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정신 좀먹는 도청별관…허울 좋은 ‘철거’
오월정신 좀먹는 도청별관…허울 좋은 ‘철거’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2.20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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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 해산 속내, 이면합의 있었나

오월정신을 지키겠다고 지난 8개월 동안 도청별관에서 농성을 했던 것은 일종의 쇼였을까. 쇼였다면 희극보다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도청별관 논란이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구린내’가 풍기고 있다.
  
옛 전남도청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해체 내막엔 오월단체 간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

공대위와 추진단, 중재자를 자처한 박주선 의원(민주당)이 서로 물고 뜯으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진 것. 공대위는 상호불신으로 자멸했고 박 의원은 정치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중재안이라는 무리수에 목을 맸다.

이 과정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하 추진단)이 챙겼다. 일종의 어부지리인 셈이다. 도청별관철거 논란은 근거 없는 주장과 인신공격이 난무한 가운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함 그 자체다.

▲ ‘반쪽’ 합의 진상- 도청별관 철거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2월 초. 박 의원의 제3 중재안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부터다. 박 의원은 11일 별관 철거 전제 하에 작성했다는 합의서를 공개한 자리에서 “공대위 위원장 단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의 언론플레이가 약발이 먹혔을까. 도청별관 논란은 일시에 ‘철거’쪽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존치논란을 고수하던 공대위는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심했다. 반면 추진단은 박 의원의 중재안에 득의만면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줄곧 ‘상징 조형물’ 건립을 철거 대안으로 제시해 온 추진단으로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
  
공대위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 것은 11일 오월단체 이사회 개최 후였다. 천막농성을 주도해 온 구속부상자회가 철거를 주장하며 공대위 해체를 요구한 것. 하지만 유족회는 보존, 부상자회는 공청회 후 최종 입장정리로 유보결정을 내렸다.
  
오월단체 간 엇갈린 입장은 공대위 해체의 불씨로 작용했다. 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공대위 실무진들이 철거를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공대위 실무자는 “한마디 논의도 없이 정수만 상임위원장(유족회 회장)이 16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대위 해체를 선언했다”며 “더 이상 천막농성을 이어갈 명분을 잃어버려 불가피하게 자진 해체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서둘러 기자회견을 연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17일 도청별관에서는 도청별관 중재를 맡은 박주선 의원을 비롯 이병훈 추진단장, 양희승 공대위 공동위원장, 이재춘 공대위 집행위원장 등이 도청별관 철거 합의에 동의했다. 그러나 공대위 소속 두 단체가 빠져 '반쪽' 합의라는 불씨를 남겼다.


▲불꽃 튀는 공방 -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정 회장을 인터뷰했던 언론사에 확인한 결과 ‘해체’ 선언은 없었다. 12일 공대위 실무진이 작성한 ‘철거를 전제로 한 농성 철수 안’을 담은 문서 역시 이를 뒷받침했다.
  
도청별관에서 벌어진 블랙코미디 절정판은 17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도청별관 철거를 공표하는 자리에서 양희승 구속부상자회장과 이재춘 공대위 집행위원장이 ‘도청별관 철거’ 합의서에 공대위 명의의 도장을 찍은 것이다. 이를 놓칠세라 이병훈 추진단장은 공대위에 머리를 숙이며 도청철거를 기정사실화 했다. 박 의원은 중재자로서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나 도청별관 철거합의는 공대위 소속 두 단체가 빠진 것이어서 ‘반쪽’ 합의라는 오점을 남겼다. 같은 날 오후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공대위가 허문 천막농성 자리에 보란 듯이 새롭게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추진단은 ‘공대위 명의’의 합의서임을 재차 강조하며 ‘반쪽’ 합의 논란에 대해 “공대위 내부 문제”라고 일축했다. 박 의원 역시 “공대위 중재자로서 소임을 다했다”며 손을 털었다.
  
추진단은 18일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아시아문화전당 공사 재개를 선언했다. 별관철거 합의 이후 구속부상자회는 자취를 감췄고,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다시 도청별관 사수에 들어갔다.

▲ ‘이면합의’ 의혹-
오월단체간의 행보가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도청별관 철거가 ‘이면계약’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 도청별관 존치를 위해 8개월간 농성을 벌인 공대위가 급작스럽게 해체를 선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 것.
  
추진단에 ‘부분 보존’ 중재안을 묵살당하고, 박 의원에게 ‘철거’ 명분마저 내준 오월단체는 자중지란에 빠져들었다.
  
농성을 주도했던 구속부상자회는 “주도권에서 밀린 정수만 회장의 몽니 부리기”라고 일축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정 회장의 말 바꾸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라며 “2월 말 유족회 회장 연임을 위한 여론몰이이자 판세를 바꾸기 위한 몸부림이다”고 평가절하 했다.

최종 결정권을 움켜진 상임위원장이란 이유로 번번이 말을 바꿔 공대위 내부의 불신을 초래했다는 것. 
  
이에 대해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다 바쳐 별관을 지켜낼 것처럼 굴더니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이유가 뭐겠냐”며 “심상치 않게 이상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하면서 뭔가 있다는 낌새를 느꼈다”며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했다.
  
구속부상자회가 박 의원 합의안과 별개로 11개 항목의 자체 합의안을 마련한 것도 ‘이면합의’에 힘을 실어줬다. 안팎에선 전당 직원자리 보장과 관리용역 등의 구체적인 이면 합의설을 제기하는 등 추측이 난무했다.
  
정 회장은 “우리의 결정적 실수는 정치인을 세운 것이다”며 “박 의원에게 중재를 일임한 적도, 8일 날 만나 중재안을 수용한 적도 결단코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사익을 위해 8개월의 투쟁 성과물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월단체의 오점”이라며 때가 되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해 ‘이면합의설’에 무게를 뒀다.

▲ '반쪽' 합의 논란 속에 지난 17일 공대위는 천막농성을 철거했다.

▲ 상처뿐인 싸움-도청별관 ‘보존’을 위해 꾸려졌던 공대위는 결국 오월단체 사이의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들었다. 도청별관 논란의 불똥은 5·18 30주년 행사로 튀었다. 지난해 말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등 오월 3단체가 추진했던 공법단체에 급제동이 걸린 것.
  
오월단체 관계자는 “공법단체 추진은 오월단체가 꼭 가야할 길임을 안다”며 “공대위 불화와는 별개의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오월단체 간 냉기류로 인해 당초 13, 14일 예정됐던 워크숍이 취소되는 등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부상자회 한 관계자는 “법률검토는 이미 끝난 상황이며 초청인사 명단까지 작성됐지만 11일 돌발변수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이 판이 어떻게든 정리가 돼야 추진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오월단체 간 공방에 대해 시민단체와 광주시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이고, 시민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눈살을 찌푸린다.
  
김란기 서울문화유산연대 대표는 “도청별관 문제가 오월단체와 추진단 간의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의아스럽고 걱정스럽다”며 “언론과 시민단체, 지성인 모두가 기대했던 것 이하로 침묵하고 있다”며 광주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생사문제에 초연해진 탓일까. 도청별관은 오늘도 금남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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