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하루도 행복한 날은 없었다”
“내 생애 하루도 행복한 날은 없었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1.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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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팔레스타인 참상 고발

▲ 지난 18일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서 어린이들이 가자에서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

지난 22일 광주흥사단 강당에서 ‘점령종식·학살중단!-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묻다’를 주제로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미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가 초대 됐다. 이야기 마당은 광주인권운동센터,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 진보신당광주시당(준) 등 9개 단체가 준비했다. 발제문을 요약해 싣는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은 영국이 제공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터키의 아랍지배가 종식되자 영국은 이 지역의 위임통치에 들어갔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영국은 아랍인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주겠다는 ‘맥마흔 선언’을 발표한다. 아랍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미끼였다.
  
그 후 영국은 미국을 전쟁에 참전시키기 위해 미국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발포어 선언’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고 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특히 2차 대전 중 홀로코스트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늘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주정책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쟁과 추방을 선포하고 노골적인 점령정책을 실시한다.
 
1947년 말부터 본격화 된 정복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75만명 가량이 추방되고 수백 개의 마을이 파괴된다. 유대인들은 마침내 1948년 5월14일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1차 중동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를 차지한다. 1956년(2차 중동전쟁)에는 이집트를 공격하더니 1967년(3차 중동전쟁)에는 아랍 국가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게 된다.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영토 22%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한다. 이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인 20만 명이 또 다시 집과 땅을 잃고 난민신세가 됐다.
  
1982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아프리카 튀니지로 쫓겨 가고 아라파트를 비롯한 PLO 상층부가 외교적인 해결책에 경도되면서 PLO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 그에 비해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해방운동이 점점 성장하고 1987년 12월 인티파타(민중항쟁)가 선포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1993년 PLO 상층부와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다. 협정의 결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한다.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PLO 간 최초의 평화협정이라고 포장됐지만 협정체결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봉쇄정책이 오히려 강화되는 등 ‘지배협정’임이 드러나게 된다.       
  
2006년 1월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이 실시됐다. 총선결과 하마스가 전체 132석 가운데 74석을 얻어 집권당이 되고 10년 동안 집권했던 파타는 제2당으로 밀려난다.

파타의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과 하마스 출신의 총리가 공동정부를 구성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연합 등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경제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치정부의 돈줄을 끊는 것으로도 부족해 2006년 대규모 폭격과 살육전을 전개한다. 그래도 하마스가 건재하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 쿠데타를 사주한다. 이 때문에 파타와 하마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지만 파타가 승리하지 못해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남게 된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2007년 6월부터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식량, 석유, 의약품 등을 포함한 상품의 이동이 크게 제한받게 되면서 팔레스타인들은 고사될 지경에 처한다.
  
2008년 1월, 생필품에 크게 압박받던 하마스는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사이의 장벽을 폭파하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원조를 받고 있는 이집트가 국경을 폐쇄하면서 최소 생존을 위한 식량만 공급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2008년 12월 27일부터 가자지구를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17일 현재 약 1,300명이 사망하고 5천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은 학살과정에서 화학무기의 일종인 백린탄을 사용해 국제사회의 분노를 샀다.
  
이 같은 살상행위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가능하다. 미국은 매년 20억 달러 이상을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이스라엘은 이 돈으로 미제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사들이고 있다.
  
2009년 1월3일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리비아의 제안으로 이스라엘 공격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세계 각국의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미국은 1월8일 유엔안보리가 이스라엘 철군요구안을 채택할 때 기권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 인민전선, 이슬람 지하 등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다윗 이스라엘과 싸움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투기, 탱크, 최신형 무기에 맞서 소총과 수제 로켓으로 대응하고 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대부분 건물들이 파괴됐지만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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