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가다 들르는 주민들의 사랑방”
“오다가다 들르는 주민들의 사랑방”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8.07.1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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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방안 기획 ②]

▲ 지역민들의 사랑방 ‘감자꽃 스튜디오’ 전경.

▲ 지역민 문화쉼터, 평창 감자꽃 스튜디오

아이들에겐 꿈을, 지역민에겐 희망을
‘감자꽃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길, 이른 초여름 길목에 단비가 내렸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고개 숙인 식물들은 촉촉이 땅을 적시는 빗줄기를 제법 반기는 눈치다.

산골마을인 강원도 평창 이곡리에 들어서자 저 멀리 ‘감자꽃 스튜디오’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법 세련된 모습을 갖춘 건물외형이 ‘폐교스럽지’ 못한 지라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비에 흥건히 젖어 물웅덩이가 고인 운동장에 발을 내딛자 비로소 이곳이 학교였음을 깨닫는다.

▲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
“공간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자 건축가와 상의해서 리모델링했다”며 “폐교는 그대로 보전하되 건물 앞에 외관을 하나 세웠을 뿐”이라는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43)의 설명이다.

본래 있던 2층 학교건물 전면에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큰 온실을 짜서 덧붙였다. 미관상 아름다움도 한 몫 단단히 하지만 이 온실로 인해 120만원 정도 나오던 난방비가 30만원대로 줄었다.

감자꽃 스튜디오 내부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넉넉한 풍채를 가진 이 대표의 발상이라 하기엔 건물 곳곳에 아기자기함이 스며있다.

마을 도서관과 공부방을 겸한 학습공간인 도서관, 지역 특산물인 옥수수를 주제로 한 미니 박물관이자 교육 공간인 박물관, 식사와 모임 등 휴게공간으로 쓰이는 식당, 스튜디오 운영 관리가 이뤄지는 교무실 등으로 꾸며진 1층, 2층은 공연과 회의, 영상 촬영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인 소극장과 소규모 방문객을 위한 숙소로 꾸며졌다.

그래도 이곳이 도통 뭐하는 곳인지 감이 안 잡힌다면, 이곳은 지역주민들의 여가, 마을행사에 활용되는 문화공간이자 청소년을 위한 교육 공간, 자연과 문화를 소재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이다.

이 대표는 “마을 아이들에겐 꿈의 공간이고 어르신들에겐 추억이 담긴 희망의 공간”이라며 “마을 주민 누구나 언제고 들를 수 있는 사랑방”이라고 소개한다.

이름에 떡하니 ‘스튜디오’라고 적혀있다 보니 초창기엔 이곳이 사진관인줄 알고 방문한 지역민들의 ‘사진 한 방 박아줘’ 요구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요새도 가끔 그런 분들이 있긴 하지만 괜찮단다. 사진 찍어달라고 방문했다가 재미난 스튜디오에 푹 빠져 자주 이곳을 방문하는 주민들을 보는 것이 이 대표의 낙이다.

지금이야 주민들과 격 없이 지내며 마을 주민으로 인정받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문화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가 연고지 하나 없는 강원도에 터를 잡게 된 것은 바쁜 도심생활에 미처 건강을 돌보지 못해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였다.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그는 폐교를 찾아다녔다.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99년 폐교된 노산분교를 발견했다.

“폐교는 아무래도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다 보니 접근성이 좋고 교육적 기반이 갖춰진 곳이라 시설이용도 용이하죠” 한평생 문화에 종사한 그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폐교를 고집했다.

▲ 감자꽃 도서관은 언제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즐겁고 유쾌하게’ 공부가 이뤄지는 도서관 내부.
외지인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그는 특유의 웃음과 친화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제 무기는 웃음과 진심입니다” 이 대표의 말처럼 그는 지역 내에서 주민들과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으로 감자꽃 1차 고객을 마을 주민으로 삼았다.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고령의 마을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주민과 심리적 접근성을 높여나갔다.

원하는 문화적 욕구 표출에 소극적이던 마을 주민들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공연을 관람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요구하기도 한다.

“매번 감동적인 영화를 보여드렸더니 다른 장르 영화를 요구하시기에 진주만 영화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은 거예요.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을 미처 읽을 새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민망함에 땀을 뻘뻘 흘리던 이 대표는 변사가 됐다. 영화 상영 내내 스릴감과 박진감 넘치는 영화 설명으로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는 후문.

