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에서 파도소리를 듣다
무등에서 파도소리를 듣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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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와 그림]조진태
얼마간 눈보라가 그친 뒤
세속의 사람들 도란도란 오솔길을 돌아서
점심참을 막 넘기는 때였다
또는, 앞에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수선하게
이어졌다 끊어졌다 길의 대열을 이루기도 하고
혼비백산하여 흩어진 기억의 순례같이
점점이 낯익은 나무의 소리를 듣는 때였다

분명 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나뭇잎 흔드는 소리, 돌멩이들 딸그락거리고
얼마나 걸은 것인가 땀 흐르는 대로
곰바우를 돌아 가만 멈춰서서
앞 산봉우리를 넘어 멀어지는 새 울음은 새 울음대로
허방을 딛고 바라보는 금남로 사이 빌딩 숲은 빌딩 숲대로
그렇게 무등에 올라 바다를 생각하는 때였다

누구는 스치듯 지나간 날을 얘기하였으리라
거기에는 첫사랑의 달디단 추억도 있고
마지못했던 거짓말도 있고 회한도 있고
붉디붉은 새벽을 맞아 가슴 뛰던 날도 있었으리라
어떤 이는 은사시나무 등걸에 앉아 망연히
절망과 희망의 길을 물었으리라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천근만근 무게가 있었던가
처연히 서쪽을 넘어가는 하얀 달의 중력을 바라보며
누구누구는 그렇게 계곡의 바람에 마음의 배를 띄웠으리라

그렇게 가장 낮은 데까지 내려갔다가 수많은 것들의 속설을 몰고
바다가 계곡아래서부터 찰랑찰랑
무등의 중턱을 차 오르고 있었다

▲ 하성흡 작. 무등산.
*시작노트*

마음을 다스리러 산엘 간 적이 있다. 땀에 흥건히 젖어 세상 보는 일이 맑아졌을 때, 문득 계곡을 아래에서부터 훑고 올라오는 서늘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증심사를 거쳐 중머리재로 향하는 계곡에선가, 파도가 차오르면서 길을 떠난 고기가 물길을 잡아 찰랑찰랑 대는 듯 마침 풍경이 울고 있었다. 세상사람 누구 하나 절망 곁을 스치지 않으랴. 바람이 몰고오는 파도를 끝내 기다려 고즈넉이 유영하는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그새 희망은 새순처럼 돋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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