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의 하룻밤
마라도에서의 하룻밤
  • 전고필
  • 승인 2008.09.23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 마라도의 밤은 오후4시 30분 본섬으로 가는 마지막 배가 출항하면 시작된다. 이제 현지인들의 진짜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동자동차를 타고 바다로 가는 한 주민 뒤로 노을이 붉게 빛난다.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꾼다. 반바지와 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어느 바닷가에 머물다 지칠 때 돌아오겠다는 생각. 거기 마라도가 있었다. 하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수없이 국토를 종횡무진 했건만 마라도는 “너울”이라는 무서운 삼팔선으로 금을 그었다.
  
오죽했으면 모슬포 사람들에게 가파도와 마라도 사람들이 빌려간 돈은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다” 라는 말이 생겼을까.
  
모처럼 이루지 못한 꿈을 실천하기 위해 마라도행 여객선에 무임승차했다. 숙박의 여부는 정하지 않은 채 낚시대 하나 들고 모슬포의 낚시점에 들렸다. 요즘 한참 올라온다는 벵에돔의 손맛을 즐겨보자는 심산이었다.
  
채비를 마친 낚시점 사장은 기왕 들어갔으니 해질 무렵과 아침 낚시에 기대를 걸고 민박집에 들라한다. 낚시점에 투자한 돈이 솔찬하니 하루 머무는 것이 좋을성 싶은데 배에서도 가이드 김과장이  일박을 권한다.
  
그들의 강권에 따라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강한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낚시대를 메고 나오니 민박집 사장이 “그냥 잠이나 자고 체력 충전해서 3시나 4시에 부르면 그때 가시지요”라고 이른다. 그 말씀에 포스가 대단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소중한 시간 섬을 한 바퀴 걸었다. 마라도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애기업개당에 들렸다. 옛 말로 당이 오백 절이 오백이라고 할 정도로 신이 많은 제주지만 이 조그마한 섬에도 풍랑에 갇힌 한 일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볼모로 잡히고 길을 터준 애기업개의 전설이 저장된 공간이었다. 당에는 오늘도 인생의 풍랑을 해치우고 순풍에 돛을 단 삶을 간구하는 이들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둘러보니 조그마한 연못 하나 보인다. 용수가 부족한 공간이면서도 이렇게 자연스런 연못이 있음이 독특하다. 마라도 상가가 밀집한 곳에는 자장면 집이 네 개나 있었다. 소위 ‘짜장면 시키신 분’ 이란 멘트로 세상을 웃겼던 이창명이라는 연예인의 마라도 촬영분이 이미지를 현실화 시킨 동기로 작용했던 것이었다.
  
마라도를 찾는 연 평균 30만명 정도의 관광객 중 많은 이들이 자장면은 꼭 먹고 돌아가는 풍습을 만든 증표다. 자장면의 내음을 뒤로하고 절집 기원정사, 국토 최남단 기념비, 장군바위, 등대, 성당 등을 둘러보고 나니 낚시 할 시간이다.
  
바다에 섰다. 물은 잔잔한데 가끔 너울이 형성되며 섬을 빨아 먹고 돌아가는 모습도 연출된다. 그 너울을 경계하며 민박집 사장님이 잡아준 포인트에서 벵에돔 몇 마리 잡고 있는데 점점 너울이 거세어진다.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낚시를 하니 민박집 사장님 합류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덮친 너울이 그 동안 잡아 놓은 벵에돔을 회수해 간다. 더 낚시를 하다간 내 몸까지 빨릴 것 같아 보이는데 철수하자는 말이 반갑게 들렸다.

너울 앞에선 호기롭게 가지고 갔던 낚시대와 채비들이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 40여명의 주민들이 잠드는 시간은 평균 오후 8시. 그들이 주무시는 밤에도 마라도는 세계의 해양지도에서 잠들지 못한다. 저 등대가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며 바다의 길을 밝히고 있다. 등대 아래에는 세계의 유명짜한 등대 모형이 해도 위해 서 있다.

밤이 다가오자 못 먹은 벵에돔 생각이 나서 민박집 사장님이 운영하는 횟집에 들어섰다.
  
몇 마리 보이는 고기를 가리키며 “수족관이 적어서 고기가 별로 없나요?” 하고 물으니 “여긴 작은 수족관이구 큰 수족관은 사방에 있다”며 눈을 동서남북의 바다로 돌린다.
  
아뿔사! 그 너울바다가 이 양반의 수족관이었구나. 해서 객이 손을 대니 화를 냈구나 싶어진다. 그 양반이 가진 것이 또 있었다. GS25라는 편의점도 그의 소유였다. 마라도에서 15년을 살고 있다는 그와 마라도에 반해 한 부부가 편의점과 횟집의 일을 하며 그가 가진 신념을 조력하고 있기도 했다.
  
새벽 두시까지 나는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마라도의 어제와 오늘을 소주와 함께 체내 깊숙이 저장했다.
  
그리고 등대의 불빛이 아름다운 신 새벽 마라도를 기듯이 돌았다. 아침 배를 타고 나오려니 신발이 물에 젖어 있다. 내 발을 삼킨 것이 바다인지 연못인지 웅덩이인지 기억나지 않은 가운데 신발이 마를 때 까지 거기 있고 싶은 간절함을 밀쳐내기 어려웠다.

남가일몽과 같았던 하루를 회상하다 앞으로 세 번만 더 오면 마라도에서 숙박과 식사는 공짜라는 열 살 더 먹은 형님의 얼굴이 스쳐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