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엄마들의 휴식처 됐으면"
"고단한 엄마들의 휴식처 됐으면"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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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④인터넷 카페 '전남광주 엄마들의 모임'

인터넷이 이어준 '엄마 공동체'

지난달 30일 광산구 운수동 매일유업 광주공장의 한 교육실.

80여 개의 좌석이 어린이들과 주부들로 가득 찼다. 인터넷 카페 ‘전남광주 엄마들의 모임’(cafe.daum.net/gjmom. 이하 ‘전광모’) 회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공장 견학에 나선 것이다.

“신청자들은 더 많은데 교육장소가 한정돼 있어, 부득이하게 선착순 마감한 것입니다” 전광모 운영진중 한 명으로 이날 견학에 함께 동행한 오은주(32)씨의 설명이다.

공장소개와 간단한 질문들이 끝나자 곧바로 생산 현장을 둘러보는 순서. 공정을 따라 직접 우유가 생산되는 과정을 둘러보는 아이들은 마냥 신기한 눈빛이다. 갓 생산된 치즈도 맛보고, 기념촬영도 하는 등 방학 중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체험학습 현장. 공장 견학은 이달 들어 두 번째로 오는 9일 한차례 더 있을 예정이다.

▲ 매일유업 공장을 방문한 전광모회원 가족들이 라인 생산과정을 견학하고 있다..

회원 1만2천여명,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


카페 ‘전광모’가 개설된 것은 지난 2003년 12월. 카페 이름 그대로 광주전남지역 엄마들의 모임이다. 육아, 살림살이 등 다양한 정보들을 교환하는 장소다. 1일 현재 회원은 1만2,280여명. 예사롭지 않은 규모다.

규모만이 아니다. 회원들이 하루 올리는 글만 최소 100여건 남짓. 댓글을 포함하면 그 몇 배에 이른다. 실시간 접속자 수가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120여명. 1일 방문자 수만 5천여회 정도다.

특히 아이들과 관련한 공연 정보 등의 글은 접속건수가 1천~2천명을 넘어서는 건 예사다. 뮤지컬 ‘사과가 쿵’ 공연 정보 조회는 6천회를 넘기도 했다. 이만하면 카페에선 지금 무슨 난리가 나고 있다고 할 밖에.

“카페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엄마가 동갑내기 아이 있는 엄마들끼리 모임을 한번 하면 어떻겠느냐고 글을 올렸죠. 하루 이틀 사이에 무려 열명 남짓 댓글이 올라왔어요. 아파트에 몇몇 또래 애들이 있다고 생각 했지만 막상 이 정도까지일 줄 몰랐지요” 세살박이 아이를 둔 광산구 신가동 한 회원의 말이다. 카페 전광모의 위력을 보여준다.

육아와 관련한 카페나 홈페이지가 한 두 곳도 아닌데, 유독 엄마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육아정보 엊고 맺힌 속 풀이까지


전광모는 크게 4가지 테마로 꾸며져 있다. 먼저 ‘문의방’에서는 육아와 교육상담, 신학기 준비 등 아이들 관련 정보들이 오고 간다. 공연 및 나들이, 심지어 복덕방, 구인 구직정보까지 육아와 살림살이에 필요한 제반 정보들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오고 간다. 

닉네임 ‘둘이 맘’을 쓰는 한 회원은 최근 카페를 통해 침대를 구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대신 용도가 없어진 가습기와 카펫은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줬다. 물물교환은 회원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회원들로부터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코너.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이중 삼중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주부들의 한숨과 푸념이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 회원들은 고부간에 빚어지는 말 못할 이야기, 때론 남편과의 불화로 입은 마음의 상처들을 ‘속풀이 맘풀이’ 코너에서 마음껏 토해 놓는다.

닉네임 ‘리안’씨는 씨는 “남편 흉도 보고, 시댁 이야기도 꺼내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라며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속 이야기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댓글로 마음이나마 서로를 위로해 주곤 한다”고 말한다.

이 밖에 크게 ‘주제가 있는 풍경’ ‘친해 봐요 소모임’ 코너 등도 회원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체험놀이 소모임 회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난해 여름 시청을 방문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상업성 배제, 아빠는 ‘NO’...

전광모가 이렇게 단순한 육아정보를 얻는 수준을 넘어 엄마들의 교류와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 된 데는 카페 운영의 남다른 방식도 한 몫 했다. 철저히 기혼자, 그 중 엄마들만 회원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회원이 되기까지는 1개월여의 다소 깐깐한 과정(신입회원, 준회원, 정회원)을 거쳐야 한다. 주소, ID, 기혼여부 등을 두루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때까지도 간단한 정보성 글을 읽어 볼 수는 있되 글쓰기는 제한된다. 정회원이 되더라도 6개월 동안 접속이 없을 때는 신입회원으로 다시 강등시킨다. 회원들 간 신뢰를 위해서다.

