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사잇길-'노물' '팽야'… 전라도 향기?
전라도 말 사잇길-'노물' '팽야'… 전라도 향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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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미로(1)/ '노물' '팽야'라는 말에서/ 그윽한 전라도 내음// 놀이방에 가야하는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오전10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나는 순간 고민을 한다. 놀이방에 지금 데려다 줄까, 아니면 오늘 하루는 내가 데리고 놀까. 그런데 내 머리 속을 뻔히 들여다 보고 있다는 듯이, 잠에서 깨어난 녀석은 '선생님. 안 가.'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선생님에게 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 아빠하고 놀래?' '응' 대충 밥을 먹고 나자 아이는 밖으로 나가자고 보챈다. '아빠. 해핸데 가자.'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꼭 '핸데'나 '해핸데' 가자고 말을 한다. 여기에서 '해핸데'는 밖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면, 녀석은 양말과 신발을 '핸배'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변형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녀석의 머리 속에서 바깥은, '핸배'를 신고 가야하는 곳이므로 '핸데'나 '해핸데'가 되지 않았을까. 말의 발생은 이런 것이다. 만약 지금의 녀석이 혼자 독립된 공간에서 살게 된다면, 지금의 내가 사용하는 말과는 상당히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토기를 만들면서 정착하게 된 인류는 저마다의 언어를 발전시켜 왔다. 현관을 나서서 문을 잠그기 위해 열쇠를 꺼내자, 녀석이 묻는다. '아빠. 뭐야?' '응. 열쇠. 쇠때.' 나는 녀석이 무언가를 물어오면 표준말과 전라도말을 동시에 사용한다. 나중에 자랐을 때, 녀석이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말의 풍요는 풍부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제법 달음박질까지 하는 녀석을 앞지르면서 '아빠 빠이 와.' 손짓을 한다. 야산으로 가는 골목. 식당 앞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는다. 자판기 옆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옆에 두고 쉬고 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나는 '함무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할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할머니나 함무니나 같은 말처럼 사용되지만, 분명히 다르다. '함무니'라고 불렀을 때는 사적인 유대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에 비하면, 할머니라는 용어는 훨씬 공적이고 기계적인 용어로 느껴진다. 다시 말해서 '할머니'라는 단어는 그냥, 늙을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생각되고, '함무니'라는 단어는 내 시름을 함부로 누설해도 좋을 사람처럼 여겨진다. 내 물음에 그녀는 짧게 대답한다. "노물이요." "문 노물을 요라고 많이 캐갰소?" 이제야 내 입에서는 전라도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팽야. 꼬사리허고. 그란 것이요." "고비허고 항가꾸도 있고 그라요?" "야." "요거슬 집이서 다 자시오. 앙그라먼 장에다 포요?" "포요." "함뻔에 폰닥허먼. 엄마나 나오요?" "몰겄소. 폴아 봐사재." 그녀는 대답마저 힘겹다는 듯이, 가늘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저 만치서 아이는, '아빠 빠이 와.' 손짓을 한다. 녀석은 저만치 있다. 어쩌면 이 할머니로부터 70여년의 세월 저편에 있는지도 모른다. 천천히 걸어 아이의 손을 잡은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차피 표준말이 아닌, '노물'이나 '팽야' 등의 전라도 말에서 시작된 내 인생이, 인터넷 상에서 쓰이는 'ㅊㅋ ㅊㅋ'나 '-입니당' 식의 말, 혹은 녀석이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말인 '핸데'나 '핸배' 사이에 놓인 느낌이다. 말의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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