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의 악몽
한반도 대운하의 악몽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1.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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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라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치 점령군사령부처럼 이런저런 정책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는 가운데, 대운하건설은 선거를 통해 이미 국민의 승인을 받은 만큼 금년 중에 첫 삽을 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52%에 달하는 반대 여론은 공청회나 토론회 등 요식행위를 통해 잠재우고 우선 공사를 시작하고 보자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생각인 듯하다. 새만금 사업처럼 일단 시작된 공사는 자체 동력으로 굴러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데다 맹목적인 지역개발에 목을 맨 지자체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운하 건설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씨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의 공약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다시 고도성장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숱한 비리와 의혹, 거짓말 등을 덮어두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이다.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대운하 특위를 가동시키고 재벌들로 하여금 대운하사업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대운하  토목공사를 통해 고도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중동건설 붐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1970년대의 경험을 이명박 씨는 재현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동건설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 청계천 복원 같은 토목공사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환경파괴와 문화재 손상은 물론이고 경제성에서도 도저히 대운하 사업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청계천의 시냇물과 수많은 터널과 갑문, 제방으로 구성된 시멘트 구조물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에 화물선이 떠다니는 대운하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강이나 물길이 아니라 시멘트 제방과 갑문으로 물을 가두고 펌프로 퍼올려 강제순환시키는 거대한 인공수로 시스템으로 남한 전체를 연결한다고 생각해 보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대운하 건설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업이다. 강바닥을 긁어내어 골재를 채취하고 이를 판 돈으로 운하 공사비를 뽑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건설회사 사장다운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중국이나 독일의 운하를 성공사례로 내세우지만 평야지대인 두 나라와 산악지대인 우리나라는 공사비나 운하운용비용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터무니없는 사업을 왜 이명박 씨는 기를 쓰고 추진하려는 것일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소신 때문인가? 아니면 건설회사와 대기업, 재벌들의 수지맞는 사업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인가? 그보다는 대규모 토목사업은 언제나 성공이 보장되는 땅 짚고 헤엄치기이기 때문일까?

10년쯤 지난 다음 대운하가 완공되어 운영해보니 경제성이 떨어진다 한들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며 책임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건설회사는 이미 막대한 공사비를 챙겼고, 운하 주변의 땅 값이 폭등하여 지주와 투기꾼들은 한몫 잡았으며, 경제관료들과 학자들은 건설공사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몇 % 포인트 올랐다고 자랑할 것이고, 언론은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성장 동력을 찾아보자고 나팔을 불어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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