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초자아가 병든 사람”
“사이코패스는 초자아가 병든 사람”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2.09 1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무석 전남대 의대 정신과 교수

연초부터 우리사회가 용산참사와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사건은 명백하게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는 ‘생명경시’라는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지난 5일 전남대 의대 정신의학과 이무석 교수를 찾았다. 그 두 가지 죽음이 의미하는 우리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는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이 교수는 “용산참사 사건은 사회적 약자의 상징성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상징성이 동시에 불에 타 버린 매우 가슴 아픈 사건”이라며 “하루빨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사회적 치유를 위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강호순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는 자신과 가족은 물론 이웃과 사회공동체까지도 파괴했다”며 “사이코패스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년기 부모들의 양육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이무석 교수가 최근 용산참사와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 ‘사회적 관계망’의 붕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이 교수와 일문일답.

▲ 연초부터 용산참사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 일단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게 희생된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 이번 참사과정에서 경찰도 희생된 걸로 알고 있다. 경찰은 국가공권력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에게 경찰보호가 더욱 절실한 법이 아닌가. 사회적 강자는 경찰력 이외에도 호소할 대상과 수단이 많다. 어쨌든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의 죽음도 똑같이 가슴 아픈 일이다.

이번 참사사건을 바라볼 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철거민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상징성과 이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상징성이 동시에 불타버렸다는 데 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력이 왜 적대적 관계가 됐는지 참 답답하다. 하루빨리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밝히고 진상을 규명해 사회적 치유를 위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용산참사는 사회적 타살의 혐의가 짙다고 보는데.
- 용산화재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철거민과 국가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같이 불에 타 죽었다. 대단히 슬픈 일이다. 하지만 왜 충돌하게 됐는지를 여기서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안의 복잡성에 비춰볼 때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비판이 제기되는데 반해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는 것 같다. 
- 용산참사 사건의 한쪽에서는 국가공권력의 붕괴와 무력화를 염려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공권력의 상징인 경찰력이 무너지게 되면 앞으로 어디에서 보호를 받느냐는 걱정이 그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용산참사를 공권력이 공격당했다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권위를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화재로 희생된 주검 그 자체보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권위를 더 염려하는 것이다.

반대논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갈 데가 없이 내몰리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 때문에 희생됐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요구다. 경찰과 철거민의 죽음을 바라보는 데서도 철거민의 죽음에 더 공감하는 이유다. 개인이 처해 있는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다.

반면 강호순 연쇄살인은 명백한 개인범죄다. 강호순이 사회적 희생자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건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잘못에서 교훈을 배운다고 하지 않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이나 경쟁위주의 학교교육시스템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화목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 때 비로소 제2, 제3의 강호순을 막을 수 있다.

▲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 구조를 ‘원초아’, ‘자아’ 그리고 ‘초자아’로 구분했다. 이무석 교수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초자아’에 구멍이 뚫려 발생한 것이다 ”고 설명했다. 초자아는 우리 마음의 도덕 규제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 교수는 이것을 “사회적 관계망”으로도 표현했다. 사진은 이 교수 서재에 놓인 프로이트의 사진.

