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에 가려진 삶의 내력이 있는 곳
화려함에 가려진 삶의 내력이 있는 곳
  • 전고필
  • 승인 2009.01.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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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곰소와 우반동에서

▲ 곰소의 삭은 뻘을 탐식한 숭어, 우럭, 볼락이 싼 값에 싱싱하게 공급되는 곰소항 횟집의 풍경.


삭은 내음이 지명에 잔뜩 버무린 고장이 있다. 이를테면 흑산도나 영산포가 간직한 홍어 삭은 냄새라든가 신안 전장포나 부안의 곰소, 충남의 강경, 경상도의 구룡포 등이 그런 지역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음식 맛의 결정적인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이 지명들 앞에서는 선뜻 다른 미사여구가 들어설 틈이 없다. 여튼 그 중에서 부안의 곰소와 같은 경우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겨나면서 사그라져 가던 도시가 활기를 얻은 고장으로 또 기억된다.
  
눈 내린 며칠 전 그곳을 찾았다. 젓갈을 구하는 것 보다는 젓갈 상가 뒤에 바다와 연한 곳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포장마차 같은 허름한 주막을 찾기 위함이었다.
  
새로 조성된 횟집타운이 곰소의 입구와 모항으로 가는 길섶에 있지만 왠지 그 화장칠에 주눅이 들어 들리지 않았었는데 인접한 줄포의 한 선배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곳이 바로 곰소의 일고여덟집 남은 허름한 횟집 지대였다.
  
그러고 보니 김제의 심포에 갔을 때도 그랬다. 심포항 초입에 있는 몇 개의 신식 횟집은 문을 열고 있는 것인지 닫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기가 돌았지만 항구에서 강한 바람을 맞고 있는 포장마차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던 기억이다.
  
곰소의 곰삭은 듯한 이름만큼 맛깔스러운 숭어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식탁에 올랐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숭어와 굴이 제격이었다.

▲ 육지에 사람의 길이 있다면 바다에는 어부들의 길이 있다. 그 길은 어부의 마음처럼 순정하여 저 부드러운 뻘 흙 위에 상처하나 남기지 않고 대양으로 흘러간다.

차가운 회를 먹고 다시 온기로 가득한 굴로 포만감과 따스함을 간직할 수 있는 미덕은 역시나 길섶이 아니라 길 안쪽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속이 채워졌으니 이제 길을 따라본다. 변산의 내부로 들어서면 개암사와 부안댐이 나온다.
  
백제 유민들의 마지막 항쟁지였다고 하는 울금산성을 병풍삼아 오랜 역사를 풍화하고 있는 개암사는 수리 중이었다. 대웅보전에 아시바를 세우고 뒤틀어진 목재를 바로잡고 보수하는 작업이 경내에서 진행 중이었다면 입구 전나무 숲을 지나 오래된 팽나무 언저리에는 새로운 건축물을 만드는 작업이 태극처럼 휘돌아 만나는 절의 풍경을 바꿔내고 있었다.
  
언제나 상처를 입는 풍경 앞에서는 말이 줄어든다. 내가 속세간을 벗어나 입산을 했다면 또 저 풍경에 어떤 리플을 달지 모른다는 자격지심 탓이었다. 또 찾을 날은 앞으로 한참의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부안댐을 찾았다.

지금쯤 물이 다 말라 예전 삶의 흔적 일부가 드러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을은 수장되고 살았던 사람들은 쫓겨 나갔지만 그들의 발자국이 남겼던 화석이 된 길의 모습은 온전히 드러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 사람도 길도 상징도 삼켰던 그 시퍼런 물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묵혀졌던 옛 모습이 드러내며 사라진 모든 것들이 다시 환생하는 듯 했다. 하지만 떠난 사람들은 다시 현현하지 않았다.

산모롱이 바위벽을 따라 형성되었던 길의 풍정이 눈에 들어왔다. 동복댐에서 보았던 풍경, 주암댐에서 보았던 풍경, 장흥댐에서 보았던 풍경이 그 살기 좋아 생거부안이라 불리는 이 부안에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정이 흐르고 물산이 흘렀을 그 길의 추억을 수장 시켜야 했을 수몰민들의 애절한 마음이 겨울 산자락에 휑하니 몰아쳐 온다. 길 위에서 늘 아름다움에만 탐닉하고 애써 외면하고 혹은 눈감아 버린 죄는 또 얼마나 많은지 번쩍 생각이 된다.
  
그쯤에서 여행은 바다를 향하기보다는 산자락을 넘어 퇴로의 길을 잡는다. 바디재 산자락을 넘으니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허균과 반계 유형원과 연암 박지원의 흔적이 스며있는 우반동 마을이 나온다.

낙남하여 서재에 자신을 가둬두는 이가 아닌 세상을 구할 이치를 구했던 실학자 반계 유형원의 생애를 연암 박지원은 소설 허생전에서 다시 상기해 냈다.

허생을 두고 “쓸만한 선비가 왜 벼슬에 출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군량을 조달할만한 역량을 지닌 반계 유형원이라고 하는 이도 초연하게 산야에 들어가 고요히 사는데” 라며 당대의 정치적 환란과 선비의 고뇌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등장시킨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안땅에 집착했을까 생각하며 변산과 채석강이 눈 멀게 한 그 땅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줄포의 물줄기를 따라 해지는 모습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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