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서거 40주년이다
체 게바라 서거 40주년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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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김승환 충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충북대 교수

1967년, 볼리비아의 산간에서 포효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쏴라 비겁자들아’라는 헌걸찬 항거의 목소리를 삼킨 것은 '타앙'하는 총소리였다. 그렇게 혁명가는 갔다.

그 이름은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07년, 동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는 정해(丁亥)년이 왔다고 환호를 하고 있다. 돈을 상징하는 황금돼지의 해라는 것이다. 이 두 대립적 장면은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그런가.

사회변혁운동가에게 있어서 2007년은 정해년이라기보다는 체 게바라 서거 40주년이다. 자본의 심장인 미국의 패권과 제국에 항거하다가 서거한 체 게바라는 지금 자본의 상품이 되어 있다.

체 게바라 산업은 그를 캐릭터로 팔고, 이미지로 만들며, 책과 텍스트로 상품화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자본에 항거한 혁명가를 자본이 영토화해 버린 것이니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정해년과 체 게바라 서거 40주년이 만난다. 한국의 서민들이 황금돼지를 꿈꾸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무엇인가에 자신의 꿈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황금과 돼지가 결합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들뢰즈가 떠오른다. 들뢰즈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사회이며 교묘하게 욕망을 부추겨서 사람을 끊임없이 쫓기도록 만드는 사회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가 불안하다.

이 자본의 독재체제하에서 인간은 반드시 정신분열증에 걸려야 한다. 갑남을녀나 그 누구라도 모든 인간 주체는 분열되어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하던 그 당시 남미는 오랜 학정(虐政)과 식민의 고통으로 찌들어 있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점령 이후, 수천만 원주민은 죽어갔고 또 육백년에 걸친 학살과 폭력으로 고난의 눈물로 살아야 했다.

남미를 여행으로 체험한 체 게바라는 식민의 역사에 분노했고, 카스트로를 만나면서 반제운동에 심취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야말로 20세기의 인류가 극복해야 할 최대의 적이라고 설정한 그는 짧은 인생 혁명의 제단에 바쳤다. 그래서 그는 자본에 칼을 들었다. 그러다가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절 그는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의 산속 어느 묘지에서 부활했다. 예수의 이미지를 가졌다고 하는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건너온 의사들에 의하여 시신이 발굴된 것이다.

쿠바에 상륙하던 밤의 그란마(Granma)에는 총탄이 쏟아졌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그의 유해에는 영광이 쏟아졌다. 이렇게 체 게바라가 죽고 체 게바라의 시신이 발굴되고 또 카스트로도 지친 육신을 달래는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자본의 계엄령이다. 과학기술과 만나고 패권제국과 연대한 자본은 신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권좌에 올랐다.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을 죽였다’라고 해야 맞는다.

그리고 삼엄하게 신의 권좌에서 자본의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중(multitude)들은 욕망에 쫓기면서 자본에 마취되어 있고, 자본에 항거하는 목소리는 아직 약하다. 2007년의 FTA도 세계화도 모두 자본군단의 작전수행이다.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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