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 半跏思惟 - 농부
반가사유 半跏思惟 - 농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5.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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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시와그림]조진태

잘 뚫린 도로를 따라 한가롭게 지나던 중
논두렁에 오래된 당산나무,
그 아래 담배 물고 농부 비껴 앉아있다
새참 뒤끝인가 보다

오살할,
작신나게 허리가 아프구나
아들 놈은 뭔 일이다냐 기별도 없네
가봐야쓴다냐 어쩐다냐 모내기는 다 마쳐야 쓴디
광주 쪽으로 휘감아 돌아나가는 재를 향하여
끙끙 앓는 소리 그렁그렁 숨소리 논물 흐르는 소리
바람결에 뒤섞여 잠결인 듯 부스스 눈을 뜨는 듯

알고보니 아들놈은 진즉 세상 떴다는데
농사 짓느라고 생과 사를 모르는가
마침 개구리 한 마리가 풀쩍 논물을 튀기고
손가락 사이로는 담뱃재 떨구어지는데

늙은 농부 그렇게 오월의 땡볕을 식히는 중이다

▲ 조진호 作 '망향초'
[시작노트]

기억은, 이도저도 아닌 것 같지만 고통스러운 것과 행복한 것들 사이에서 길항한다. 거기에 역사가 자리한다. 역사는 사람의 기억을 먹고사는 생물이다. 기억이 끊기면 역사도 끊기고  역사가 끊기면 사람의 존재도 끊길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5월은 그렇게 역사로서 우리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아슴한 흔적으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와 함께 말이다. 5월은 여전히 현재로서 우리의 기억에 자리하면서 고통스럽게 재현되고 있다. 그 고통을 이기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생과 사의 경계를 초월한 듯하다. 이땅을 딛고 사는 민중의 모습이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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