이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감자꽃엔 김 회장이 살아요”

주민들에게 사장님이나 교수님으로 불리는 이 대표가 23살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는 것. 무슨 말인고 하니, 4년 전 발달장애를 앓는 김상덕(23)씨를 직원으로 채용했는데 어느 때는 누가 직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엉뚱해서 애칭이 김 회장이란다.

▲ 4년째 이 대표를 도와 감자꽃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김상덕씨. 교무실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재치 넘치는 이 대표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 회장에 대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김 회장을 비롯 이곳엔 장애학생이 자주 찾는 아지트다. ‘김상덕 프로젝트’로 이름 지어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교육과 음악치료의 중심엔 김 회장이 있다.

“일단 김 회장이 떴다하면 요란법석이지만 늘 유쾌해서 좋아요”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이 대표의 말이다.
감자꽃에 유독 교육프로그램이 많은 이유에 대해 그는 “지역 학생들을 가르쳐 이 애들이  지역에서 강사로 활동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적 교육 활동 강화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가 활동 의미에서 감자꽃 활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교육적 기능도 중요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선생님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성공 포인트라고 귀띔한다.

이런 그의 노력 끝에 매주 수요일, 토요일 실시되는 ‘방과 후 교실’에 대한 학생들 반응은 뜨겁다.

그는 마지막으로 “폐교 중심엔 늘 사람이 있다”며 “마케팅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단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폐교를 활용할 것인지, 그 안에 지역민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예술 배움터, 평택 웃다리 문화촌

“문화 체험하며 예술을 이해하다”
평택항 및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신도시 조성 등 경기도 평택의 급격한 발전은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증대시켰다. 도·농간 문화 양극화가 극심한 평택 내 문화 향유 공간의 필요성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00년 폐교된 금각분교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 건 지난 2005년. 금각분교는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형 폐교’다.

평택시와 평택문화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체험학습장인 웃다리 문화촌은 지난 2006년 8월 문을 연이래 매달 5천여명이 다녀간다.

박성복 평택문화원 상임이사는 “폐교를 예술촌으로 이용하면 자생력을 갖기 힘들어 망하기 부지기수”라며 “예술촌의 기능을 하는 체험학습장으로 꾸몄다”고 밝혔다.

웃다리 문화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건 동물농장이다. 타조의 울음소리와 오리떼의 종종걸음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거리이다.

▲ 평택 어르신들의 희망 솟대-취미삼아 배우기 시작한 솟대 만들기는 이제 어르신들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기념품 판매로 인해 부수입도 창출한다고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넓은 운동장을 지나 건물에 들어서면 벽면 가득 전시된 갖가지 예술품들이 눈에 띈다. “문화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체험하는 것이다"‘는 박 이사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시된 작품은 시민들과 도시 방문객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만든 결과물이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미니어처 크기의 솟대들. 고령의 노인들이 취미삼아 만들었다고 하는 솟대는 제법 솜씨가 좋았다.

“어르신들이 워낙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다 보니 솜씨가 남다르다”며 “솜씨 좋은 어르신들은 ‘땡땡땡! 실버문화학교’에서 진행 중인 솟대 만들기 프로그램 강사로 나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강의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또한 문화촌을 찾는 방문객에게 기념품으로 판매되기도 한다니 어르신들의 솟대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웃다리 문화촌은 문화 양극화해소와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극대화 하고자 40여개에 달하는 일일 문화예술프로그램과 12개 정기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 공예작업이 이뤄지는 문화배움터. 문화원 입주 작가들의 창작 활동의 장이자 공예프로그램 수업이 이뤄지는 배움의 공간이다.

현재 문화촌에서 실시 중인 프로그램은 ▲생활도예 ▲석화공예 ▲생태미술 ▲놀이미술 ▲한지공예 ▲천연염색 ▲우리음식 만들기 ▲평택농악 배우기 등 다양하다. 문화촌에 입주한 8명의 예술인들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며 문화촌의 든든한 기반이 돼 주는 동시에 프로그램 강사로 나서 지역민들과 방문객에게 배움을 전달한다.

주목할 점은 평소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 주말농장과 지역 농산물 판매 등으로 지역민들에게 부가수입 창출의 효과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촌이 생길 당시만 해도 시큰둥했던 지역주민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문화촌에 들러 도울 거리가 없는지 살피는 등 애정을 보인다.

이런 지역민의 반응을 누구보다 반긴 박 이사는 “폐교이용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지역민이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야말로 선행돼야 할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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