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시집 판금에 대한 ‘항의서’
1979년 시집 판금에 대한 ‘항의서’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05.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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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빛 바랜 자료가 가져다준 30년전 논리와 기억

日本人
문병란

나는 무턱대고 日本人을 욕할 수 없다.
西歸浦(서귀포)에 와서
우리 누이를 덮친 쪽바리 새끼를
나는 무턱대고 개새끼라고 욕할 수 없다.

고급 관광 호텔에 자면서
가난한 韓國 여자에게 聖恩(성은)을 베푼
아라이 상 에라이 상
크리스마스 주말 휴가를 韓國에서 보낸
그 갸륵한 선린 정신을 나무랄 수 없다.
(중략)
관광 수입이 얼만데
제주도 관광개발을
누드촌 설립을 나무랄 수 만은 없다.
게다 소리를 미워하고
사루마다를 비웃고
히노마루로 감히 밑싸게를 할까보냐
(중략)
잘못이다.
묵은 역사책이나 뒤적이며
안중근이나 유관순이나 떠드는 것은
구식이다 잘못이다.
(중략)
옳다 옳다
이완용이도 송병준이도 이용구도
옳다 옳다
한일 협상도 한일 경제협약도
옳다 옳다
오끼나와 기지 제공도 한일 방위조약도
무턱대고 나무랄 수 만은 없다.
(중략)
밤마다 아양 떠는
우리 누이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호텔 지어 초청한
관광 장관 말씀을 욕할 수 만은 없다.

나무랄 수 만은 없다니까
그렇다니까
그렇다니께

아이고 頭(두)야.

-시집『죽순밭에서』(1979, 한마당 刊)에서 인용
 

▲ 한 농민의 기증으로 27년만에 역사에서 지면으로 나온 문병란 시인의 '죽순밭에서'. 판금에 대한 항의서와 그 내용을 다룬 당시 지역신문 기사.
지난달 본사에 전남 장흥의 한 농민이 보낸 서류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누군지, 무슨 연유인지도 묻지 말고 그저 도움이 되는 곳에 기증해달라는 말만 덧붙여졌다.

타임머신처럼 기자들을 30여년 전 시간으로 이끈 자료는 ‘엠네스티 광주지부 회보’, 10·26사태의 장본인인 ‘김재규의 구명을 촉구하는 호소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은 고은 시인, 故 문익환 목사 등의 최후진술 등. 철필로 꾹꾹 눌러써 등사기로 인쇄한 빛바랜 10종의 서류 뭉치는 모두 5·18민주화 운동 전후에 광주에서 배포된 것들로 암울했던 그 시절의 증언록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979년 7월 26일자 문병란 시인의 항의서. 그해 자신의 시집 『죽순밭에서』가 당시 문공부의 통보에 의해 판금되자 시인은 25쪽 분량의 항의서를 통해 판금 조치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철회를 주장한 것이다.

암흑의 시절 판금된 책은 부지기수였으나 저자가 직접 항의서를 통해 반박한 사례는 거의 없다. 더욱이 5·18 30주년이 2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그 당시의 저항 논리는 30년 이후 현재 세대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시 규제 여부를 결정했던 ‘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는 시「日本人」에 대해서는 ‘일부독자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많다’, ‘일본의 일장기를 부당하게 모독했다’고, 시「詩法」에 대해서는 ‘외설스러워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판금을 결정했다.  

문 시인은 항의서에서 “대저 문학한다는 행위는 인간의 생명의식의 발로이며 개인적 예술 행위에 속한다”며 “정치적 현실적 발언이 아닌 상상과 정서적 기능인 작품에 판금이라는 조치 자체가 비민주적 처사로서 창작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도 지대하며, 하물며 그것이 내용에 대해 오류나 왜곡일 때 필자가 받는 피해는 기본권 침해로부터, 문명(文名), 경제적 손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다”고 주장하며 조목조목 반박을 이어갔다.

자칫 친일로 읽혀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는 역설(paradox)을 통해 강조하는 수사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심사위원들의 수준과 부분을 전체인양 매도하는 편견에 문제를 제기했고, ‘일장기 모독’이라는 확대해석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밑바닥에 도사린 “원한의 정서적 표현이 정부의 정책적 배려에 짓밟힐 수 없다”는 이유로 반박했다.

또 ‘외설적인 표현’으로 간주된 부분들이 모두 서정주, 김수영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임을 밝혀 판금의 무리한 논리를 비판했다.

일단 결정하고 논리는 짜맞추는 당시 공권력의 논리는 시인의 반박 앞에 왜소해 보였다. 더구나 이를 구체적인 구절까지 인용하며 보도한 신문이 상기 이유로 제어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인의 주장이 문제없음을 관계당국이 역으로 증명해준 셈이었다.

한편 항의서에 대해 허형만 목포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는 “문학의 효용성, 문학작품의 평가성 등을 전제하고 적시된 작품에 대해 시적 타당성과 온당한 의미를 변호했다”는 평가를 내린바 있다.

부분을 전체인양 호도하는 편견, 일단 발표하고 논리는 이후 짜맞추는 행태에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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