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가을이 남아있는 그곳 습지.
세상의 모든 가을이 남아있는 그곳 습지.
  • 전고필
  • 승인 2008.12.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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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곡성군 석곡면 반구정

▲ 반구정으로 들어서는 길. 제방아래에는 침수식물과 정수식물들이 가을을 삭히고 있고 오솔길에는 간섭없이 자란 나무들이 연신 가을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려의 신하 이규보가 눈 내리는 날 그리운 벗을 찾았다. 하지만 벗은 없었고 아쉬운 마음 그냥 돌이킬 수 없기에 말 채찍으로 쌓인 눈 위에 글을 남겼다.
  
“雪色白於紙 /종이보다 더 하얀 눈 위에 擧鞭書姓字/ 채찍으로 내 이름 쓴다 莫敎風掃地/바람아 불지 마라 지워 버릴라 好待主人至/ 친구가 내 이름 볼 때까지 기다려 주렴”

▲ 저 바위에 쓴 글을 보면 이 나라 행락문화의 한 모습을 상기할 수 있다. 텃세가 쎘던지 제발 행패 좀 부려서 마을 인상 더럽히지 말자는 간곡한 호소가 하얀 페인트 글씨로 웅변하고 있다.
 
아! 내가 바람이었다면 그 간절한 마음 받아 들여 오늘까지 그 글을 간직해 주었을 것 같다. 기온이 하강하니 자연스럽게 따뜻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안방이 그렇고, 장작불이 그렇고, 차 한잔이 그렇고 벗들이 그렇다.
  
하지만 세상의 속도에 맡겨진 삶은 그런 소박한 바람도 거저 주진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인지 알면서도 그리웠던 옛일을 떠 올리면 오늘이 남루해진다.
  
그런 와중에 시간이 정지된 듯한 아니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 하나 퍼뜩 떠오른다. 돌실나이로 유명하고 석쇠 불고기로 유명한 곳 바로 석곡이라는 동네 주암과 면한 반구정이라는 정자이다. 반구정은 이곳 말고도 임진강에도 존재한다. 낙향한 황희가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살겠다는 곳인데 이곳 석곡의 반구정도 그렇다.
  
조선 인조때 교리 벼슬을 한 입택 김감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와 교류했던 인물을 보면 인품과 신망을 추측해 볼 수 있기에 들춰 보면 사계 김장생, 김상헌, 이항복 등이었다고 한다.
  
여튼 그가 향리에 있는 동안 호란의 소식을 접했다. 국록을 먹던 이로서 치욕과 같은 오랑캐의 침략에 국본이 수모를 당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하여 병장기를 구하고 사람들을 수습하여 왕이 있는 남한산성을 향했다. 하지만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고자 성문을 열고 고개를 조아린 왕의 소식을 듣고 참담함을 저어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은둔하며 살겠다고 보성강 물자락이 휘어도는 물굽이 벼랑위에 반구정을 지은 것이다.
  
이런 그의 삶과 유사한 이가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 화순 적벽의 적송 정지준이다. 고산은 바다가 위로해 주었다면 적송은 피보다 붉은 적벽의 바위가 품어주었고, 입택은 보성강의 푸른 물줄기가 안아 주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입택 김감의 행적을 추적하기에는 기량이 딸린 터라 반구정에 서면 그분에 대한 연민은 20% 정도에서 접고 나머지 8할은 바로 그 정자 발자락에 펼쳐진 습지로 향한다.

습지, 그 동안 쓸모없는 땅이라고 괄시를 받았던 공간이었지만 습한 땅은 자연의 씨앗창고이자 인간의 시간창고 역할을 얼마나 깊게 감당했는지 많은 곳의 증거물들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먼 시간대로 가면 남도의 신창동 유적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삶의 모습을 세세히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고, 경주의 안압지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별채의 건물 안에 모든 유적이 시간을 거슬러 신라왕실의 모습을 현현해고 있다. 이곳 반구정 일원은 생태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공간 역할을 한다.

▲ 북쪽에 있는 산자락에서 강물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연신 나뭇잎을 보낸다. 강물은 그것을 받아 뻘을 더욱 진하게 만들며 건강한 생명을 키워낸다. 깊이 1미터 남직한 공간에 부들, 창포, 갈대, 고마리, 뗏장, 어리연꽃, 왜개연꽃 들이 옹기 종기 모연 산다.그늘에서는 자라, 메기, 가물치, 장어, 붕어 등이 활기찬 생활을 누린다.
  
애초 이곳은 보성강의 본류였는데 주암댐이 생겨나면서 강의 본류가 제방으로 쌓이며 곧게 펴진 탓에 마치 외딴 저습지가 되어 버린 운명이었다. 거기에 사유지를 지닌 분이 땅을 파서 양식장을 만들고 민물고기 양식을 했다.
  
하지만 주암댐이 가득차서 방류를 하면 본류대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물줄기가 이곳 반구정으로 역류해 들어온 것이다. 마치 낙동강의 범람으로 우포늪이 형성되는 것처럼. 결국 양식장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주인은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그리고 물을 끌어오던 공간도 점차 습지식물이 치고 들어와 어느 곳이 사유지인지 어느 곳이 수계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주암댐이 앗아간 자연형 하천의 모습과 그 곳에 서식하던 다양한 습지 식물이 바로 이곳에 생명을 잉태하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주암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은 몇해 전 한국내셔널 트러스트에서 보존해야 할 습지로 지정을 하였고 그 보다 여러해 전까지는 석곡과 주암사람들이 천렵과 소풍을 즐겼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조사들과 습지 보존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 정도가 찾고 있다. 덕분에 손때 묻지 않은 습지식물과 조그마한 야산을 배경으로 자라는 참나무와 단풍나무와 소나무들이 옛 원형을 향해 서서히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옛것들이 그리운 날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강의 역사와 입택 김감의 영혼이 서려 있는 반구정을 찾아보자. 융단 같은 참나무잎들이 아직도 가을을 간직한 채 포근하게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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