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살아야 사람도 산다”
“벌레가 살아야 사람도 산다”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3.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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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⑩생명 살림운동 펼치는 ‘한살림 광주생협’

자연 생명 존중 농촌-도시 공생 공동체 꿈꿔

“사람은 자연과 떨어져 혼자 살아갈 수 없는데도, 마치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죠. 천만에요. 모든 것은 한데 어울려 살죠. 먹거리도 마찬가지예요. 벌레를 죽이려고 농약을 치다 보니 결국 사람까지 죽이게 되는 것이죠. 벌레가 살수 없는 세상은 사람도 살수 없는 세상입니다.”

자연도 살리고, 사람의 생명도 살리자는 생명살림 운동을 펼쳐온 지 20여년. 1986년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의 20평짜리 쌀가게로부터 시작한 ‘한살림’은 21년째를 현재 전국 19개 지역 생협, 13만5,000여명의 조합원 규모로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관행농법이 대부분이었죠. 정부에서도 증산, 증산을 부르짖는 통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쳐서라도 생산량 늘리는 데만 급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농약중독으로 죽어가는 시대였죠. 과연 이게 옳은가하는 문제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겁니다”.

한살림 운동에 불을 지핀 건 원주 대성 중고등학교 설립자 고 장일순 선생. ‘밥이 곧 하늘이며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생명운동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시인 김지하, 가수 김민기씨 등이 음으로 양으로 동참했다. 한살림 광주생협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승용(54)씨도 그 초기 멤버중의 한 사람이다.

▲ 담양 시목마을에서는 조합원들이 단감나무를 분양받고 있다.
광주에서 한살림 운동이 시작된 건 1987년 무렵. 김지하 시인이 해남에 머물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과, 현재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인 김성종, 녹색대학 민간의학과 교수를 지낸 양동춘, 교사 노영필씨 등이 중심이 돼 1987년 무등산에서 감잎차를 직접 생산하며 ‘광주한살림공동체’를 준비한 것이 시초였다.

초기에는 유기농산물 직거래뿐 아니라 생활 문화운동에도 많은 비중을 뒀다. 출판, 교육, 도농직거래, 주민자치운동, 의료공동체 운동, 녹색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몸부림쳐 왔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1992년부터는 활동을 중단하고 긴 휴지기에 들어가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살림 광주소비자생협’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건 2004년 3월. 꼬박 3년이 지난 셈이다. 300명 남짓 조합원들로 시작한 것이 더디지만 이제 1천여명의 조합원으로 발을 넓혔다. 상근자는 모두 5명.

서울이 8~9만여 세대, 부산 3,000여세대, 대전 5천여세대에 이른 것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편이다. 호남지역에선 광주 이외에 정읍전주 한살림, 여수광양 한살림이 함께 지역생협으로 연결돼 생명살림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한살림’은 ‘크다’, ‘하나’, ‘전체’, ‘함께’를 뜻하는 ‘한’과, ‘살려낸다’, ‘산다’는 뜻의 ‘살림’의 합성어, 즉 ‘모든 생명을 함께 살려낸다’는 뜻이다.

“한살림은 생명살림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조합원이 되려면 반드시 교육을 거치도록 하지요. 지구가 살아나야 우리가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 잡아야 가능 합니다”. 김영배(44) 한살림광주생협 사무국장의 말이다.

조합원은 3만원 이상의 출자금만 내면 누구나 가능하다. 물론 조합을 탈퇴할 때는 모두 상환 받는 식이다. 아울러 반드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비영리단체인 만큼 상업적 이윤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한살림에서는 상품이라 하지 않고 ‘물품’이라고 부르며, 배달이라고 하지 않고 ‘공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살림은 단순히 소비자 조합이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조합의 주인이다. 광주 한살림 30여 생산자 조합원을 포함, 전국 1천500세대가 생산자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1년에 1회 이른바 가격결정 회의를 거친다. 생산자로서의 생산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 소비자로서의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는 수준에서 그해 계약 재배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기농산물 자연화장품 등 1천여 품목 취급


‘한살림’이 취급하는 품목은 일반 농산물 대부분과, 유기농가공식품, 자연화장품, 옹기류 등 1천여가지. 특징이라면 철저한 실명제다. 어떤 물품을 어느 지역 누가 생산했는지, 그 물품을 누가 구매했는지가 정확히 체크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품을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품구입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필요한 물품을 주문한 뒤, 물품 공급자를 통해 각 가정에서 수령하는 식이다.

