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빚 조금씩 갚고 있습니다.
5월 빚 조금씩 갚고 있습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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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료때문에 아직
100분의 1도 못 만들었어요”

80년 5월광주 모형작업에 나선 김동선씨








"죽음을 직접 맞닥뜨린 상황, 한 발짝만 나가면 죽는 거예요. 저는 못나갔지만 그 한 발짝을 나갔던 사람들이 있었고, 다 죽었어요. 새벽에 도청이 진압 당할 때 애절한 여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못나간 상황, 그게 항상 마음의 빚이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아요." 80년 5월 스무살 재수생의 신분으로 광주를 겪었던 사람 김동선(41)씨.


그는 그 후 스물 한해를 살아오는 동안 해마다 4, 5월이 되면 가슴이 `쾅쾅` 뛰고, 커다란 빚덩어리를 엎고 있는 기분으로 살아야했다.


그리고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보자고 구상한 것이 80년 5월 광주항쟁당시를 모형으로 옮기는 일.




그곳에 80년 5월 광주가 있다




▲해마다 4,5월이 되면 심장이 '쾅쾅'뛴다는 김동선씨 ©유뉴스 박정미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작업실 여기저기엔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들이 타던 장갑차, 총, 광주시 지도, 각기 크기가 다른 상무관(당시 넘쳐나는 시신을 모아두고 확인하던 곳)과, 망월동 묘역 등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한마디로 80년 5월의 작은 광주였다.




솔직히 그가 만든 모형을 보기 전까지, 기자의 머리 속에 있던 모형속 사람의 모습은 `민속박물관`에 있는 천편일률적인 표정의 인형 같은 것이었다. 그 의미를 떠나서 말이다.


하지만 그 모형은 5월 망월동 묘역 속에서 아들, 딸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사람들이 살아서 뛰쳐나올 것처럼 생생하고 참혹함 감정에 휘말리도록 했다.




사라진 자료가 광주복원 더디게만 합니다




"지금 만들어 놓은 것은 내가 구상하고 있는 것의 100분의 1도 안돼요. 5년째 만들고 있지만 솔직히 모형작업보다 자료 수집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려요. 5.18의 현장들이 없어지고 훼손되고, 아예 다른 장소로 바뀐 곳이 있는데, 설계도면 자체가 없어요. 예를 들어 YWCA건물은 지금 식당으로 사용된대요. 흔적이 아예 없어진 거죠. 그나마 `상무관` 같은 경우는 경찰체육관으로 관청이라서 아직 남아있어요. 민간 건물이면 벌써 사라졌죠."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복원은 순전히 기억력, 증언에 의존해야 한다는 김동선씨는 자료수집의 어려움에 대해 몇 번씩이나 토로했다. "당시 설계도면만 있어도 작업시간이 단축될 수 있는데, 그것이 없으니 직접 사진촬영하고, 지붕, 바닥, 창문, 계단까지 다 줄자로 재서 설계를 다시 해야 돼요. 얼마나 복잡해요. 며칠 전에도 건물이 하나 사라졌다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전남대 정문도 80년 당시 모습이 훼손되고. 기초자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잘 보관해야해요."




▲사진위:시민군이 타던 장갑차모형 사진아래:5.18희생자시신모형 ©유뉴스 박정미
인하공전에서 `건축모형` 강의까지 한다는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처럼 보였다."솔직히 다 때려치우고 이 일에만 전념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되고, 또 이일에 투자도 해야되니까 생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자료수집만이라도 쉬우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텐데.. 모든 모형을 10분의 1로 축소해서 완성하면 12작품정도 될 것 같애요. 평생이 걸려도 다 못할 수도 있고."




광주까지 내려가서 사진촬영, 증언 녹취, 모형제작작업까지 혼자서 생업과 병행하며 모든 것을 사비로 충당하는 것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가족들은 미쳤다고 해요. 하지만 5월 광주에 가면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로 빠지는 것은 그 당시 경험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가 시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재수생이란 신분으로 대학생들 시위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시민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땐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적극 나서지 못했죠. 대학생들이 어깨동무하고 거리에 뛰쳐나올 때 나는 학원강의실에서 담배 피며 내려보고 있었어요. 주변인으로...하지만 가급적이면 상황을 제대로 보려고 다닐 수 있는 만큼 돌아다녔어요"




비현실적인 일은 바로 80년 5월 광주였다.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때문에 한발 나서지 못한 것을 여태껏 간직하고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그 넋을 달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살아남은 자의 현실이었다.




