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로 도피중인 농민 김덕종씨
수배자로 도피중인 농민 김덕종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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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시민의 소리]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신년 벽두에 나의 가슴을 아프게 헤집는다.

“민중의 울분을 폭도로 매도하다니…”라는 제목 밑에 실린 사진 속에는 한미 FTA 반대 폭력시위의 주동자로 몰려 수배중인 농민들의 허탈한 표정이 안쓰럽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김덕종 씨의 모습이다. 전농광주전남연맹 의장의 직함으로 수배된 김덕종 씨는 고 김남주 시인의 동생이다. 김남주 시인의 ‘사랑하는 아우’가 이제 작고한 형의 뒤를 이어 수배자로 쫒기고 있다니!

작년 연초에 해남의 김남주 시인 생가를 찾았을 적에 김덕종이라는 문패만 덩그러니 달려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아마 농민회 일로 동분서주하느라 집을 비웠던 모양이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김덕종 씨는 그러나 왠지 ‘이웃집 아우’처럼 친숙하다. [아우를 위하여]라는 김남주의 시에 등장하는 그는 “없는 놈은 농자금도 못 타 쓴다더냐/ 있는 놈만 솔솔 빼주기냐/ 조합장 멱살을 거머쥐고/ 면상을 후려치던” 열혈 청년이다.

그리고 “식구마다 논밭 팔아/ 대학까지 갈쳐 논께/ 들쑥날쑥 경찰이나 불러들이고/ 허구한 날 방구석에 쳐박혀/ 그 알량한 글이나 나부랑거리면/ 뭣한디요 뭣한디요 뭣한디요”하며 형에게 분통을 터뜨리는 농민이다.

그러던 그도 이제 50을 훌쩍 넘은 장년이 되었다. 덕종 씨가 사는 집은 김남주 시인의 생가로 현재 복원사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김남주 시인의 동생은 수배자로  쫓기는 가운데, 선산은 경매에 넘어가고, FTA 반대 폭력시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가압류 딱지를 붙이면서 생가를 복원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다른 복원사업처럼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삼간 오두막을 번듯한 양반 대갓집으로 고치는 따위의, 원형을 무시한 엉터리 생가를 만들어 놓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김남주는 늘 농민의 아픔을 자신의 시의 원천으로 삼은 전형적인 농민시인이었다. 혁명시인, 전사시인 등의 호칭은 김남주의 일면을 지칭한 것에 불과하며 그는 본질적으로 농민시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한미 FTA를 반대하는 ‘과격한 선동시’를 낭송하고 ‘폭력 시위’에 가담하여 동생과 함께 수배되거나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날마다 그리운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예요. 사랑해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싸우세요. 김덕종 힘내요! 만날 때까지 안녕!” 덕종 씨의 가족들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는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소박하면서도 찌르르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

낯선 객지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는 김덕종 씨와 농민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성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월에 한미 FTA를 마무리한다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끝까지 힘을 모아 싸워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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