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Zizek)과 광우병
지젝(Zizek)과 광우병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6.12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승환(충북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지젝, 지젝 지젝. 이 새가 우는 것 같은 음성언어가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슬로베니아 사람 지젝(S.Zizek)은 허황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능한 유토피아를 기획했다.

사적 소유와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모든 존재가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유토피아의 꿈은 결코 버릴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토피아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젝은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방법으로 급진적 혁명을 제안한다.

그리고 모스크바 광장의 묘지에서 잠자고 있는 레닌을 호명(interpellation)했다. 지젝은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던 레닌의 혁명은 옳았다고 변호한다. 나아가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해서 혁명을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젝은 실패한 레닌이 아니라, 성공한 레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실패한 레닌의 혁명 전략을 새롭게 고쳐서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젝의 사유로 부활한 레닌은 강인한 혁명성과 역사적 급진성을 가진 불후의 혁명가다. 그는 레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레닌의 방법으로 자본주의 세계화에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대 사회의 공적(公賊)은 자본주의이므로 자본과의 투쟁과 아울러 자본의 기반인 자본주의 의회제도나 신자유주의 이론과도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이 레닌을 주목하는 것은 사적 소유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제 때문이다. 레닌은 당시로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러시아 사회를 소유로부터 해방, 즉 사회화 또는 국유화시켰다.

이 소유로부터의 해방은 거꾸로 공산주의 관료제도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지만, 일단 인간의 욕망과 사적 소유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혁명적 착상만은 의의가 있다.

그런 뜻에서 지젝은 비록 실패는 했지만 마르크스와 레닌의 방법과 사상에서 오류를 제거한 다음 레닌의 방법으로 혁명의 대오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때 혁명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 답을 우리는 한국 촛불시위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5월과 6월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 때문에 점화되었다. 이전의 시위나 집회와는 달리 이 촛불시위에서는 조직화된 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합집산하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이들은 즉흥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결정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행동양식을 보여주었다. 투쟁적인 민중이나 현실적인 서민 그리고 상식적인 대중이 아닌, 정치적으로 자각하고 자기규율을 가졌으며 자기 주체성을 발휘하는 다중이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투쟁과 축제를 병행하면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의지를 표출했다. 이 다중들은 가상공간에서 소통하고 현실 공간에서 실천하는 인터넷 노마드(internet nomad)적 성격이 있다.

이처럼 2008년 5월과 6월의 촛불은 한국에서 저항주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새로운 주체인 다중(multitude)이다.

 새삼 지젝이 종요로운 것은 자본주의 세계화로는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복(顚覆)되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고자 하는 한, 신자유주의의 감옥에 갇혀 살 수는 없다. 항거하다가 죽더라도 항거하는 그 순간만큼은 인간인 것이고 그 항거는 값진 것이므로 인간은 자본과 그의 제도체인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인류가 유토피아를 향한 혁명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방법으로 레닌을 호명하면서 혁명의 주체를 창안(創案)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중이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할 경우에는 실패한 공산주의의 길을 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새로운 주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주체로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하는 다중을 설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와는 다른, 그러니까 자율적이고 자발적이면서 열린 마음을 가진 세계시민으로서의 다중(多衆)이, 지젝이 말하는 혁명의 주체일 것이다. 2008년 뜻밖에도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한국에서 목도한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