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에 문근영 ‘국민 남동생’으로 떠오르다!
[바람의 화원]에 문근영 ‘국민 남동생’으로 떠오르다!
  • 김영주
  • 승인 2008.10.29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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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진주귀걸이 소녀] · [샤이먼 샤마의 미술특강] · [고야의 유령]을 이야기하면서, 서양의 그림에 내 감흥을 이야기하였다. 이번엔 TV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동양 그림이다. 중국 그림은 좋은 게 많지만 너무 귀족적이거나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몽롱하고, 일본 그림도 대단하지만 너무 압도적이거나 자극적이어서 감당하기가 힘들다. 난 우리의 조선 그림을 훨씬 좋아한다. 강희안의 <고사관수(高士觀水圖)>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매우 좋지만, 중국 냄새가 너무 찐하다. 정선의 <금강산도(金剛山圖)>는 육산(肉山)과 골산(骨山)에 서린 기개가 다부지고 옹골차며,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대쪽 같은 선비의 절개가 독야청정(獨也靑靑)하여 고고(孤高)하지만,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강직하고 고결해서 부담스럽다.

* 윤두서의 <자화상> · 신윤복의 <미인도> · 김홍도의 풍속화

가장 감동하는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신윤복의 <미인도>이다. 내겐 이 세상 ‘최고의 그림’이다. <자화상>은 조선 유학이 다져낸 최고의 카리스마가 도도하게 엄숙함에 반하여, <미인도>는 조선 예술이 빚어낸 최고의 미감이 오롯하게 단아하다.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음양(陰陽)거울을 삼아 ‘내 삶의 두 기둥’으로 간직하고프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 도도한 엄숙함과 오롯한 단아함 사이를 생활 속의 털털한 소박과 넉넉한 해학으로 묶어주기 때문에,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김홍도이다.

그래서 동생 판화숙제로 <씨름>을 고무판에 본을 떴고, 조카 미술숙제로 <춤추는 아이>를 판박이로 모자이크했고, 딸아이 생일카드로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에 샛노랑 저고리에 샛붉은 치맛자락 추슬러 그네 뛰려는 그 선명하게 아리따운 한 컷을 담아 주었다. <씨름>판화는 30년이 넘어서 고무판이 삭아 너덜너덜 조각나 버렸고, <춤추는 아이>모자이크는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바로 눈앞에 걸려있으며, <단오풍정>카드는 딸아이 타임캡슐에 10년 동안 고이 잠들어 있다. 그런 인연이 맺힌 김홍도와 신윤복을 소재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TV드라마가 지금 방영되고 있다.

* Faction[바람의 화원], 문근영 다시 떠오르다.

[바람의 화원]은 Fact와 Fiction을 뒤섞은 Faction이다. 이 세상엔 100%Fact도 없고 100%Fiction도 없다. [바람의 화원]만 Fact와 Fiction이 뒤섞인 Faction인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게 Faction이다. 단지 우리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 Fact와 Fiction이 섞이는 비율이 다를 따름이다. 신윤복을 김홍도의 남장여자한 제자로 Fiction하였다. 신윤복의 그림이나 색감이 여자스런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여자가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활동 무대가 다르고 그림 스타일도 사뭇 다르니, 사제 관계도 아닐 것이다. 김홍도(1745년~?)와 신윤복(1758년~?)은 조선 정조시대(1776년~1800년)에 주로 활약한 화가,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화가의 여러 그림들만 Fact일 따름이다. 나머진 모든 게 작가가 재미삼아 상상으로 만들어낸 Fiction인 셈이다. 우리는 작가와 피디의 상상력에 기대어 그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그 화사한 장면들을 마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남장여자 신윤복의 역할을 맡은 문근영이, 사뭇 돋보인다. 그 모습 그 역할에, 그녀보다 더 어울릴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에서 ‘국민 남동생’이라는 별명까지 얻을만 하겠다.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이 이 영화를 온통 압도한다. 문근영에 의한, 문근영을 위한, 문근영의 영화이다. 문근영이 스스로 빼어난 매력을 보여준 건지, 감독이 문근영의 매력을 잘 살려낸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이라고 했는데, 이 역할에서도 그녀의 연기력이 뛰어난 건지 그 생김새 자체가 그렇게 어울리는 건지, 완전 딱이다.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에서 보여준 매력이 또 한 번 도약해서 더욱 높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는데, 이렇게 빼어나게 다시 승천하는 모습을 보니 여간 흐뭇하지 않다. “문근영 신드럼은 순풍에 돛을 달아 더욱 두둥실 떠오르겠다.” 남의 일로 이렇게 기쁘기는 흔치 않다.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열정한 감정’이다.

* 볼만한 눈요기, 정성스런 그림, 산뜻한 재치, 그러나 ... .

스토리의 터전과 흐름에 조금 억지스러운 어색함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의 갈등이 정치적 암투의 틈새에서 밀고 당기는 긴박감을 단단하게 몰아간다. 문근영의 두드러진 연기와 박신양의 열정한 연기가 조연들의 고만고만한 연기를 잘 이끌어 가며 중심자리를 잘 지켜준다. 그 사이에 정조의 개혁정치 그리고 기생 정향의 아리따움과 행수 왈짜패의 음산함이, 후추양념으로 톡 쏘는 맛을 곁들인다. 그 유명한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매개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섞여 있으며, 화려한 풍물에 선연한 색감을 살린 의식주 생활도구의 소품들에 많은 정성이 들어가 눈요기가 쏠쏠하다. 특히 그 그림들이 그려져 가는 과정을 살려내는 장면이 정성스럽게 가상하고, 두 화가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여주면서 이에 발맞추어 스토리를 엮어가는 아이디어가 산뜻하게 재치있다.

영화[스캔들]은 그 조형감과 색채감이 도를 넘지 않게 우아하고 화려해서 오히려 뿌듯함을 주었다. 요즘 역사드라마를 보노라면, 의상이나 건물 또는 생활용품이 보여주는 화려함이 사치스러움을 넘어서서 요란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이다. 눈에 걸려든 것만 말해보면, [황진이]는 참아줄만했는데, [태왕사신기]와 [대왕 세종]은 지겨웠다. 나름대로 의상 · 미술 · 소품에 솜씨깨나 있다는 사람을 썼을 터인데 겨우 이것 밖에 안 되나? [바람의 나라]도 상당히 거슬렸다. [바람의 화원]은 그나마 조금 괜찮지만 여기저기서 지나치다. 대사의 숙성도가 떨어지고, 선과 악을 몰아치는 모양새가 좀 유치하다. 바보상자가 장사되려면 중딩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고딩 눈높이쯤으로 높여주면 좀 안 될까?

지금 이 세상이 ‘껍데기’로 요란하다. 그 달콤한 맛도 없지 않지만, 완전히 한탕주의이다. 너무한다. 이젠 세상이 방향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윤두서의 <자화상> · 신윤복의 <미인도> · 김홍도의 풍속화를 재미 삼아 즐기는 걸 넘어서서,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고 반성해서 가다듬어야 할 거울임을 새겨야 하겠다. 서울 성북동 ‘간송 미술관’의 이번 가을 전시에, <미인도>를 보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날이면 날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나도 <미인도>가 <모나리자>보다 열배 백배 좋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각만 즐길 게 아니라, 그 미감에 어린 정신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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