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이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더딘 이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8.08.29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마우스 복지관 ‘결혼한 지적 장애인 가족 프로그램’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사람들의 이중심리에 관한 실험 카메라였는데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뜨끔했다. 사람들은 장애 정도에 따라 행동을 달리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옆에 서 있는 것조차 거북한지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장애인들 역시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를 피했다. 화면을 통해 상황을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며 해당 참가자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같은 상황에 놓이자 그들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봉사를 ‘베푼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동정’이 깃들어 있다. 이것이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네 현 주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진 세상에 내던져진 장애인들의 생활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둘째치고라도 편견어린 시선에 외출조차 버겁다. 결혼한 장애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렵다. 변변한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엠마우스 복지관(광주 북구 운암동 소재)이 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행복한 가정 꾸리기’ 도우미로 나선 ‘결혼한 지적 장애인 가족 프로그램’. 그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 

임은주(38) 사회복지사는 “가정을 꾸린 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실제 가정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를 마련해 서로의 소중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의 하루를 동행했다.

▲ 에버랜드에 그들이 떴다. 지난 5월 25일 에버랜드로 가족소풍을 나온 지적장애인 가족들.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이들을 더 설레게 한 건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 웃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최초 프로그램
 

가정을 꾸린 지적장애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요리강습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부터 시작해 손님이 왔을 때 특별히 해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지난 2년 동안 이들이 배운 요리 수만 해도 수십 개에 이른다.

떡잡채 만들기가 한창인 요리시간.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예쁘게 담는 것도 중요해요. 잡채에 들어간 야채들이 고루 보일 수 있도록 먹음직스럽게 담아 봐요”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로 해보겠다고 아우성이다.

요리시간이 제일 즐겁다는 김강희(40)씨는 “여기서 배운 음식을 집에 가서 딸과 남편에게 해줄 수 있어 너무 좋다”며 “김치찌개와 콩나물 국밥 하나는 자신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강희씨와 함께 요리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채송화(36), 최미경(43)씨 역시 선생님 말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운다.

요리할 장소가 여의치 않아 프로그램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을 때 선뜻 집을 내어준 이형자(48)씨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터. 담당 자원봉사자인 이씨는 “처음엔 칼 잡는 걸 다들 너무 무서워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제법 채썰기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며 “가끔 안부전화를 걸어와 다음 요리를 물어볼 정도로 재밌어한다”고 말했다.

시식 시간이 되자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던 이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핀다. “내가 볶아서 더 맛있다”며 너스레를 떠는 강희씨 얼굴도 함박꽃이다. 

부모역할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과 연을 맺은 자원봉사자 박은미(49)씨는 “일반 가정에서  요리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이들이 사회에서 일반인과 교류할 기회가 적은데 가정집 자체가 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이고 선생님 역시 이들에겐 다가가기 힘들었던 이웃이자 주민이다”며 “이런 시간들을 통해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모습이 한층 밝아졌어요” 

▲ 요리수업을 받은지 올해로 2년째. “수업시간에 배운 음식을 딸과 남편에게 해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 영락없는 엄마의 마음이다.
요리 수업시간을 통해 한껏 솜씨를 뽐낸 강희씨가 기자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으로 가는 길, 능숙하게 버스에 오른 강희씨는 사람들을 피해 제일 뒷자석에 앉는다.

“여기에 앉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괜시리 코끝이 찡해진다. 강희씨 남편 역시 지적장애인이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난영이는 맑고 고운 모습이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난영이는 “학교 끝나고 올 때까지 엄마가 하루 종일 혼자 집에 계셔 걱정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요새는 종종 밖으로 외출도 하고 한층 밝아져 좋다”며 제법 의젓하게 말한다.

강희씨는 사진첩을 꺼내 지난 5월에 다녀온 에버랜드 자랑에 여념이 없다. 가족이 함께 한 첫 번째 여행이었던 터라 의미가 남달랐다.

임은주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는 부모와 함께 외출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동산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주는 동시에 또래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화를 접할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강희씨는 “남편이랑 난영이랑 함께 해서 너무 좋았다”며 “기회가 되면 또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오후 3시가 되자 강희씨와 난영이가 외출준비에 분주하다. 8월 한 달, 방학을 맞아 수영강습이 시작됐기 때문. 수영에 푹 빠진 난영이는 “한 달이 너무 빨리 가버린 것 같다”며 수영 강습이 끝나는 게 못내 아쉬운 눈치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강희씨와 그런 엄마 곁을 지켜주는 난영이. 모녀는 두 손을 꼭 붙잡고 길을 나선다. 

▲ ‘어푸어푸’ 수영 삼매경에 빠진 이들. 수영 강사로 나선 자원봉사자 전인애씨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기차놀이’와 ‘물고기 잡기 등 놀이를 통해 물과 친숙하게 했다. 물장난을 치는 이들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반복 연습으로 세상 두려움 떨쳐내 

수영장에 들어서자 이들을 제 식구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자원봉사자 전인애(57)씨. 10명 안팎의 가족들을 통솔하느라 힘들만도 하건만 그녀는 수영 강습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처음엔 어찌나 안한다고 버티던지,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우선 놀이를 통해 물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며 진땀나던 당시를 회상했다.

수영 1개월 차, 이들은 ‘첨벙 첨벙’ 물장난을 치며 물살을 내 젓는다.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가 보지만 ‘제자리 뱅뱅’. 그래도 이들은 웃는다.

그러던 찰나 미경씨가 선생님을 부른다. 호흡 때문에 멀리 나가진 못했지만 헤엄을 친 것. 전인애씨는 “정말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의 칭찬에 의기양양해진 미경씨가 다시 도전해본다. 

물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곤 제자리인 걸 확인한 미경씨가 민망한지 “분명 앞으로 나갔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런 미경씨 모습에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음꽃이 핀다.

전인애씨는 “처음엔 물에 자꾸 가라앉아 애를 먹었다”며 “수영에 재미를 못 느낄까봐 걱정됐는데 이젠 제법 수영도 하고 물속에서 일반인들과 섞여 노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며 흐뭇해했다.

정인순(42)씨는 “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매일 딸이랑 같이 수영장을 오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며 딸 지영이를 꼭 껴안는다.

▲ 엄마처럼 포근하게, 언니처럼 다정하게,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주는 자원봉사자 전인애씨
이들의 여가 활동을 돕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볼링 시간은 이들에게 즐거움 그 자체다.

누가 잘하고 못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들이 즐기는 즐거움의 이유다. 

자원봉사자 박은미씨는 “장애인들은 여건이 안 돼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할 뿐 즐거움을 느끼는 건 일반인들과 똑같다”며 “이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더딜 뿐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범한 가정주부다. 단지 장애라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을 뿐. 여타의 주부들처럼 자식 걱정에, 오늘 저녁 해먹을 찬거리를 걱정한다.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 일반인들에 비해 느릴 뿐이다.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이들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을 통해 새로움을 익힌다.

세상 나들이에 나선 이들의 더딘 걸음은 느림의 미학이다. 이들 눈높이에 맞춰 함께 걸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걸음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우리의 미래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그 세상을 오늘도 꿈꿔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