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이 삼켜 버린 흔적을 찾아서
수몰이 삼켜 버린 흔적을 찾아서
  • 전고필
  • 승인 2008.11.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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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남면과 북구 석곡동 광주호 상류

▲ 언제나 그렇듯 무등산은 너른 품을 활짝 벌리고 있다. 그 품안에서 수많은 인걸들이 자라났고 우리도 함께 자라고 있다.

광주호의 물이 훌쩍 빠지자 사라졌던 마을의 입석이 들어온다. 학들이 내려와 쉬었던 마을이라는 ‘학선’을 상징하는 돌이다. 1976년 완공된 댐은 사람들은 몰아냈지만 마을의 수호신은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수장하였다.
  
부처님의 광배모양을 한 입석을 보며 무등산을 올려본다. 뫼산 모양의 무등이 커다란 팔을 벌리고 중생을 안아주는 형국이다. 다시 보니 무등이 광배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 모두 부처같다.
  
그런 무등이 흘러보낸 물줄기 원효계곡을 따라 수많은 인걸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는 충장로의 상징 김덕령이 있고, 그 사화를 피해 낙남한 선비들과 처사로서의 삶을 구가한 석천 임억령, 사촌 김윤제, 소쇄공 양산보 같은 이들이 있다. 좋은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이 끊이지 않듯 무등산 자락에는 서하당 김성원이 둥지를 튼 서하당이 있고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어 주었던 식영정이 있으며, 사촌 김윤제의 환벽당도 있다.
  
양산보가 은일하며 학문을 연마하고 당대의 지사들과 교유하였던 소쇄원도 바로 무등산 아래 그 자락이다.
  
그 산이 낳은 물줄기를 보며 그 몸에서 배태된 바윗돌을 보며 끝내 채워야만 다음 길을 택하고 그 사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물의 성정을 닮고자했고, 끝내 정한 마음의 선택을 결코 돌이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바윗돌을 보며 다짐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여행은 늘 주인공을 바라본다. 의당 원효계곡 들머리에 들어서면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등에 들어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다 보니 소쇄원 같은 곳은 사람의 발길에 밟혀서 죽어가고 있다.
  
이번 길은 광주호가 앗아간 그리웠던 옛 시절을 호명하며 그들 정자문화의 배경, 물이 차면 보지 못할 수몰지구를 걸어 봤다.

▲ 수몰은 산천을 물에 수장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귀한 것을 알아보는 옛 사람들의 안목을 물질로 재단하는 몰가치한 사람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게 할 명분까지 준다.노자암, 석병풍, 자미탄의 운명이 저 정 맞은 돌의 자국에서 보여진다.

광주호 호수 생태공원 제일 끝자락의 입석을 시작으로 억새 하늘거리는 길 없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신발이 흙으로 중무장한다. 그 흙 데리고 다시 호안을 따라 걸으니 일곱 개의 바위가 맞아준다. 흐르는 원효계곡에 지천으로 널린 물고기를 잡으러왔던 물새들이 사냥을 하면서 날개를 쉬었던 곳이라 해서 ‘노자암(??岩)’이다. 마을 사람들은 칠성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명을 관장하는 칠성님이 76년 이후 늘 물 안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일곱 바위 중 가장 큰 바위가 정 자국과 한 면을 떨어간 흔적이 보인다. 수장이라는 무관심을 활용하여 누군가가 소중한 바위의 내력을 털어간 것이다.

수장 전 이 바위들을 발굴해 보니 청동기의 고인돌로 판명되었고 몇 가지 껴묻거리들이 함께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그 누구도 관심 없음이 바위에 새긴 글이 도둑맞은 것에서 짐작된다.
  
짠한 마음 접고 맞은 편으로 눈을 돌려 보니 벼랑위에 식영정이 설핏 보인다. 좋은 경관이라는 것이 밖에서 보면 안은 보이지 않으나 그 내부에서는 밖에서 환히 보인다더니 식영정의 형국이 바로 그 모습이다.
  
식영정의 발 아래 흘렀던 푸른 물들이 바위 벼랑에 부딪히며 생동감을 부여했던 옛 시절을 상기하고자 지방도의 사면을 보니 나타나야 할 ‘석병풍’ 대신 석축만 나타난다. 도로를 개설할 때 바위가 방해가 되니 다이너마이트로 조각을 내었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 개울을 따라 10리에 걸쳐 심어졌던 배롱나무도 사라지고 석병풍도 사라지고 노자암의 바위도 상처를 입고 말았다. 담수호의 위력은 식영정을 출입했던 석천, 서하당, 면앙정 송순, 제봉 고경명 등이 읊었던 천하의 절경을 그렇게 짓밟고 수장시켜 버렸던 것이다.
  
다시 호수를 따라 올라가니 충효교가 드러나고 우측으로 환벽당이 슬쩍 모습을 비춰준다. 소나무 4그루가 물에 그림자를 비추는 그곳은 ‘용소’다. 사촌의 꿈속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나와 보니 송강정철이 있어 그리 다려다 10여년을 공부를 시킨 인연이 닿은 곳이다.

거기 소나무 아래 바위가 튀어나온 곳을 보니 ‘조대’ 라는 글과 ‘지수석’이라 새겨 있다.
  
선비들이 세상의 시름을 잊기 위해 낚시를 하던 바위라는 것과 물이 멈춰서 흘러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선비들 여기 광주댐이 들어설 것을 어찌 알았을까 싶어지며 흩어지는 낙엽들이 개울로 하강하는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수몰이 앗아간 승경의 조그만 단서를 만나는 길. 물 차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길을 그렇게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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