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화학교서 부쩍 큰 아이들
제2의 인화학교서 부쩍 큰 아이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9.01.01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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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학생들의 새 보금자리 ‘홀더 지역아동센터’

▲ 인화학교 복귀를 거부하고 자퇴한 아이들에게 홀더공부방은 새 보금자리가 돼주었다. 지난 23일 미술심리치료 수업이 한창인 공부방 모습.

“자, 선생님 하는 거 잘 봤죠? 원하는 색깔을 물에 풀어 젓가락으로 휘휘 젓고…”
  
광주 서구 금호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홀더 지역아동센터를 찾은 지난 23일. 마침 서구청의 도움으로 3개월짜리 미술심리치료 수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여느 미술수업과 달리 소란스러운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미술치료교육사가 먼저 열심히 설명을 하면 아이들은 수화통역 선생님의 손짓을 보고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줄지어 선 아이들은 차례로 물감을 푼 양푼에 기름 묻힌 도화지를 담갔다 꺼내들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뜻을 지닌 홀더공부방은 (사)실로암사람들이 후원자들의 정성을 모아 인화학교에 다니던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배움터다. 자퇴한 아이들을 학교를 대신해 엄마 품처럼 품어준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성폭력 사태가 터지고 학교가 정상화되길 바랐지만 아이들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법인과 학교 측의 처사를 보고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교육청에서 하던 천막수업을 그대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지난해 4월. 그동안 6명은 일반 고등학교에 2명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남(7명), 여(5명)가 따로 생활하고 있다.
  
공부방에서는 민감한 사춘기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다독이기 위해 그동안 춤 치료, 도예체험 등 다양한 방법들을 접목시켜왔다.
  
김수경 미술치료교육사는 “사물인지력이 낮고 말로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표현력을 보여줘 놀라울 때가 많았다”며 “치료를 통해 아이들의 분노가 다독여지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낮에는 학교생활, 방과 후에는 부족한 공부를 메우기 위해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 밝고 건강해보였다. 인화학교를 자퇴하고 올해 광산구에 있는 전산고에 입학한 정지혜(17)양은 “새롭게 배우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고 등하교가 여유로워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걱정될 때가 많다”고 애어른같은 말을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농아학교에 다니다 일반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세상의 넓고 높음에 신기해하면서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는 시간이라고.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아이들의 보금자리로 공부방을 꾸밀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자원봉사자들과 각지의 후원이 큰 힘이 됐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만들어준 IT공부방이며 기아자동차광주전남지역본부, 인터넷카페 광주전남엄마들의 모임 등 크고 작은 이들이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장김치는 쌓아둘 곳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만원사례’를 이뤘다.
  
김혜옥 사무국장은 “행정기관이나 교회, 단체, 자원봉사자 등 정말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만큼 꾸려올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청각장애 학생들의 배움터지만 방학 프로그램으로 수화교실을 운영하는 등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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