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육'이 아이들 마음 움직였다
'열린 교육'이 아이들 마음 움직였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7.03.07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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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교육 대안현장 ②]전남 영광 영산성지고ㆍ성지송학중

▲ 영산성지고등학교(왼) ,성지송학중학교(오) 전경
대안학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어디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를 대안학교의 대표 격으로 연상할 것이다.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대안학교의 시작을 알렸던 간디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재학생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면서 요즘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간디학교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만큼은 못해도 대안학교의 역사를 묵묵히 써가고 있는 학교가 전남 지역에 있다. 바로 전남 영광의 영산 성지고등학교(교장 황춘덕). 간디학교와 함께 1997년 12월 전국 최초로 교육부 인가를 받은 특성화고교다.

▲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소정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해안도로 걷기 후 느낌을 적고 있다.ⓒ영산성지고
특성화학교 탄생에 결정적 기여


96년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한 안병영 장관이 당시 급증하고 있었던 학교 부적응 중도탈락자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던 중 성공 사례로 영산 성지고를 전격 방문한 뒤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 것이 대안학교 양성화의 계기가 됐다.

당국은 이듬해 ‘특성화학교’라는 새로운 유형의 학교 설립계획을 구체화하고 1998년 초 새롭게 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이를 반영하면서 대안교육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97년 개교한 간디학교와 달리 영산 성지고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5년 영산선원 부설 3년제 중등부를 개설하고 82년 고등학교 설립인가, 98년 교육부의 특별지원으로 남녀 기숙사를 완공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관내 학생들이 주 대상이었으나 학생 수가 감소하자 80년대 말부터는 전국에서 학생들을 받았다.

이때만해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맡기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학부모들이 꽤 많아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정부 지원도 아예 없을 때라 도자기 공장, 양계장 등을 일구며 선생과 학생들은 공부보다 일에 매달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마음상처 깊은 아이들, 새살 돋게 해

현재는 학년 당 40명 정원에 3학년까지 11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올해는 11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그 중에 42명을 선착순으로 뽑았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지원 학생들을 선발하는 다른 대안학교와 달리 ‘사람마다 부처님’이라는 원불교 정신처럼 아무 기준 없이 먼저 오는 학생들부터 받기로 한 것이다. 판사, 의사, 정치인에서부터 어부, 이발사, 요리사까지 부모들의 직업군도 다양하다.

‘교육학의 보고(寶庫)’라는 송기웅(46) 교감의 표현대로 아이들도 역시 제각각. 우등생에서부터 공교육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까지 어떻게 한 물에 존재하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다채로운 구성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대부분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지 못해 괴로워 한다는 정도. 이들을 16명의 정규 교사와 20여 명의 특성화 교사들이 동고동락하며 지도하고 있다.

교사 1명이 학생 10여명과 기숙사 같은 방에 머물면서 24시간 부대끼며 아이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인다. 덕분에 교사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가족들에겐 주말에나 겨우 얼굴을 내미는 형편이다.

수업료는 1분기당 21만5천원이며 기숙사비는 매월 25만원 수준. 이 외에 각종 체험학습비가 학기당 30만 원 정도 들어간다. 특성화교과로는 산악 등반, 생활요가와 명상, 탈춤, 짚풀/도자기공예, 서예, 해외이동수업 등을 실시한다.

특히 마음공부와 마음일기 지도는 아이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다스리는데 더 없는 교육법으로 자리 잡았다.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경계’를 발견하고 이를 다잡는 방식의 정신수양법은 아이들의 인성을 계발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원불교는 영산성지고를 포함해 성지송학중, 합천 원경고, 경주 화랑고 등 전국에 8개의 대안학교를 세워 학생들의 개성을 최대한 배려하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과정은 부모들과 학생들이 학교의 교육방식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절차다. 요가강의도 특성화교육 중 하나. 학생과 부모가 짝이되어 요가를 실습해 보고 있다.ⓒ영산성지고
80% 이상 대학진학, 특성화 교육 효과 커


이러한 교육방법의 결과는 아이들의 향후 진로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아이들의 80%이상이 대학으로 진학해 보통교과(70%) 외에 실시하는 특성화교과(30%) 교육이 대학진학에 큰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또 이들 중 상당수가 전국에서 ‘한 가락’씩 한다는 문제아, 학교 부적응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통계는 성지고의 남다른 교육방법이 먹혀들어 간다는 반증이다. 진흙 속에서 핀 연꽃처럼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교육자들의 의지에 따라 아이들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학교법인 영산성지학원은 영산성지고의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 최초의 특성화 중학교인 영산 성지송학중을 지난 2002년 개교했다. 지난해 3학년 학생들의 경우 대안학교 13명, 인문계 고교 4명, 도예고 1명, 예술고 1명 등으로 진학을 결정해 대안학교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영상성지고와 성지송학중의 성공적인 사례는 대안학교를 세우려는 이들의 전국적인 모델이 돼 관계자들의 문의와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교육의 보완적 성격으로 출발했던 대안교육이 이제는 기존의 학교교육을 ‘대체’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선한 바람’으로 다가서고 있다.

 

“대안학교는 없어져야 한다”
[인터뷰] 송기웅 영산성지고 교감

   
 
  ▲ 송기웅 영산성지고 교감  
 
송기웅 교감이 공교육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 벌써 12년 전 일이다. 전에 있던 학교에 비하면 급여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웠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이제야 평생에 할 일을 찾은 느낌이었달까.

그렇다고 송 교감이 대안학교 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송 교감은 “궁극적으로 공교육이 대안화되고 그 안에서 비전을 찾아야지 대안학교가 늘어나는 것이 결코 올바른 추세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오히려 대안학교는 공교육이 충격을 받을 만큼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 정도면 제 역할은 다 한 것이라고 대안학교 소멸론을 주장한다.

“미국 전역에 3천개까지 늘어났던 대안학교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사라져버렸어요. 이는 실용주의 근성이 강한 미국답게 공교육이 대안교육적 요소를 모두 흡수해버린 까닭이지요.  2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안학교들이 할 일이 없어지면서 80년대 중반까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전체 공교육비의 채 2%가 안 되는 예산이 대안교육비로 쓰이고 있지만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에 공교육의 많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이는 매년 2만여 명의 초등생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는 어느 통계를 보듯 공교육이 이를 서둘러 개선하지 못한다면 장차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 있다.

송 교감은 인간성 회복과 자아 발견이라는 대안학교의 장점과 경쟁과 지식교육이라는 공교육의 특성이 만날 때 우리사회의 창의적인 힘이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기득권의식, 특권의식 곧 대학들의 학벌타파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송 교감의 주장이다. 지금의 명문대 위주의 대학입시제도가 없어지지 않으면 대안학교를 아무리 많이 세운다 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는 얘기다.

“교육제도는 모든 사회구조의 압축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학생들의 경험이 사회생활에서도 다시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이죠. 현대문명 속에서 나를 부정하고 살아가는 법을 공교육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송 교감의 마지막 말은 앞으로도 대안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음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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