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책의 큰 틀 바뀐다
농업정책의 큰 틀 바뀐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7.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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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이재의(나노방제실용화센터 소장)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쌀 한 톨이라도 흘리면 큰 죄가 되는 걸로 알았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밥상에 앉아 이 때문에 야단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요즘 아이들이 쌀밥을 거의 외면하고 고기나 피자 등만 먹으려고 하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소득이 높아지고 외국산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먹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현상의 이면에서는 우리 식탁에 ‘먹거리 공급’을 해왔던 농업의 쇠락이라는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과정에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농업부문의 비중 감소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2~3배 정도 더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큰 고통이 따르고 있다. 농업생산비중이 40%에서 7%까지 줄어드는데 소요되는 평균 기간이 유럽 117년, 미국 92년, 일본 73년이 걸린데 반해 우리는 불과 2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농업이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어왔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고 고령층만 남았다. 식생활 역시 주곡인 쌀과 보리 의 비중은 크게 줄고 채소, 과일, 육류 등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품목도 바뀌었다. 특히 UR협상 타결이후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쏟아져들어 오면서 농산물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농가소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쌀 수매 중단, 배추가격 하락 등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해마다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지만 이제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릴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큰 틀이 바뀌고 있다. ‘한미FTA 농업부문 보완대책’ 수립을 위해 지난 5월2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그 내용이 구체화됐다. 농림부는 ‘FTA지원 특별법령’을 개정하여 제도적으로 FTA대책을 뒷받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과 같은 4가지에 중점을 두고 개선책이 마련됐다. 첫째 농업구조개선과 농가소득향상, 둘째 품목별 경쟁력 향상 지원대책, 셋째 개방 진전에 따른 단기적 피해보전장치 마련, 넷째 교육 복지 등 농촌생활여건 개선대책 등.

어찌 보면 지금까지 누차 이야기돼왔던 것을 새삼 반복하는 느낌이 드는 듯한 대책들이다. 하지만 우리 농업을 둘러싼 환경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농정의 최대 관심사는 ‘농산물수확 증산정책’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책은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본격화된 ‘신농정’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10여 년간 개방화에 대비한 과도기적인 구조조정의 시기였다면 이젠 완전개방이라는 환경 속에서 생존 가능한 방법을 구체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간 신농정 하의 농업구조조정은 성공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빤히 내다보이는 환경변화를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격렬한 저항과 정책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농체제의 해체’가 곧 ‘농업의 몰락’인 것처럼 간주했던 농민운동의 방향이 정확한 것이었는지도 반성해볼 일이다. 시대적 흐름이 ‘기업화된 대농’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생산관계의 틀이 농업분야에서도 자본주의적인 관계, 즉 기업농과 농업노동자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하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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