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와 대통령의 책임
랜드마크와 대통령의 책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5.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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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연작칼럼]혼돈의 문화수도 ①프롤로그

‘랜드마크’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은 이 말을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표지(標識)’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2007년 광주는, 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듯 하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표지(標識)라는 새로운 뜻을.            

어떤 사람들은 ‘랜드마크’를 주장하며 자신들을 결속시키고, 어떤 사람들은 ‘랜드마크’라는 말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동질성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지금 광주에서 ‘랜드마크’는 ‘나와 너를 가르는 징표(徵標)’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2003년에는 ‘문화수도’라는 말을 두고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문화수도’라는 말을 고집하면 ‘광주시’편인 것 같고, ‘문화중심도시’라고 하면 ‘참여정부’편 인 것 같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하면 어리둥절한 대목이 있다. ‘문화수도’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처음 만들어 낸 말이다. 그런데  왜 그 말을 쓰는 것이 참여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졌을까. 참 아이러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랜드마크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노대통령은 광주에 ‘대형건물’에 대한 기대를 심어놓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3년 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았다. ‘문화수도’를 만든다고 하지만,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그런 상황이었다. 이 날 대통령은 전남대강당에서 처음으로 ‘퐁피두센터’를 언급했다. 너비 166m, 높이 42m인 프랑스 파리의 대형복합예술문화센터.
            
당시 광주 언론은 퐁피두센터에 대한 사진 한장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던 광주가 대통령의 언급 이후 ‘퐁피두센터’를 향해 내달렸다. 도청 터에 짓기로 했던 [5.18기념관]은 온데 간 데 없어지고, 그 곳에 [문화의 전당]이 들어서게 되었다.
      
5.18기념관을 짓기 위해 도청을 옮긴 당초 취지를 생각하면 참 난 데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열린 뚜껑은 이와 사뭇 달랐다. 건물은 분산됐고, 지하로 들어갔다. 분명 주목받을만한 새로운 시도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혼란은 점점 분노로 변해 갔다.
       
문헌은 ‘대형건물’을 짓겠다는 방침이 이미 오래 전에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문화의 전당 설계 공모에서, 심사위원들은 일찌감치 ‘분산형 건축’에 좋은 점수를 주겠다는 기준을 정해두고 있었다.
     
‘분산형 건축’이 ‘민주도시’ 이미지에 더 어울린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광주는 그런 방침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여전히 ‘퐁피두센터’에 매어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한 ‘건물크기’를 넘어 선다. 그것은 ‘소외’의 문제이고, ‘소통’의 문제이다. 그들은 지역발전을 위한 ‘진심’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공 다툼’에 주력했다.

‘공(功)’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그들’끼리의 다툼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이미 실체를 드러낸 ‘국무총리급’위원장이나 ‘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들도 정치적 허세가 만들어 낸,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거기다 일부 지식인들의 부화뇌동까지 겹쳐, 광주에는 혼돈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 끝조차 보이지 않는다.

살면서 일이 실타래처럼 엉킬 때는, 가끔 오던 길을 뒤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와 버린 길을 되짚어 갈 수는 없어도,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면, ‘오늘’을 풀어가는 일이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문화수도’란 이름으로 달려 온 4년여의 일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글을 내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엉켜진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5월 1일, 참 다행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랜드마크’에 대한 주장을 누그러뜨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를 풀어내보자.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해 행해진 '그들'의 이야기다.
 
* 정병준 기자는 KBS광주방송총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 글은 KBS광주방송총국 홈페이지 강추! KBS광주 코너에도 연재돼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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