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지식인의 역할
우리 시대 지식인의 역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2.3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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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김용주(언론중재위원회 사무총장)

중국 최초의 중앙 집권적 통일 국가는 진(秦)이다. 진나라가 통일을 하는데 막대한 공을 세운이가 이사(李斯)다. 그는 통일 후 군주의 전제권 확립과 군현제도 실시 뿐 아니라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는 등 당시의 최고 실력자이자 지식인이었다. 어느 역사가는 진시황이 처음에는 여불위의 통제를 받고, 이후에는 이사에게 통제를 당하며 살았다는 주장을 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 이사의 마지막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기원전 210년 순행에 나섰던 진시황이 갑자기 죽었다. 순행 길에는 둘째 아들 호해와 승상인 이사 그리고 환관 조고 등이 있었다. 진시황은 죽기 직전 큰 아들 부소에게 황제자리를 물려준다는 유서를 작성토록 했다. 그런데, 환관 조고가 유서를 가지고 농간을 부렸다. 조고는 능력이 뛰어난 맏아들 보다는 둘째 아들 호해를 새 황제로 옹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고는 둘째 아들 호해를 설득한 후, 승상 이사에게 달려갔다. 이사는 조고의 농간에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 더 큰 권력에 대한 욕심에 결국 조고의 음모에 발을 담그고 만다.  

결국 이들은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고 맏아들 부소와 대장군 몽염을 자살하게 만든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호해는 조고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고 진나라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이사는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잘못된 국가의 기틀을 다시금 바로 세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이사는 조고의 무고를 받아 반역죄를 누명을 쓰게 된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일등 공신인 이사는 함양시 한복판에서 허리가 잘리는 참형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만약 이사가 조고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다시금 쓰여졌을 것이다. 이사의 능력과 충성심은 순간의 유혹과 탐욕으로 비참한 결말을 가져왔고, 통일 제국 진나라는 통일된 후 14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사는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인이 한낱 환관의 세치 혀 끝에 맥없이 놀아났을까.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더 올라갈 곳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치에 맞지 않는 선택을 했다. 
  
  이사의 삶이 우리 시대 지식인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지식인의 결정적이고 중대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거대한 제국까지 무너뜨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식 없이 열정만 앞세우는 자는 대개 무모하고, 열정을 갖추지 못한 채 지식만 앞세우는 자는 감동이 없다. 무엇보다 분별없는 지식과 그 지식을 무기로 판단을 내리는 지식인은 더 위험하다.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위해 알량한 지식을 파는 지식인은 자신 뿐 아니라 사회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떠한가. 역사의 흐름과 원칙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판단으로 묵묵히 사회 곳곳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시대의 암울함을 한탄하며 자신의 지식을 썩히고 있을까.  

 21세기에 들어서 한국 사회는 ‘잘 살아보세’라는 신드롬에 빠져있다. 아파트 값 상승에 너나 없이 없는 돈 빌려 아파트를 무리하게 구입하고, 수익률이 높은 펀드에 묻지마 식 가입을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은 뒷전이고, 어떻게 잘 살아볼까 하는 방법들이 이 시대의 유일한 가치지식이 되어버렸다. 이렇다 보니, 이 시대의 지식인은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투자전문가들로 채워지는 듯하다. 

 국민 대다수가 편안하게 먹고 지낼 수 있도록 정책을 제안하고 제시하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다수의 행복을 지향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들이 자신의 부를 위해 지식을 이용한다면, 결국 사회는 소수에 의해 부가 독점이 되고 다수는 힘들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국민 다수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부귀영화는 지식인의 독이다. 이서의 예처럼 지식인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고 좀 더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식인의 지식은 단순히 자신만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지식인의 올바른 사회 진단과 방향 제시가 절실히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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