 밖에 존재하고 있지만 다시 곧 새장 안이 되는 순환의 공기들,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영원한 자연의 원형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새장과 새둥지가 세상의 원형, 모티브인 이유다. 새둥지는 이미 너무나 거대한 하나의 우주로 인식된다.

▲ 윤익 作「무제-창문에 사진과 붉은색커튼 / 가변적크기 / 2007」

“삶은 자연이어야 한다. 예술 역시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생각은 삶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전반에 문화가 있다면 예술은 문화이고 문화는 곧 삶이다”는 작가는 자연을 닮았다. 이미 자연에 스스로 1mm씩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녹아 들어가고 있다.

다시 작가는 대인시장 안으로 스며든다. 특별할 것도 없다. 광주 작가들과 타 지역 작가들, 외국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고 작업실 공사가 한창이다. 아트 파티를 즐길 예정이다. 삶은 여전히 축제고 살아있는 동안은 파티를 즐길 생각으로 마련한 공간이다.

고정관념이나 혼자 독식하며 작업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로 지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로 함께 모여 토론하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작가적 소명을 의무로 교류할 것이다.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해 볼 생각이다.

12월에는 전시도 계획 중이다. ‘도시의 바다’가 주제다. 광주 시내 전체가 그의 캔버스이자 전시장이 될 것이다. 곳곳에 삶의 불을 밝히는 등대를 설치해 민주의 바다, 도시의 바다인 광주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인으로 돌아갈 이정표를 보여 줄 예정이다.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 윤익 作「무제-장식장에 수집된 오브제와 네온설치 / 2006」

프롤로그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회한이 남는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애정이 선인장으로 남아 스스로를 찌르는데도 아직 아무런 준비도 없다. 그 무엇에도 열정적이지도 자신을 완전하게 던져버리지도 못했다.

작가의 지나온 흔적을 방대한 분량의 포트폴리오로 보면서 지금껏 맞춰온 모자이크가 완전히 헝클어져 감을 느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졸업과 동시에 단 한 번도 그리지 못한 그림에 처연함을 가지는 건 왜일까. 어느 한 곳도 안착할 곳이 없을 영혼이 가여워서는 아닐까.

▲ 윤익 作「무제-버려진리어커에 네온설치 / 가변적크기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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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팔 2009-03-03 23:33:51
잠시 시간이 나서 들려봤는데...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작가가 작품이 되고 작품이 작가가 되어 세상에 자연을, 소외된 것들을 호소하는 느낌.
소외되도 빛나는 것,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것, 푸른곳에서 당당히 붉음을 자랑할 수 있는 것.
작가의 당당함이 자연을 닮았습니다.

질경이 2009-03-02 09:40:18
붉은 색 천이 선명합니다. 작가도 작품도 강력한 느낌입니다. 어쩐지 이글을 쓴 분도 나름의 포스가 분명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작품 소개 감사합니다...
박소빈작가는 언제 하나요? 그분의 작품을 봤는데 너무 마음에 남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