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꽃 정열속에 가려진 선비의 삶이 있는 곳
배롱꽃 정열속에 가려진 선비의 삶이 있는 곳
  • 전고필
  • 승인 2008.08.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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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고서면 후산마을 명옥헌을 찾아서

▲ 창작예술인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바로 자기 관점을 일찍 확보하고 끝내 견지한다는 것, 배롱꽃 물속에 드리워진 모습을 담는 작가의 등 뒤에서 또 생각해 보았다.

밥숟가락이 들어부은 창자는 주리지 않은데 언제부턴가 삶의 허기가 기세등등하다. 아마도 이 땅에서 부정보다는 긍정을, 좌절보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인 것 같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부도를 들여다보며 “누운 스님의 삶처럼 변함없었으면” 하는 유혹과 신안 비금·도초 염전 땡볕아래에서 하늘 우러르며 소금을 일궈내는 염부처럼 “묵묵히 하늘의 뜻대로 살아오지 못한 것”이 이제 부담스러운 것이다.
  
어느 시인의 너스레처럼 부록(불혹)의 삶이 시작되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발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튼 그런 마음을 다잡아 보고자 난세(亂世)에 벌레처럼 움츠리다 더 큰 세상을 만나 대붕처럼 날개를 펼치고자 했던 창평땅 선비 오희도를 찾아 나섰다.
  
여느 해처럼 7월 말에 찾으니 명곡 오희도의 영혼은 아직 내려서지 않았는지 배롱꽃이 아직 이르다.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치러지는 탐라전라 교류전이 시작된 지난 14일 탐라국의 작가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배롱꽃이 화려하게 축포를 올리고 있었다.
  
예년보다 2주나 늦어진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만개한 배롱꽃을 따라 길을 나선 이들은 우리말고도 다양했다.
  
휴대용 버너에 닭·백숙 요리해 드시러 오는 보신형 인간, 자식 자랑하는데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 목청이 커지는 팔불출 인간, 목 좋은 자리에 저만 누울 자리를 차지하고선 끝내 자리를 비껴주지 않는 독점형 인간 군상들의 커넥션.
  
배롱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할 명분은 입구에 서 있는 문화재 안내판 하나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그래도 모두 이구동성, 배롱꽃이 쏘아 올린 장엄함에 입이 벌어진다. 한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후 먼지 걷힌 연못, 정자와 배롱꽃, 사위의 모든 사물들 모두 가둬 들인다.
  
정동진이 뜨니 정남진이 등장해 정남진 물 축제 현수막이 광주시내까지 펄럭였고 춘천 인형극제가니 국토정중앙 양구를 홍보하는 인형극까지 등장하는 세상이다. 그나마 목 백일홍 만개한 계절을 맞이해 제초작업이라도 벌여준 내 고향 담양군 배려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 삼고-이 제액을 볼 때 마다 내가 골백번도 더 찾아가야 할 어른 한분 모시지 못한 내 삶을 반성한다.

정자에는 두 개의 현판이 있다. 정중앙에는 물론 명옥헌이 자리한다. 소쇄원이 맑고 깨끗하다는 행위적 요소에 초점을 두었다면 명옥헌의 집 이름은 다분히 청각적이다.

뒤편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벼슬아치가 장신구로 차고 있는 패옥이라는 구슬이 움직일 때마다 내는 소리처럼 맑고 청아함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정자의 한편에는 삼고(三顧)라는 현판 하나가 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았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해군의 폭정을 뒤엎고 새 세상을 열려던 왕자 능양군이 전국의 지사를 찾아 천하를 주유하던 중 이곳을 지나던 길이었다.

후산마을에 후학을 양성하며 노모를 공양하는 어진 선비 오희도에게 눈이 꽂혔다. 함께 세상을 도모하자 청하나 스스로 부족하다 여긴 오희도는 거절한다. 
  
곡진한 능양군의 청에 거듭 거절 뜻을 밝힌 오희도는 나주의 다른 지사를 소개해 준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능양군 인조는 오희도를 잊지 못하고 이제 새 세상을 열엇으니 함께 더 큰 세상을 만들자며 그를 청한다.

마침 과거에 급제한 오희도는 능양군의 세 번째 부름을 차마 거절치 못하고 출사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한림원에 들어선 오희도는 아쉽게도 병이 찾아와 뜻을 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자식들은 물처럼 깨끗하고 덕이 있는 마음을 가진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원림 명옥헌을 만든다.
  
이후 세상의 사표이면서도 자신을 감추고 살아왔던 오희도와 비슷한 소쇄공 양산보 같은 이를 사당에 모시고 도장사라는 사원을 조성한다. 아쉽게 서원 철폐령 때 사라지고 그 자리엔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줄서기와 자리 만들기로 가뜩이나 심란한 세상에 명옥헌 불꽃이 보여주는 마음이 지극하다. 뉴스를 보고 듣는 것조차 거북한 신산한 마음을 명옥헌에서 오희도와 그 자제들의 삶을 반추해 보니 이제 당분간은 거뜬할 것 같다. 다만 이렇게 밖에 위로하지 못하는 부록같은 삶의 누추함은 속수무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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