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많이 부는 일요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대나무를 보러 나선다. 비엔날레 관을 지나 시립미술관으로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귀를 흔들며 온갖 세상의 음흉한 소식을 전해주고 반대로 그 어떤 흔들림에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혁명전사 김 남주 시비(詩碑)’를 본다.
녹두꽃과 죽창이 되고자하는 청송녹죽(靑松綠竹)이 거기 있다. 보기에도 튼실한, 몇 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거나 꺾일 리 없는 대나무가 푸릇한 이파리를 날리며 죽창이 될 날을 기다리며 견고하게 서있는 것을 본다.
작가 홍성민의 작품이다.
그가 만들어 낸 청송녹죽의 세계는 혁명 전사이자 이 시대의 영원한 시인의 삶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한다. 대나무가 갖는 고유성에 작가의 영원성이 더해져 저항 속의 유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차가운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걷던 사람들이 시비 앞에 불현듯 서서 ‘노래’를 노래한다. 80, 90년대를 거치면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시대의 흐름으로 형식과 양식이 변하게 보일 뿐이다.
대나무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이자 혜원을 이루는 숲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말한다. “80년 5월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90년 중반 이후 수묵에 대한 과제와 함께 문득 대나무가 내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대나무, 그 곧게 솟은 저항과 유연한 탄력이 무릎 앞에 놓인 하얀 화지의 한지 속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대나무 그림자는 인간과 신의 통로이자 매개로 자리했다”
10여 년 동안 대나무만을 그려 온 작가가 대나무만을 그리고 만지며 작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모든 것이다. “나는 대나무 숲 속에서 떠도는 무수한 영혼을 본다. 대나무 숲의 하얀 그늘에서 버림 받은 영혼이 숨을 쉬며 맑아지는 것을 본다. 맑은 영혼이 스스로 자신의 업장을 씻어내며 혜원을 이루는 숲. 그 숲 속에 맑은 물이 고인다.
그들의 보석 같은 눈물이 고여서 만든 샘이다. 그곳에 아시아의 정신이 풀어져 있다. 나는 그 샘에 붓을 적셔 맑은 영혼들이 숨 쉬는 하얀 그늘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대나무는 대나무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용서뿐 아니라 80년 격랑의 세월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나 만물의 모든 역사, 우주의 질서까지도 반복의 역사다. 우리가 인지를 하든 못하든 순환의 질서를 갖고 있다. 우주의 길이가 1Km라면 작가의 작업은 1Cm씩의 변화일 뿐이다.
작가의 그림은 많은 변화를 보인다. 발전적인 의미의 변화다. 원형의 물성을 간직하고 있는 대나무를 확보한 채 대나무는 단지 죽창이나 혜원의 의미만이 아닌 사회적인 것에 대한 비나리를 연출하는데 익숙하다.
5월의 광주성을 넘어 아시아의 샘으로 확장되다
처음 작가의 그림에서 대나무가 견고하고 단단한 의미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대나무의 이미지는 순화된 매우 감성적인 이미지다. 영혼을 달래는 혜원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조화로운 이미지를 말한다. 타율적인 폭력,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존재를 국가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 조화로운 출발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교토시립미술관에서 이야기한 광주성이나 아시아의 모델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은 개개인의 심연으로 돌아가 개개인을 넘어서는 대중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대나무’ 연작시리즈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대나무 연작시리즈하고는 색이 다르다. 밝은 불빛을 뒷면에서 쏘아 창호 문에 비추이는 듯한 그림자 같은 대숲을 공간연출 했는가하면 직각으로 꽂힌 대나무 먹빛은 숨 쉬는 생명으로 재탄생하는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의 숲3’ 시리즈는 “2002년 뜨겁게 달구었던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 뿐 아니라 2002년 월드컵으로 붉은 악마의 응원이 이루어진 광화문 시청 앞이나 5·18 광장의 운집된 군중,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등 이 시대의 광장문화가 있게 된 역사적 단면을 형상화하려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대나무가 갖는 일반적인 강력하거나 혹은 굳은 의미의 이미지들은 다양한 상상을 불러낸다. 작가의 그림 안에서 대나무는 수많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은 촛불로 보이기도 한다. 각각 다르게 보이다가 어느덧 서로 어우러지며 색깔이 다르게 표현된 대나무의 이미지는 흩어지고 모이는 것을 반복하면서 우리시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곰씹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시아의 숲3’ 시리즈는 혼돈과 질서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문화를 야기하며 어둠 속에서도 화려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빛나는 우리의 정신, 영혼들을 다채롭게 풀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갖는 혜원이다. 5,18항쟁 후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매개’의 역할에서 진일보한 의미, 다시 말해서 예술성 안으로 끌어들인 그만이 갖는 독특한 서술적이면서도 보듬어 치유하려는 한계를 뛰어넘은 희망과 긍정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갖는 세계관이자 앞으로 그가 살아가면서 표현하고자하는 삶의 가치다.
강렬한 대나무 이미지는 단순한 대나무 형상의 숲이 아닌 우리 아시아인, 나아가서는 세계인들이 삶과 정신, 영혼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생명의 숲이다.
프롤로그
어느 날 단 한 번의 꽃을 피우며 스스로 말라져가며 순식간에 죽어버린다는 대나무. 한 번에 한 나무가 하나만 꽃 피우는 것이 아닌 순식간에 하나의 꽃이 주변의 모든 대나무 밭을 물들이며 온통 목화밭처럼 허옇게 꽃을 피우고는 흔적도 없이 스스로 고사해버린다는 대나무.
그들이 스스로 제 살을 꺾이고 후둑후둑 말리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나무 우거진 사이를 걷는다. 쉬엄쉬엄 무심한 듯 걷는다. 온갖 바람은 서걱이며 대나무 잎 안으로 걸어 들어와 세상에서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바람의 소리, 대숲의 소리, 영혼의 소리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 꽃이 되자 하네 꽃이 /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 녹두꽃이 되자하네 //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 새가 되자 하네 새가 /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 예는 / 파랑새가 되자 하네 //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 불이 되자 하네 불이 /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 들불이 되자 하네 //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 다시 한 번 이 고을을 / 반란이 되자 하네 / 청송녹죽이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노래(죽창가) - 詩 故김 남주
일시 : 2008년 12월19일(금)~2009년2월1일(일)
장소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문의 : 010-2977-0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