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땅을 되찾자고 말하지 말자
만주땅을 되찾자고 말하지 말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5.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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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충북민교협 회장)

어느 학교 교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선생님께서 ‘어서 빨리 통일을 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자’라고 말한다. 듣는 학생들은 광활한 만주땅을 떠올리면서 감격한다.

위대한 한국, 광활한 국토, 강력한 민족의 상상력이 만주벌판에 말 달리듯 내닫는다. 선생과 학생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감격과 흥분 속에 동일체가 된다.

이 교실에서는 고구려가 만주, 현재 중국의 동북삼성(東北三省)을 지배했으므로 그 고토(故土)를 회복하자는 주장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 학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화된 고토회복을 신앙처럼 간직하고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흥분과 감격에 젖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어서 빨리 광활한 만주벌판을 한국땅으로 만들자고 주장할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아니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발화가 타당한가. 아니다.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또 역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서슴없이 이런 주장을 한다. 이 얼마나 위험한가. 표피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만주가 고구려의 영토였고, 그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고려이며, 고려를 계승한 것이 조선이고, 조선을 계승한 것이 한국이므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그뿐 아니라 전율(戰慄)과 공포를 자아내는 국수주의적 오류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해야 한다. 만주라는 용어는 일제(日帝)가 대륙진출을 위하여 쓴 명칭이므로 미완의 단어다. 지금도 만주라고 쓰고 있고 또 실제 만주가 있었으므로 역사적으로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는 동북삼성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만주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함경도를 여진(女眞)이라고 부르고 제주를 탐라(耽羅)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역사어로는 만주국이라고 쓸 수 있지만, 일상어에서 만주라고 쓰는 것은 옳지도 않고 현명한 일도 아니다.

중국측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위만주(僞滿洲), 또는 동북삼성이라고 써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이 통일 이후에 동북삼성을 한국영토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전쟁밖에는 없다.                   

고구려가 동북삼성의 일부분을 지배한 것은 수백 년을 넘지 않는다. 한 때 지배했고, 한 때의 영토라고 해서 그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식이라면 중국 또한 한국의 영토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있다.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후 314년까지 사백년간 중국의 한나라는 한반도 중부 이북에 한사군을 건설하여 식민했으며 지배하고 통치했다.

한이 세운 한사군은 고구려에 패하여 멸망하거나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 영토를 중국이 지배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중국은 Han China, 즉 한중국(漢中國)으로 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중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한(漢)나라에 있다는 것으로써, 한이 건설한 한사군(漢四郡)은 동아시아사에서 무척 중요하다. 거꾸로 물어보자. 한 때 동북삼성이 고구려의 영토였으니 한국이 그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중국도 한 때 한국의 반이 한나라의 영토였으니 그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어쩌겠는가.

중국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주장 자체는 성립한다. 이처럼 단 한 가지 사례만으로도 고토회복은 불가능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다.

 잃어버린 고토회복(故土回復)과 같은 맹목적 민족주의와 공격적 국수주의는 민족과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주범이다. 국가민족주의로 중국을 자극하여 통일마저 어렵게 만드는 어리석은 언행을 하지 말고, 냉정하게 역사를 인식해야 한다.

중국의 애국주의와 중화주의는 분명히 세계사적인 문제다. 하지만 한국의 무조건적 애국주의, 민족중심주의, 국가절대주의 또한 심각한 문제다. 지금 한국인들은 성화 봉송 때 일어난 사건 때문에 격노해 있다.

폭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중국감정이 비등하고 또 중국인들에 대하여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중국은 한국을 존중하고 한국은 중국을 존중하는 상호이해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중국과 한국, 양국의 국민들은 냉정과 이성으로 21세기의 강을 건너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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