▲ 경찰 조사관들이 강호순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규정했다. 설명을 부탁드린다. 
- 사이코 패시(Psychopathy)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같은 말이다.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는 세상의 도덕률이나 법 등 모든 룰(Rule)을 무시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들은 신기할 정도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또 공감능력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과 입장을 바꿔놓고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 사이코패스를 정신병적 징후로 해석할 수 있나.
-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성격장애다. 의학적으로 정상인의 상태를 벗어났을 때 장애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적으로 감정이나 자각능력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거짓말과 자기합리화에 능하다. 또 충동적이고 책임감이 없으며 폭력적인 성향도 강하다. 사이코패스는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하면 이웃과 사회공동체까지도 파괴하게 된다.
   강호순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삶을 망가지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국사회가 강호순의 연쇄살인 사건으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오죽하면 부모들이 자녀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휴대폰 상품 구입에 열을 올리겠는가. 전 사회가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이 강한가. 아니면 후천적 요인이 강한가.
-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학설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후천적인 원인이 더 크다. 특히 성격이 발달하는 유년기에 부모의 양육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유년기에는 이드(id), 즉 본능적 욕구와 충동이 크게 작용한다.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맨 처음 배움을 접하는 대상이 부모다. 부모가 선과 악의 다양한 경험을 반복해서 교육하게 되면 그것이 학습되고 내재화 돼 그대로 인격의 한 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 슈퍼에고(superego.초자아)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초자아에 병이 든 사람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초자아에 구멍이 뚫린 사람이라고 부른다. 천장에 구멍이 뚫리면 비가 새는 것처럼 유년기에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어릴 때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말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비언어적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비언어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가 불일치할 때 아이들은 비언어적 요소를 더 중시한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태도가 중요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교육은 인간교육이 주된 것이었다. 충효와 인의예지신 등은 인간의 삶의 태도와 관계 맺는 방식을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가난하더라도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이 존경과 존중을 받고 인정을 받는 사회였다. 사회적으로 그 같은 덕목을 높이 평가해서다. 가난해도 제대로 된 선비가 존경을 받은 것은 그 같은 사회적 분위기 탓이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 명예와 타협하지 않았다. 인간답지 못한 임금이 관직을 줘도 나아가지 않고 실정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상소를 했다. 그렇게 인간관계의 룰을 지키다 죽은 선비들에게 사람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충효와 인의예지신은 우리민족의 무의식을 관통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70년대 이후 불과 20~30년 만에 크게 변했다. 인간과 인격에 대한 교육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인간관계를 존중하고 도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덕목들이 지배하는 시대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일류대학만 가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됐다. 그 같은 입시지옥이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돈과 출세, 좋은 대학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출세하기 좋은 사회가 됐다. 인생의 참된 가치관이 인간 간의 관계 맺기에서 출세와 돈으로 옮겨간 탓이다. 돈을 벌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좋다는 극단적인 세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우리경제가 선진국 형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이런 풍조들이 더욱 늘어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제발 인간관계와 사람을 중시하도록 인성(人性) 회복에 나서야 한다. 인정이 살아있는 사회가 대안이다. 

▲ 사이코패스를 잠재적 범죄자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 사이코패스는 분명 범죄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피해나갈 수 없다고 판단할 때나 두려움을 느낄 때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여기거나 안전하다고 여길 때는 가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사이코 패시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신발공장에서 단일한 사이즈의 신발만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이코패스들도 성장과정에서 개인별로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다양한 범주의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만들어 낸다. 언론과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구분하지 않고 사이코 패치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사이코패스는 범죄형과 정상형 사이에 천차만별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정상형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입신과 출세를 지향하는 욕구가 강하다. 욕구 충족을 위해 모든 도덕률이나 법률, 인간관계 등을 무시하면 사이코패스의 경향이 농후한 것으로 봐야 한다.  

▲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 예방을 위해서는 부모들이 자식을 키울 때 인간을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성인이 된 후 교육을 시켜서 예방될 수 있는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함께 실천하는 것이 좋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출세를 위한 공부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결손가정(broken family)에서 좋은 자녀가 나올 수 없다. 범죄자 가운데 화목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병든 가정에서 범죄자가 나오는 것이다. 가정을 잘 다스리고 인정머리가 있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회적 예방법으로는 학교에서 올바른 사회적 도덕과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동료를 경쟁상대로 보고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 시험성적만 가지고 내신을 매기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인간관계를 보다 세분화하고 구체화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무시당할 때 가장 비참하다. 존중받는다는 것은 개체 그 자체로서 생명이 존중받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가치전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생명보다 돈이나 출세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세상이다. 살다보면 알겠지만 돈과 출세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참된 가치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존중의 가치다. 내가 소중하다면 타인도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개인과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무석 교수(65)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국제정신분석학회 정회원과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남대 의대병원 정신과 교수와 국제정신 분석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30년만의 휴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등이 있다.

2005년에는 한국정신분석학술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