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하늘까지
걸어서 하늘까지
  • 범현이
  • 승인 2008.10.31 19: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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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부조를 완성해가는 작가 박은수(44)

▲ 박은수 작가.
몇 년에 걸쳐 지켜본 작가다. 그 독특한 재료에 지켜보고 조대 공대 옆 허물어져 가는 담 아래 작업실이 힘들어 보여 지켜보았다. 처음 작가를 만났을 때는 늦겨울이었고 난로마저 고장이 나서 무척 추웠던 작업실의 풍경이 기억난다. 아마 진눈깨비도 내렸던 것 같다.

다시 만난 작가는 새로운 환경의 작업실로 이전해 있었다.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도 가까이서 잠깐씩 볼 수 있는 공원도 있었고 조용한 마음을 가지고 작업하기에 아주 근사한 널따란 공간이었다.

간판이 너무 멋졌다. 예전 사람이 놓고 간 12m정도 되는 간판에 시트지를 일일이 뜯어내고 자신만의 독특한 ‘군상’을 직접 그린 것이다.

앞으로 하염없이 나아가는 사람들, 걸어서 하늘까지 가야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독특한 간판만 봐도 작가의 역량이 짐작이 간다.

신문지 안으로 길을 찾아 나서다

▲ 박은수 作 「군상-새로운 메타포를 위하여」
아주 어린 시절 신문지를 잘게 잘라 물에 녹여 종이찰흙을 만들어 탈을 만든 기억이 있다. 미술시간 ‘그 무언가’를 표현해 내기 위해 노력했었던 기억은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소중한 기억 중의 하나다.

작가는 어린 날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종이찰흙에 관한 향수를 전혀 다른 시각과 맥락에서 돌이켜 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업과정은 놀랍도록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신문지를 모으는 일에서부터 잘게 부수는 일, 켜켜이 섬세하게 녹이고 붙이고 말리며 다시 깎아 내는 과정은 지극한 열정과 실험정신 없이는 절대 만날 수도 부딪힐 수 없는 일이다.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재료가 그를 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게 한다. 특히 신문지만을 고집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신문은 매일 그날그날의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얽혀 만들어 내는 삶의 연결고리며 과거와 현대의 삶을 이어주는 인연이기도 하다. 인간들이 서로 군상(群像)으로 더불어 살아가며 역사를 만들고 진보해가는 끝없는 자연의 이야기와 간절한 메시지가 신문,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가 중점을 두고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완성된 작품 이전에 갖고 있는 재질 본래의 속성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종이’나 ‘신문지’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존재’로서 의미를 더 두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보여 지는 밋밋한 색채로만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다. 한때 돌가루(석분)로 작업을 한 적도 있었으나 늘 독특한 재료에 목말라 있던 작가에게 신문지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왔고 그의 작품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만져보게 하고 깊어지는 색깔까지 다양한 울림으로 다가서게 한다.

평면 위로 걸어 나온 신문지로 만들어진 릴리프(부조)의 강렬한 이미지는 단순한 강렬함보다는 어떤 이미지 전달을 먼저 갖게 한다. 크고 작은 캔버스 위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때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얼굴이 도드라져 코가 손에 잡히고 뼈만 있는 것 같은 손도 직접 잡아볼 수 있다.

단지 물성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운, 꼬고 앉아있는 무릎과 다리를 살아있는 내 무릎과 다리로 기대볼 수도 있다. 물성과 생명의 만남은 경이로움이다. 다가오는 조화의 이미지며 황홀한 작은 울림이다.

너, 나, 우리 - 사람이 중심이다

▲ 박은수 作 「군상- 오래 기억되고 싶은 사람」
“삶의 방관자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집단을 표현하고 싶어 누구나의 삶이녹아 침전되어 있는 신문지를 고집하고 있다”며 “혼합된 수많은 종이들을 캔버스 위에 구도하는 수도승의 자세로 붙이며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작가는 이미 광주광역시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선택해 개발한 독특한 자기만의 재료에 향기를 불어넣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보여주고 표현 하고자 하는 작업에 대한 새롭고 극적인 재료 선택은 다루기 어려운 과정을 수반하였고, 이런 도전의지가 현재의 작품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굳이 군상(群像)이란 테마로 사람들만을 작업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작은 것 보다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찾아가고 싶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 추구 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추(醜) 속에서 세상의 주체인 사람을 찾고 싶었다. 사람이 중심이다”며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을 ‘전쟁터’라고 표현하며 나, 너에서 출발하여 이후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군상과 군상의 집단을 작업할 예정으로 현재는 그 일환으로 입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면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오브제가 걸어 나온 작가의 독특한 질감의 작품들은 12월이면 전시장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다.

에필로그

▲ 박은수 作 「군상- 생각하는 사람」
산(山) 하나 쌓으니 산 하나 무너진다. 절망은 늪이 아니라 무기질의 무르익은 삶의 거대한 토양이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너무 멀리 돌아 온 길 후회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무너질 것도 없고 막을 것도 없다.

돌담을 쌓다보면 알게 된다. 저마다 누구에게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강(江)하나 막으니 강 하나 흘러간다.

작가는 이미 수십 개의 화살이 되어 어둠 속을 달려가 박히는, 부서져 가루가 되는 제 몸이 되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갈고 닦는다. 살을 베는 날카로움을 속으로 가두고 아무리 작은 몸이라도 날아가 큰 무기가 된다.

그의 작품 안에서는 슬픔, 우울, 고통이 보인다. 하지만 더불어 희망도 보인다. 암울했던 시기의 시인 백석이 생각난다.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 석의 ‘여승(女僧)’시집-사슴.1936>

문의 : 016-9331-7745

▲ 작가 박은수

조선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동 대학원 미술학 박사졸업 / 개인전 9회 및 인재미술관 초대 2인전.
초대 및 단체전- 2008 북경 올림픽기념 초대展 (북경해동갤러리-중국) / 오월의 “서곡(序曲)”展 (시립미술관-광주). 영‧호남 미술교류展 (문화예술회관-대구) / 48의 보행展 (도립 옥과 미술관-전남) /2007 광주미술 현장展 (광주시립미술관-광주) / 미디어아트와 즐거운 상상展 (현대백화점-서울)외 단체전 160여회 참여.
수 상-무등 미술대전 대상 /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최우수상 및 대상 / 행주 미술대전 대상수상
현재  한국미술협회. LMN. 그룹새벽. 환경미술협회. 한국조형학회. 조선대학교 출강.

 

   
▲ 박은수 作 「군상-박제된 현대인의 상」

▲ 박은수 作 「군상- 생각하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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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이 2008-11-06 13:35:30
좋은 작품을 눈여겨 보아주셔서 제가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제 역할은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작가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처럼 혜안을 가진 분들이 많이 보아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진 2008-11-05 17:43:52
좋은 작품이란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라 삶의 무늬와 무게를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기자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