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세상 속으로
걸어, 세상 속으로
  • 범현이
  • 승인 2008.10.14 17:16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 안에 새로운 둥지를 튼 작가 신양호(48)

▲ 신양호 작가.

사람들이 부산스러운 대인시장 안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비엔날레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 작업실이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 보다 더 바쁘다. 사람들도 비엔날레 작가들 관람을 하러 와서 엉겁결에 작업실인 그의 스튜디오에도 발길을 들여 놓고 나갈 줄을 모른 채 넋을 잃는다. “심상치 않다”고 작가는 웃으며 말한다.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덕택에 오래전 잊혀 진 줄 알았던 지인(知人)들도 많이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문도 확, 열어 두었다. 매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벽 없이 살아가는 시장상인들처럼 자신의 작업실도 시장 한 쪽의 상가로 몫을 해내기 위해 문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마음도 맑고 최대한 투명해졌다. 적막하고 외롭던 곳에서 평정심을 되찾고 사람들 안으로 걸어들어 온 만큼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작가가 꿈꾸며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온 보람이 있다. 작가가 바람을 갖고 꿈꾸던 소통이었다.

불편한 하수구 냄새도 사람 사는 냄새

▲ 신양호 作 「갈치」
아직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구상도 계획도 없다. 시장 사람들과 한 몸이 되고 그들과 의, 식, 주를 같이 하며 시장 사람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녹아들어 다시 스며  나오는 것들을 어떤 것들을 작업으로 이끌어낼 예정이다.

“한 때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싫어 산 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적막한 곳에서 작업을 하며 느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볼 수 있고 사람들 안에서 해 낸 작업이야말로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 산 아래 마을에서 세상에서 가장 부산스럽고 불편한 냄새 가득한 시장 안으로 서슴없이 걸어들어 와  똬리를 틀었다.

작업실 쇼윈도 유리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각 종 생선들이다. 맛깔나게 누워 있는 전어 서 너 마리부터 도미, 조기, 갈치까지 제 각각의 고유 물성을 가지고 비엔날레 관람객들을 더불어 맞이한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은빛 나는 은 갈치 이름은 ‘대인시장 은 갈치’다. 족히 1m는 되어 보이는 길이를 가진 은 갈치는 바로 옆 생선가게와 알게 모르게 어우러져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다. 유리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전어 역시 ‘어? 전어다’하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히 작업실 안까지 들릴 정도다.

“먹고 싶을 때 그렸다. 사람들이 생선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갖는 바람에 작가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것일 뿐”이라고 작가는 미소를 지으며 겸손해 하지만 사람들 안으로 녹아들어가기를 바라며 기울이는 노력이 눈물겹다는 것이 보인다.

▲ 신양호 作「금쇄동석뢰뢰」

갈치와 그 밖의 생선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과 소통해


▲ 신양호 作 「MOMERY」
작가의 현재 작업은 일단 재밌다. 인기 폭발이다. “싫증이 날 때까지 갈치와 생선들을 그릴 것이다. 그래도 갈치가 헤엄쳐 갈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편한 마음으로 자기만의 눈으로 해체하고 다시 형상화 된 갈치를 그린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어서 그림 그리기가 쉬워졌다. 마음도 편하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패턴을 깊게 잡아 생각해서 마무리하라는 충고도 해주지만 작가는 “똑같은 갈치를 내가 표현하면 어떤 식이 될까 궁금해 견딜 수 없어 그려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것, 서로의 다른 방식과 놓쳐버린 시선을 찾아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려내고 싶을 뿐이다.

그를 판화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으로 판화를 선택했을 뿐이다”고 항변한다. 그의 작업실 2층에 있는 예전의 작업들은 판화와 미니멀아트(Minimal Art)가 대부분이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미니멀은 ‘최소한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Illusion, 환상, 착각, 의미)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회화의 감동성, 풍부함, 또는 자기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심화를 기본으로 하는 기존의 예술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어떤 형태를 갖거나 모양을 만들어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판화든 회화든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안개 속을 들여다보듯 미려한 몽환을 그려내지만 확장 된 화폭 안에는 다시 형체를 만들어내는 무엇인가가 들여다보인다. 작가의 역량이 거기에 있다.

형체 없는 어떤 것들이 네모로 혹은 원으로 단지 흐물거리는 색으로 만나 덧칠해지고 다시 재조정되면서 그림들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각자의 눈과 빛 안에서 새로워진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 간 작가나 시각적인 충격 없이 스치는 바람처럼 그려지는 그의 그림, 모두가 다 편안하다. 새로 태어난 얼굴에서 온통 푸른빛이 보인다.

프롤로그

▲ 신양호 作 「Untitled」
작가는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편안해보이고 비로소 자신이 서야할 자리를 찾은 듯했다. 수많은 불면의 밤들을 지새우고 나선 지금 이제는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인동 시장 안으로 작업실을 옮긴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 온 것 같았는데 뒤돌아보니 스스로에게 등 떠밀리며 그림을 그려온 것 같다고 표현했다.

더불어, 끄집어 내 없애버리기보다는 마음이 너무 여유 있어 시간을 벌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림 그린다며 등한시했던 삶의 모든 풍경, 구상적인 것들에 희망을 다시 가질 용기도 얻었다.  더불어 작업실이 정리되고 마음이 평정을 찾으면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1층은 오픈 스튜디오 개념으로 찾아오는 누구도 환영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낸 일상을 그리는데 마음을 다할 것을 기대한다.

문의 : 011-627-288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홍혜영 2008-12-27 17:44:05
남도를 여행하고 오신 뒤~ 해남에서 봤음직한 밭들을 그리시다가~
요즘엔 염소와 소를 그리시는 듯 해요^^

너의아침 2008-10-16 06:03:19
요즘은 목포 먹갈치 그린답니다.

진짜 은갈치 2008-10-15 20:58:01
대인시장에서 작가님 작업실을 못보고 와서 매우 서운해요. 넝쿨덩쿨이라니 정말 다시 한 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작가탐방을 쓰시는 기자님은 정말 모르는 작가가 없는 것 같아요. 안가시는 곳도 없고.. 너무 부럽답니다.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