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포뇨] 벼랑 위의 미야자끼 하야오?
[벼랑 위의 포뇨] 벼랑 위의 미야자끼 하야오?
  • 김영주
  • 승인 2008.12.27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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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끼 하야오는 나에게 '최고의 우상'이다

 그를 70시절에 TV만화영화 [알프스소녀 하이디]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으로 만났을 때는, 그의 작품에 깊은 맛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건성으로 흘려 넘겼다.  90시절에 우연히 해적판으로 돌아다니는 일본 만화책 [천공의 성, 라퓨타]과 [이웃집 토토로]에 ‘완전감동’을 먹고서 그의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를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월트 디즈니 작품들보다 훨씬 체질에 맞아서 편안했고 삶의 숙성이 깊었다.

1984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1986 천공의 성 라퓨타 · 1988 이웃집 토토로 · 1988 반딧불의 묘(다카하타 이사오) · 1989 마법소녀 키키 · 1991 추억은 방울방울(다카하타 이사오) · 1992 붉은 돼지 · 1994 너구리 폼포코(다카하타 이사오) · 1995 귀를 기울이면(콘도 요시후미) · 1997 원령공주 · 2001 센과 치히로 · 2002 고양이의 보은(모리타 히로유키) · 2004 하울의 움직이는 성 · 2006 게드 전기(미야자키 고로).  괄호는,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지만 그가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의 작품이다.  그래도 그의 체취가 물씬 배어있다.

[고양이의 보은]은 수준이하의 작품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성에 먹칠을 했고, [게드 전기]는 그의 아들 작품인데 그림의 색감과 질감이 텁텁하고 스토리가 유치하고 싱거웠다.  이 두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가 그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든 걸작들이다. 그래도 어렵사리 그 우열을 굳이 가늠하여 말해 보면, [이웃집 토토로]를 단연 으뜸으로 꼽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론 [천공의 성, 라퓨타] [반딧불 묘]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을 함께 꼽고, 그 다음으론 [마법소녀 키키]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원령공주]를 함께 꼽고, 그 다음으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함께 꼽는다.

 

지난 번 [하울]에 조금 실망했는데,

이번 [포뇨]에는 더 실망했다. ( 그래도 [고양이의 보은]이나 [게드 전기]보다야 낫다. )  아무리 내 ‘최고의 우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거듭 실망이 생기고 그 실망이 더 커져가는 것이 왠지 불안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토록 생동하고 깊이 있는 내공이 떨어지거나, 유명세에 휘말려 나사가 풀려가는 걸까?   이 세상에 몰아치는 메마른 모래바람에서 만난 ‘오아시스 생명수’ 같은 그 잔잔하고 흐뭇한 감동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게 ‘옥에 티’가 한 점도 없기를 바라는 ‘지나친 갈망’을 갖는다.
 

스토리 진행에 긴장감이 약해서 영화에 빨려드는 힘이 느슨하고, 삶의 애환에 담긴 숙성이 평범해서 가슴 뭉클한 대목이 없다.  그래서 초등학생에게야 재미있고 좋은 영화일 수 있겠지만, 스무 살을 넘긴 사람들에게는 많이 싱거웠겠다.  게다가 극미하게 세밀한 배경그림과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그림에 정성이 많이 약해졌다.  특히 배경그림에, 그 동안 작품에서는 수채화처럼 깔끔하게 해맑아서 산뜻하게 선명한 화면을 주로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파스텔 톤으로 문지르는 기법이 많아서 희끄무레하며 칙칙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다의 여신이 쇼 윈도우 서양마네킹처럼 판에 박은 미인모습이어서 실망했다.  동양의 관세음보살 이미지로 우아한 관능미를 잘 살려내고, 바다의 남자와 어떤 갈등을 빚으면서 드라마틱하게 끌고 갔더라면, 스토리에 훨씬 긴박감을 주고 더욱 환상적인 화면으로 액티브한 생동감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그러나 나의 이런 불만과 아쉬움은, 최고의 우상에게 A학점 작품을 갈망하다가 B학점 작품 밖에 되지 않음에서 나온 실망이다.  순박함서도 말괄량이 엄마 · 철없어 보이지만 인자한 아빠 · 수다스럽지만 착한 할머니들 ·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다정한 이웃들 · 예쁘게 고맙기만한 자연산천과 그 풍광들.  항상 그립고 갈망하는 그런 마을에서, 꼬마 남자애와 꼬마 여자애 사이에 오고가는 우정과 사랑의 사건들과 그 표정들은, 순간순간 우리 모두가 동화 속의 무지개 나라에서 환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아빠와 전등빛으로 대화하는 장면 · 꼬마물고기 떼와 황금 물고기들이 솟구치는 장면 · 포뇨가 파도물고기 위를 통통 튀면서 앙증맞고 귀엽게 내달리는 모습 · 바다의 여신이 화사하게 스르렁 사르륵 등장하는 장면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그 동안 작품은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이 모두 A+이었으나, 이번엔 대중재미 B+ · 영화기술 B+ · 삶의 숙성 C+이다.

<예고편 보기>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3307&videoId=15572


난 젖애기 시절부터 옛 시청 사거리 쪽에서, 60시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던 ‘일본식 풍물들’에 젖어 살았기에, 그 풍물들에 아스라한 추억이 아로새겨진 찐한 향수를 갖고 있다.  일본 교또를 느릿느릿 걸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서 코흘리개 시절로 되돌아간 착각을 생생하게 맛본 적이 있다.  잃어버린 그 고향길을 온 몸으로 자분자분 음미하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길거리 · 그 공원 · 그 건물 · 그 정원 · 그 가게 · 그 풍물들 · · · .  그래서 내가 [이웃집 토토로]에 유난히도 감동하고,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들에 빨려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장난감 통통배’를 만났다.  “아! 저 통통배... .”  그 빨간 색깔에 오동통한 모양새가 똑 같았다.  열 살쯤이었을까?  동네 냇가, 실버들이 연초록 잎새를 마악 터뜨리려는 날, 그 부자집 친구는 장난감 통통배 안쪽에 자리한 촛대에 불을 댕겼다.  “통~통~통~ 통 통 통 통통통통통·····”, 어찌 그리도 귀엽게 물살을 헤쳐 가는지, 훔쳐서라도 갖고 싶어 녹였던 애간장이 다시금 슬슬 아려왔다.

 

 
그 동안의 작품은 어른들이 보아도 많이 뭉클하고 잔잔하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기에, 어른들에게도 주저없이 “꼭 보라!”고 강요하다시피 권장해왔지만 이번엔 그렇게 강요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돈과 시간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니, 그 동안 ‘가족 외출’이 뜸했던 사람은 핑계 삼아 가벼운 맘으로 함께 하시라.  가족이 보기엔, [과속 스캔들]보다 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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