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작업이 궁금해, 작업실 앞을 지나는 길에 끝내는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번쯤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작가의 마음이 오히려 고맙다.
여전한 모습이다. 좁고 작은 작업실에서 100호가 넘는 대작을 준비하던 전시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넘어가고 이번에는 잘 자라지도 않은 마디 뭉툭한 손가락으로 세밀화를 그렸다. 그려진 담쟁이넝쿨이 촘촘하다 못해 바늘하나 들어 설 자리 없이 빼곡하다.
노랗고, 늙은 호박만한 난로를 하나 사이에 두고 엎드려 한 잎 한 잎 담쟁이를 그렸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홍시처럼 붉은 모습으로 선연하다.
색색이 벽에 매달리거나 흡착해 있는 담쟁이 이파리들이, 세상살이에서 어쩌다 찔려 쓰리고 아프다고 누워 오히려 당찬 걸음이 되고자 다시는 안 찔리겠다고 오기를 가진다. 한 번쯤 밟힐 필요는 있지만 다시 걸어야 한다고 바람으로 말한다. 익숙한 몸짓이다. 마음이 찡하다.
화폭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있어
담쟁이는 곧 작가 자신이다.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날들이다. 한때는 온통 푸른 초록의 날들이기도 했다. 초록이 너무 짙어져 차라리 붉은 색이 되고 결국에는 제 스스로 몸을 불태워 바스러지는 겨울을 맞기도 한다. 겨울은 겨울이 아니다. 스스로 바스러져가며 제 몸 안에 새로운 연초록 이파리의 꿈을 키운다. 미래를 준비한다.
화폭 안 담쟁이넝쿨들이 세상에게 불온한 감정을 섞어 말을 건다. ‘지도 한 장 없이 떠나와 자리를 잡았다. 산 넘고 물살 센 개울을 건너, 날고 또 날아서 터를 잡았다. 등이 휘도록 바람을 이기고 그 바람에 맨 살이 찢겨져가며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우리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담쟁이넝쿨들은 다시 일렁이는 눈빛으로 보여준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이제 옛날이 가득 차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알알이 보석으로 채워져 있다. 멈추지 않는 생명력으로 이어진 끈질김으로 더 굳건히 뿌리를 박는다. 소중한 보물을 간직한다. 팔아치우거나 저당 잡힐 수 없는 생명력이 담보다.’
그림 안의 담쟁이넝쿨들은 수직으로 혹은 가로로 누워서 생각이 깊다. 담쟁이들이 바람에 제 몸을 바스러트리며 말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이 날아오르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훨씬 지났는데 절반도 못가고 있다. 벽은 온통 못 투성이. 다가가 바라볼수록 촘촘히 박혀있다. 본능으로 배운 단어와 공식들을 동원해 또 올라야 할 길을 내다본다. 나를 잊고 지낸 어느 날 문득 벽 한 곳의 문을 바라본다. 찾으려 할수록 가려져 있는데 어느 것인지 어디쯤인지 안달하지 않으니 오히려 보인다.’
몸이 아파 비로소 깨달아 밖을 보는 법. 아픈 때만큼 살아가기.
다시 생명력을 몸 안에 키워내며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서 담쟁이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이고 살아온 날들, 혹은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흔적’과 ‘희망’이다. 인생의 사계를 뛰어 넘은 담쟁이를 통해 끈질긴 희망을, 굳건한 생명력을 노래하는 흔적이다. 더불어 담쟁이가 꾸는 꿈도 보여준다.
작가의 손은 장애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장애다. 분명 손가락의 마디는 피부 안에 있는데 손가락을 만들어내는 뼈가 길이로 자라지 않은 뭉툭한 기형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림만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일부러 만들어준 집 안의 내력”이라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건강한 사고다.
담쟁이 시리즈를 처음 보았을 때 아!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 이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엎드려 자신을 채찍질해야 반듯한 선으로 색깔이 입혀지는지를 알기에 내뱉어지는 한숨이다.
한때는 선과 형태만을 잡아 고양이만을 그리기도 했었고 인간의 인연에 대해 심오한 지문을 열거하듯 그림으로 그린 적도 있었다. 살아있으므로 그림은 늘 변화해가는 것이고 그것은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생명력이다. 어쩌면 작가는 변화해가는 것이 자신이 아직 세상에 살아있다고 지르는 고함일지도 모른다.
시리즈 중 달개비와 함께 한 연꽃들도 수작이다. 몇 번을 덧칠했는지 모를 깊이의 바탕에 스크레치를 하듯 긁어 형태 안의 선들을 완성한 기법은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신선함을 준다. 원색에 가까운 색들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어울림으로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작가의 세심함이 작품 안에 그대로 보여지고 느껴진다.
먼 길에서 바라보는 산은 가파르지 않다. 미끄러운 비탈길 보이지 않고 두릅나무 가시 겁나지 않고 독 오른 풀들도 무섭지 않다. 발 디딜 틈 없는 통로며 선반에 올려 진 짐 꾸러미도 두렵지 않다.
담쟁이가 된 작가는 오늘도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마디 덜 자란 손가락의 흡착으로 오히려 세상을 끌어당기며 오른다.
프롤로그
‘오늘이 내가 살아가야 할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운전하다말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바로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기억을 뒤집어보아도 그 이전은 백지다.
삼각형이나 사각형이나 각형으로 서는 일은 원형에서보다 어렵다. 시간이 더 걸린다. 위험하다. 한 귀퉁이에 서면 중심이 안 잡혀 나머지 각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고 어렵게 중간쯤 찾아서 서도 불안하다.
창가를 바라본다. 이미 몇 차례 눈이 내렸고 겨울의 찬바람은 생활 깊숙이 들어선 지 오래다. 벽에 무심한 듯 흡착하고 있는 담쟁이넝쿨들은 거꾸로 살아가는 의미를 이미 알고 부러지고 깨지면서도 바람과 함께하는 것일까.
세월이란 망각에 젖어 조각난 간밤의 꿈을 다시 꿰매느라 번뜩이는 손놀림을 갖는다. 겨울 황사바람 속에서도 철조망 담장을 넘는 아침 햇살의 저 눈빛들. 음울하고 불온한 꿈들이 힘줄로 반란처럼 담쟁이넝쿨 피톨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
일시 : 12월18일(목)~2009년 1월2(금) / 2009년 1월5일(월)~1월11일(일)
장소 : 일곡갤러리 무등갤러리
문의 : 010-9957-3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