“일반 시중가 보다 더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단순 비교할 건 아닙니다. 나중에 건강을 잃고 병원비 들이는 것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정작 먹거리에 드는 비용을 따지면 과연 생계비에서 얼마나 차지하느냐는 것이죠.”

임 이사장은 “조합원들 대다수는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이 많다”며 “오히려 주문을 계획적으로 하다보니 지출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 이사장은 “편안함에 익숙해진 현대생활에서는 자칫 귀찮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것이 농업도 살리고 우리 몸도 살리는 길”이라며 “이것이 불편함이라면, 조합원들은 당당히 그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깐깐함과 원칙이 더디지만 20여년 운동에 이제 13만 세대의 조합원으로 성장했다. 아울러 광주시 우수농산물 지정 시범학교로 지정된 38개교 중 광주은혜학교, 선광학교, 충장중 등에는 올해 학교급식을 공급하기로 했다.

▲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단오제, 가을 추수 마을잔치 등은 도농 공도체를 꿈꾸는 '한살림'정신의 또 다른 구현이기도 하다.
한살림이 중시하는 또 다른 것은 교육과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교류이다. 아이들에 대한 먹거리 식품 안전교육, 생명평화단체와의 각종 연대활동, 방학과 주말을 이용해 개설하고 있는 ‘생명학교’, 그 외 요리, 책읽기 모임, 산행 등의 조합원 동아리 모임 등이다.

지난해엔 담양 시목마을에 100평 남짓한 텃밭을 직접 가꿔 보기도 했으며, 조합원들이 200평 논 1마지기에 직접 모내기를 하며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단오제, 가을 추수 마을잔치 등은 도농 공동체를 꿈꾸는 ‘한살림’ 정신의 또 다른 구현이기도 하다.

특히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명살림기금’이다. 친환경농업이 확대되면서 유기농 재배농가가 늘고 있지만, 아직 한살림 조합원이 생산한 쌀을 다 소비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것에 고민이 있었다. 농사를 줄일 수도 없고, 결국 생산자에게 일정한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생산량 전량을 구매해 이를 어려운 곳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기금은 이익금 일부와 조합원들의 십시일반으로 조성됐다. 한살림은 이렇게 마련한 기금을 통해 지난해 전국의 결식아동과 소년소녀 가장, 소외시설에 쌀 340가마(80㎏들이)를 지원하는 한편,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으로 쌀 310가마(80㎏들이)를 지원했다.

“지금은 이렇지만 식량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논밭을 한번 폐농하면 쉽사리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농민이 자녀를 키우면서 보람을 가지고 농촌에 살수 있도록 해야지요. 생산비를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적인 면에서도 소외되지 않도록 여러 구상 중입니다. 아직 목표이긴 하지만요.” 한살림 식구들의 어깨가 더욱 미더워지는 대목이다.

“유기농산물 제가치 평가해야”
[인터뷰] 임승용 한살림광주생협 이사장

   
 
  ▲ 임승용 한살림광주생협 이사장  
 
임승용 이사장이 서울에서의 교편생활을 접고 귀농을 결심한 것은 지난 99년. 생태환경에 눈을 뜨고 전북 순창으로 들어간 것이다.

“생태공동체를 꿈꾸고 들어갔는데, 농촌에서 독립적으로 생태공동체를 꾸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농사라 할 것도 없는 규모였지만, 한국적 농업현실에서는 도시 소비자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겁니다.”

전북 순창, 지리산 근처 등지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다 한살림 광주생협 창립과 더불어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임 이사장은 우선 생명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벌레 먹지 않고 매끄러운 채소를 찾는데,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치고 크고 빛깔 좋은 채소가 나올 수 없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 치려면 그 만큼 농부의 일손이 더 많이 가야하는데, 도시 소비자들은 전혀 몰라주는 것이지요. 생명산업에 앞장 선 농민들이 정작 더 힘들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겁니다”.

임 이사장은 “생산과 소비가 같이 맞아 떨어져야 생명도 살고 인간도 어우러져 살수 있다”며 “건강한 유기 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줄때만이 땅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둘 중 한명이 아토피를 앓다시피 하는데 한살림을 이용하면서 좋아졌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죠.”

임 이사장은 “생명살림운동의 주인공은 벌레 먹은 배추를 찾아주는 이름 없는 조합원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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