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고상한 취미, 탐매(探梅)
선조들의 고상한 취미, 탐매(探梅)
  • 최성민
  • 승인 2009.01.1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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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한편에서는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서울은 지금 영하 12도를 넘나드는 혹한이다. 서울의 겨울은 너무나 황량하다. 만물이 땡땡 어는 기온인데도 눈이 오질 않는다. 눈도 없이 깡마르고 혹독한 겨울에 2천만명이 뒤엉켜 갇혀있는 형국이란 ‘지옥’과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 눈이 오지 않는 이유는 기상청이나 대학 같은 곳에서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반 추측으로는 공기가 나쁜 것이 이유이다. 막연한 추측이기는 하나 공기가 나빠서 눈이 쉽게 형성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에도 서울에 눈이 쌓인 날이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지금 겨울의 한 중간인데도 올해엔 서울에 아직 눈 쌓인 일이 없다.
  
요즘 고창 이남 전라도 지방엔 눈이 많이 온다. 특히 목포 광주 해남 진도 일대는 기후가 온화한 편이지만 제법 눈이 쌓인다. 내륙지방인 임실과 정읍 쪽엔 정말 눈이 많이 온다. 산간 지역인 무주 진안에도 눈이 많이 온다. 포근하지만 하얀 눈이 천지를 뒤덮고 있는 풍경 속의 겨울을 생각하면, 살을 찌르듯 추운 바람이 불어대면서 한 점의 눈도 구경할 수 없는 서울의 겨울은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겐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통도 한 짐 지워준다. 여기에 경제위기까지 겹쳐 상가들이 하루 다르게 문을 닫는 지금 서울의 겨울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갈수록 이렇게 세상이 인심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삭막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왠지 선조들의 겨울나기를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그 중에서도 이 무렵 선조들은 혹한 속에서도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복을 누렸으니, 이름하여 ‘탐매(探梅)’라는 것이다. 탐매는 말 그대로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지금 이 무렵 매화가 어디에 있겠는가? 라고 하는 생각은 계절의 횡포(?) 속에 자연과 담을 쌓고 사는 현대인들의 비참한 정서를 말해준다.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꽃 중의 꽃이라 할만하다. 만물이 죽어있거나 잠든 한 겨울에 피어(冬梅) 온 세상에 그윽한 향기를 뿌려주는 것이 이 매화 말고는 없다. ‘설중매’라는 말도 있듯이 매화는 한 겨울에 눈을 이고 피는 매화가 매화다운 매화이다. 그것도 인적이 드믄 산모퉁이나 골짜기에 피는 매화라면 고매한 인격의 군자에 비유되곤 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는 바라는 공명심을 버리고 홀로 오롯한 심지를 지니고 잿빛 자연 속에서 생명의 존재감을 고고(孤苦)히 발산하는 그런 매화-이를 찾아서 ‘탐매’에 나선 선조들의 기개는 군자를 좇는 마음 그 자체였을 것이리라.
  
이제 얼마 안 있어 2월말~3월초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 남쪽으로 매화를 보러 몰려갈까?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그쪽 매화들은 선조들이 ‘탐매’했던 고고한 매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본 상업주의 개량종 ‘왜매’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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