낡은 카세트에서 나는 그날의 소리들이 채찍질이된다




"당시 광주는 제대로된 언로가 차단되고 외부사람들한테 폭도로 매장돼고 있었어요. 그래서 외부에 있는 친구들이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알려주려고 녹취를 했어요. 강의 녹음을 하려고 산 마이크로 카세트로 21일 상황을 녹음했는데 도청부터 시작해서 광주시를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솔직히 또 그게 상당한 짐이 되더군요. 가택수택을 한다고 하고, 녹취한것이 드러나면 간첩으로 몰릴 수 도 있는 상황에서 폐기를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숨겨서 보관했어요."




아직까지 그는 그 낡은 카세트속에 든 테잎을 가지고 있었다. 절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속에 틈틈히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는 낡은 흑백사진이 칼라사진으로 변하면서 눈앞에 항쟁을 불러내는 마법 같은 역사복원이었다. 그것은 그가 어려운 작업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채찍질일 법 했다.




당시 외지에서 80년 5월을 보냈던 사람들조차 가슴에 무덤을 묻고 살아가는데,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야 무슨말이 필요할까? 언론에 의해 철저히 폭도와의 전쟁쯤으로 알려지고 고립된 섬 속에서 그와 비슷한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모형작업을 하면서 임철우씨의 봄날이란 책을 읽었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구나. 각기 전문분야에서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생각하며 힘을 내게 한 책이예요."




그에겐 한가지 더 잊을 수 없는 생채기가 있다. "공수부대는 한번 찍으면 끝까지 쫓아와요. 시위현장에서 만난 친구와 같이 공수부대에 쫓기다, 그 친구만 잡혔어요. 그 친구만 생각하면 늘 미안해요. 연락도 못하겠더라구요."




그가 강의를 하는 학생들 중 태반이 5.18을 잘 모른다는 건 그의 광주모형작업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입증시킨 계기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사람들은 진실을 완전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더디기만 해요. 외지에서는 이제 그만해라, 지겹다. 도대체 5.18이 뭐냐고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구요, 저는 차라리 5.18을 알아달라고 외부에 외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외부인들이 알고자 하는 계기를 만들어서 와서 보고 느끼게 하고싶어요. 10분의 1이라는 큰 모형이 외부사람들한테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호기심에 따라 와서보고 느끼도록 하는 거죠."




민주화모형공원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이 모형이 완성되면 이동전시 모형이나 모형공원을 만들어서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목부터 그의 꿈꾸기가 시작된다. "모형공원을 만들어서 세계사속의 민주화 흐름을 시대별, 나라별로 재현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계사 공부가 될 것이고, 민주화 공부가 될거예요, 한국현대사의 민주화 흐름을 재현하면 그 안에서 5.18도 재현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5.18을 느끼게 되겠죠. 그러면 희생자들의 뜻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지 않겠어요."




희망을 품은자의 들뜬 목소리는 계속됐다. "외국에는 미니어쳐공원이 많이 있는데, 아쉬운건 어딜가든 유명건축물이라는 똑같은 아이템이예요. 우리는 유명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재현해야 해요. 거기엔 그 시대의 건축양식, 서민들의 주택, 복장이 그대로 나와요. 60년 4.19당시 항쟁의 거리와 그들의 표정도 나오는 거죠."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말하는 역사현장 모형공원을 상상했다. 결코 생경하지 않는 그 공원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역사교과서였다.




그의 말대로 꿈은 자유니까 기자도 꿈을 한번 꾸어본다. "그의 꿈이 현실화 된다. 먼저 한국 현대사가 복원되어 민족해방, 미군정, 한국전쟁, 양민학살, 4.19혁명, 5.16쿠데타, 5.18광주민중항쟁, 6.10민주화항쟁, 91년 5월항쟁 등 그 시대속에서 살며 저항한 민중들이 살아 나와서 말을 할것처럼 생생한 모형공원이 만들어진다"




물론 독재자의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드는 돈으로 우선은 이런 모형을 만들 수 있는 역사의식과 재주를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 이 꿈의 1순위가 된다.


▲당시 5.18묘역 모형 ©유뉴스 박정미 기자



▲사진왼쪽:미완성된 10분의 1크기의 상무관모형 사진오른쪽:광주시 지도 ©유뉴스 박정미



▲민주화모형공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김동선씨의 작업실 곳곳엔 광주모형작업을 위한 흔적으로 가득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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