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 어떻게 이뤄졌나
양심선언 어떻게 이뤄졌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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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설득과 실패 끝에/
"더 늦기전에 얘기하자" /
40대 부대원 동료 설득//

당시 공수부대원의 결정적 증언은 익명의 제보와 이에따른 관련 당사자의 심경변화, 그리고 동료부대원들에 대한 설득을 통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9일 오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어떤 남자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80년 5월22일 주남마을 근처에서 공수부대 군인들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제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니 확인해보라는 말을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진상규명위 군 관련사건을 담당하는 조사1과는 이튿날 즉각 기초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광주시 남구 노대동 남제저수지 부근에서 광주를 빠져나가던 사람들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매복했던 부대가 제7공수여단 33대대임을 밝혀냈다.

조사1과는 33대대원들의 인적사항과 현주소를 파악한후 직접 면담을 시도했다. 수차례 부인과 실패 끝에 지난달 26일 한 사람이 입을 연 것이다.

양심선언을 한 사람은 당시 매복부대 사병으로 40대 남자이며 현재 회사원
으로 일하고 있고, 광주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규명위는 이 남자의 신원을 더 이상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조사위원들이 "제보를 받고 왔다"고 말하자 "더이상 숨길 수 없다. 그동안 괴로웠으며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조사위원들은 그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실확인 작업에 나섰으나 다른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리자 진실을 밝힌 40대 남자와 동행, 부대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그는 "벌써 21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미 알고 온 이상 더 늦기 전에 얘기하자"며 옛 동료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에 나섰고 조사위원들은 그와 함께 4명의 부대원으로부터 민간인 학살 사실에 대한 증언을 추가로 확보했다.

진상조사위는 5·18광주민중항쟁 21주기를 맞아 추가제보와 양심선언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18일 이를 공개했다.
진상조사위는 오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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