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형상화한 노래극을 고대하며
광주를 형상화한 노래극을 고대하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8.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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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밝아오니]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이번 광복절 기념식 중계를 보면서, 노래극 형식으로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과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 대목이 인상 깊었다. 70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 과정에서 탄생하여 새로운 문화적 장르로 정착된 노래극이 이제는 본래의 현장운동적 즉흥성을 넘어서 국민적 의례에도 어울리는 고전적 품격과 정제된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1974년에 김민기, 김영동, 이종구 등 젊은 음악인들이 합작한 소리굿 「아구」가 최초의 노래극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작품은 탈춤의 구조를 활용한 짤막한 촌극 수준의 노래극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노래극은 1979년 김민기가 음악을 담당한 「공장의 불빛」인데, 이것은 노조를 만들려는 여공들에게 폭력배를 동원하여 똥물을 퍼부은 이른바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문화 게릴라 식으로 하룻밤만에 녹음을 하고 카세트 테이프로 만들어져 지하로 유통되었다.

김민기는 녹음이 끝난 후 검거를 피해 전북 김제의 농가로 잠적했지만 부마사태와 10·26 사태로 정국이 혼란에 빠진 사이에 1천 개에 달하는 문제의 녹음 테이프는 무사히(?) 나같은 사람한테도 전달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최근에 나온 CD의 세련되고 매끄러운 음향보다는 낡은 카세트 테이프의 거칠고 새된 소음이 더 정겹다.

이 노래극은 서정적인 포크송에서 로큰롤과 국악·구전가요의 형식을 두루 활용하여 음악적 어법과 형식면에서도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야근’ 같은 노래는 박노해의 노동시보다 앞서, 공장에서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가 보상금 몇 푼 받아 술 퍼먹는 애절한 모습이 구전 가요의 선율에 실려 통렬한 풍자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그밖에도 구사대 깡패들이 부르는 “인정 찾고 양심 찾고/ 개소리를 하덜 마라/ 정승처럼 쓰면 됐지/ 돈 벌어 돈만 벌어”라는 노래는 강렬한 로큰롤 선율로 세태를 질타한다.

김민기는 그후 독일의 뮤지컬 「지하철 일호선」을 번안한 노래극을 10년 넘게 장기공연하고 있다. 요즘의  뮤지컬 열풍도 이같은 그의 노래극에 대한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흥행과는 무관하게 장가공연을 밀고 나감으로써 노래극의 재미에 관객이 눈뜨게 만들고, 설경구, 나윤선, 조승우 같은 재능 있는 스타들을 배출하여 뮤지컬 열풍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좀 엉뚱한 욕심을 부리자면, 광주민중항쟁을 형상화한 제대로 된 노래극이 만들어져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장기공연되었으면 좋겠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비롯하여 광주의 음악적 자산은 풍성하다. 「금희의 오월」이나 「모란꽃」같은 기존의 연극을 비롯하여  소설과 시, 구술자료 등도 쌓여 있다. 이같은 자산을 잘 다듬고 꿰맞추어, 영화 「화려한 휴가」나 만화 「전두환」을 능가하는, 「레 미제라블」같은 고전적 품격을 갖춘 노래극이 재능 있는 극작가와 음악가의 손에 의해 탄생할 날을 기대한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무대효과, 달콤하고 엽기적인 스토리, 막대한 제작비와 홍보비로 돈벌이에만 급급한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이 아닌, 우리의 정서에 걸맞는 진정한 우리시대의 노래극을 만들어낼 정도의 문화적 역량을 문화도시 광주는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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