“좁은 지역이다 보니 한 발만 건너면 웬만큼 회원에 대해 알 수도 있죠. 그래서 카페는 남편과도 같이 못 보게 합니다. 그래야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죠. 이것이 결국 주부들의 신뢰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운영진 오은주씨의 설명이다.

상업성 글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더러 영업을 위해 일부러 회원가입을 하는가 하면, 간혹 과장 정보를 올려 업소 홍보에 이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 양해를 구한 뒤 바로 삭제된다. 경우에 따라 신입회원으로도 강등시킨다.

관리가 엄격한 만큼 신뢰는 쌓이게 마련. 전광모 회원으로서 일종의 소속감과 자긍심도 강하다. 정회원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추가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닉네임을 쓰면서도 신뢰가 가능한 대목이다.

오프라인 활동이 활발한 것도 전광모의 남다른 특징이다. 온라인에서 쪽지를 주고받다가, 인근 동네이거나 관심사가 같을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교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화사랑 동호회를 주관하고 있는데 심야영화를 보다보면 밤 8시에나 나가 12시를 넘길 때가 많죠. 그렇지만 전광모라면 남편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합니다. 테니스나 배드민턴 동호회 같은 운동동호회도 남자들과 같이 하게 마련인데, 전광모는 오로지 엄마들밖에 없거든요.”

손영란(37)씨는 “아줌마 모임만의 특권”이라고 자랑이다. 오프라인 활동은 철저히 회원들의 몫. 관심 있는 사람이 먼저 제안을 내고, 동의한 사람들끼리 모여 소모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다이어트, 요리, 인라인, 영화, 타향살이 등 취미별 소모임만 현재 10개가 운영되고 있다.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광산구 등 5개의 구별 사랑방, 그 외 품앗이 모임, 동갑 맘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지만, 운영진도 회원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회원들 스스로 꾸려가는 소모임이기 때문.

▲ 주부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가구 리폼 소모임 회원들이 생활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있다.

회원규모가 만만치 않다 보니 유혹도 없지 않다. 육아용품에 대해 공동구매를 제의해 오거나 배너광고를 게재 하겠다는 경우다. 각별히 경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까진 어떠한 후원이나 초대권도 거절해 왔다. 한번 응하게 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원칙 때문.

다만 얼마 전부터 티켓만큼은 조금 바꿨다.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도 생활이 여의치 않은 주위의 엄마들이 있기 때문. 최근 공지를 통해 공연티켓 30장을 이들에게 전달 해, 엄마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부채를 덜어주기도 했다. 엄마들 마음은 엄마들이 가장 잘 안다.

이 정도 규모와 활동을 하다 보니 기업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엄마들을 중요하게 보죠. 주부에 의해 구매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제품개발에서도 늘 참고하죠. 입소문이 가장 큰 마케팅 아닙니까. 잠재 고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적극 환영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내심 긴장도 되거든요.”

매일유업 광주공장 장덕주 품질보증팀장은 “주부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질문도 날카롭다”며 이들의 현장 방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아이들 정보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들이 카페에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살림만 하다보면 '나는 뭔가'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될 때가 많거든요. 조그만 모임이라도 갖고 성취감도 느끼며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엄마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운영진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엄마들에게 마음의 여유 주세요”
[인터뷰] 3대 대표운영자  오은주씨

   
 
   ▲ 오은주 시삽대표운영자
 
3대 시삽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은주(32)씨. 닉네임은 ‘유정채린’이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오씨는 건설회사에 종사하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이사가 잦은 편이다. 지난 2001년 군산에서 광주로 이사 왔지만 연고가 없는 지역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한동안 힘들었다.

우연히 검색을 통해 전광모를 알게 됐고, 지난 2003년 12월부터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오씨의 글을 유심히 지켜봤던지, 지난 2004년 상반기부터 운영자에 참여해오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대표 운영자를 맡게 되었다. 현재 5명이 공동 운영진으로 애쓰고 있다.

회원 규모가 확장된 데는 운영진들의 숨은 노력도 한 몫 했다. 괜찮다 싶은 공연이 열리면 기획사를 찾아가 할인혜택 부탁하는 것. 처음에는 냉랭한 반응 그 자체였다.

카페에서 참여자를 모집해 명단을 제시했더니 그때부터 눈빛이 달라지더란다. 위력을 실감했는지, 지금은 먼저 연락이 오는 편.

방문자가 많다보니 카페 관리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애들이 없는 시간을 할애해 행여 비방글이나 홍보성 글이 있는지 살피고, 문의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 글을 보내야 한다. 하루 3~4시간을 컴퓨터 앞에서만 보낸다. 발품을 들이거나 전화로 확인해야 하는 정보도 적지 않다.

카페 운영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거나 간혹 쓴 소리를 듣는 경우도 없지 않다.  통신비로 적잖은 사비를 들이고 있지만 사정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럴 때마다 책임감이 다시 한번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엄마들이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자신의 꿈은 물론 이름도 취향마저도 잊고 지내는 엄마들에게 더 각별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주세요.” 오씨의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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