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의 배후를 찾아서
「워낭소리」의 배후를 찾아서
  • 정지창
  • 승인 2009.02.1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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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하루하루 사는 것이 팍팍하고 맥이 빠지는 요즘, 그래도 축 처진 서민들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시린 가슴을 쓸어내려주는 영화가 바로 「워낭소리」다. 처음에는 예술영화 전용 소극장 몇 군데서 소문도 없이 선을 보이더니 젊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면서 팬들의 성화에 떠밀려 상영기간도 연장되고 상영관도 늘어나 벌써 4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워낭소리」를 보았느냐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1백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다. 작년 여름 여중생들이 불을 붙인 촛불이 삽시간에 들불처럼 청계천과 시청광장으로 번져가던 것이 연상된다.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인 대중의 참여와 반란이라는 점에서 「워낭소리」는 촛불문화제에 못지않은 놀라운 문화적 폭발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워낭소리」의 문화적 폭발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농경문화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를 친구로 여기며 아끼고 보살펴주는 농부, 농부와 소통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소, ‘평생원수’를 ‘천생연분’으로 알고 살아가는 할머니. 이 영화는 바로 농경시대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처럼 농촌에서 자란 세대는 물론이고 도시의 아스팔트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워낭소리」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것은 수만년 동안 우리의 핏속에 전승된 농경문화의   유전인자 때문이 아닐까.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상영되었을 때, 미국인 관객들이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열광했다는 소식은 농경문화의 유구한 전통과 보편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농업은 21세기의 한국에서 퇴출의 벼랑 끝에 몰린 사양산업이고 농민은 멸종위기에 몰린 힘없는 소수 집단이다. 경쟁력과 속도, 돈벌이에 눈이 벌건 투기꾼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작고, 불편하고, 느릿느릿하고, 자기는 좀 손해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농경문화적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생존권을 외치는 철거민들을 테러분자로 낙인찍고 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을 투입해 죽음으로 내모는 시대에 농경문화적 가치는 마치 주차장에 매어둔 소달구지처럼 낯선 풍경이 되어 버렸다.
   
농업도 대기업과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기업화’하고 쌀도 쇠고기도 값싼 외국제품을 수입하겠다는 정부 당국자들은 「워낭소리」에 관객이 몰리는 것이 사라지는 옛 풍물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선정적인 언론매체들은 영화의 주인공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괴롭힌다고 한다. 새 정부 들어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몇 년 동안 공력을 들인「워낭소리」 같은 독립영화가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꼽아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문화적 충격’이라고 부를만한 경험을 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는 1980년대 중반 광주의 YMCA 회관에서 본 연극 「금희의 오월」이었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웃고 울던 그 현장감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1980년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많은 대중집회나 치열한 시위 현장보다 「금희의 오월」이다. 나로서는 2009년이 ‘용산참사’보다 「워낭소리」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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