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수 감독의 <식객>에 실망해서 그의 <미인도>를 보지 않으려다가, 어찌 틈이 나길래 느즈막에 보았다. 유하 감독의 작품은 좋아했다. 섹시하면서도 당차게 영악한 엄정화의 벗은 몸에 관음증이 돋아서 보았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뜻밖에 삶의 숙성이 묻어나는 생각꺼리가 있었고 상당히 섬세한 심리적 터치까지 녹아 있어서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이소룡의 추억이 얽혀든 고교시절의 양아치이야기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겉 행동은 독하지만 속 마음은 여린 깡패이야기 <비열한 거리>. 이래저래 서운하지만 괜찮았다. B0쯤은 줄만 했다. <쌍화점> 예고편이 TV사극 드라마가 흔히 보여주는 조잡하고 설익은 느낌을 주었지만, 그래도 “설마?”하는 맘으로 보았다.
그런데 많이 실망했다.
<쌍화점>과 <미인도>는 ‘에로 장면’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앤디 워홀이 말했듯이 “잘 팔리는 예술이 좋은 예술!”이라고 한다면, 영화나 소설에서 ‘에로 장면’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에로 장면이 모두 다 손님을 잘 끌어들이는 건 아니니까, 감독이나 소설가는 에로 장면을 얼마만큼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많이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많이 벗기고 무턱대고 야하기만 한 게 에로 영화라면, 고민할 게 뭐 있겠나? 더구나 ‘야한 동영상’이 아무데나 널려 있는 세상에서. 문제는 육체적 터치가 아니라, 스토리의 단단한 흐름 속에 담아 그려 넣는 깊고 미묘한 심리적 터치이다.
나름대로 많이 노력한 배우들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쌍화점>과 <미인도>는 ‘살과 살이 떡치는 싸구려 포르노’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 심리적 터치가 없지 않지만,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나 맹하다. 여자주인공의 벗은 몸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색계>만큼은 못하더라도, <조선남녀상열지사(朝鮮男女相悅之詞), 스캔들>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남녀의 사랑마저 무지하니 남남의 사랑에는 더욱 무지하다. 동성애를,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자분자분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투박하게 겉돌면서 역겨움만 준다. 영화에 빠져드는 걸 방해할 정도이다. 남녀 주인공들이 무너져 갔다. 조인성이 더욱 그러했다. 조인성의 여성스러운 모습이 연기를 잘하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니라, 닭살 돋기도 하고 가엾어 보이기도 했다. 엄숙하고 비장해야 할 호위부대 대장의 카리스마를 갖출 수가 없었다. 영화의 기둥 하나가 부러졌다. 조인성이 연기를 잘못했다기보다는, 감독이 조인성을 호위대장으로 캐릭터를 잡지 않았어야 했다.
실망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스토리가 단단하지도 못할뿐더러 거칠다. 의상·미술·무대·소품이,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우아함을 보여준 <스캔들>하고는 너무 멀었다. <미인도>의 화려함도 그리 수준 높지 못하면서 얄팍하다 싶었는데, <쌍화점>은 더욱 심해서 느끼한 기름끼마저 도는 <황후화>의 짝퉁을 보는 듯했다. 액션이 쫀쫀하거나 얄팍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묵직하고 장대하거나 리얼하고 생생하지도 못했다. 어린이 건룡위 무술시범·검은 복면자객들의 등장·왕비가 비파를 타는 장면은 너무나 성의 없었다. 주진모의 표정연기가 좋았고, 그의 노래가 그윽하고 그 음색이 굵고 차분했으며, 무희들의 의상과 무용이 화사했고, 마지막 즈음에 왕비가 혼란한 왕궁을 다부지게 휘어잡았다. 그러나 무너지는 영화를 일으켜 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참담한 <황후화>의 아류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를 이야기하면서, “예술로 일어나서 상술로 무너졌다!”고 했다. 참담한 <황후화>를 거울로 삼기는커녕, 모든 걸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유하 감독은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을 부렸고, 그 욕심이 ‘프로다운 상술’이 아니라 ‘덜 떨어진 상술’에 허둥대며 진흙탕을 허우적거렸다. 대중재미 C0 · 영화기술 C0 · 삶의 숙성 D+.
霜花店=雙花店(중국식 만두집)
고려 말엽 충렬왕 시대에 유행한 고려속요, 마침내 왕실의 놀이마당에서까지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생활상에 얽힌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만두집에 만두냄새만이 아니라 남녀의 사랑냄새까지 함께 흘러 다녔던 모양이다. 노래 가사에서 회회아비의 ‘회회(回回)’는 이슬람문화를 뜻하므로, 쌍화점(雙花店)은 중국식 만두집이라고는 하지만 몽골의 원(元)나라를 통해서 들어온 아라비아의 이국(異國)적 분위기가 야릇하게 흐르는 레스토랑 또는 호텔쯤 되지 않을까? 그러니 회회아비는 이슬람식 호텔의 주인이면서 뚜쟁이질도 함께 하였을 법하다. 2절에 ‘삼장사(三藏寺) 절집 주인’으로 고려 말엽의 불교와 스님들의 한 모퉁이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 노래 가사가 에로틱해서, 조선시대에 금지령을 내렸단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만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지저분한 곳이 없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지저분한 곳이 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술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지저분한 곳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