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해를 보내며
개의 해를 보내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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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개의 해인 병술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돌아보면 올해는 그야말로 ‘개 같은’ 한 해였다. 연초에 느닷없이 터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사태는 농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을 일종의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스크린 쿼터 축소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시작된 국민들의 당혹감과 분노는 연말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농민들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확장 이전하면서 토박이 농민들은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힘없고 늙은 농민들이었다. 더구나 북핵사태가 터지면서 보수언론의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안보 지상주의의 나팔소리에 농민들의 비명과 한숨소리는 묻혀 버리고 말았다.

막막하기는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로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자영업자의 밀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제일 높은 나라.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장밋빛 선진국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탈출해야 하는 난파선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는 DJ시절부터의 햇볕정책 때문인가? 현 정부의 주도세력인 이른바 386세대의 무능과 타락 때문인가? 아니면 보수·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전방위 네거티브전략에 속수무책으로 포위된 진보세력의 대응이 너무 무기력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실용주의를 구실로 보수의 품안으로 너무 쉽게 투항한 탓인가?

누구도 정답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개 같은’ 세월이 올 한 해로만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년에는 온갖 추악한 정치적 책략과 황당한 유언비어가 국민들의 심사를 뒤집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일거에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헛된 약속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황금 돼지’의 꿈에 속지 말자. 7, 80년대처럼 10% 가까운 경제성장을 기대하지도 말고, 반값 아파트의 약속에도 현혹되지 말자. 현실은 암담하고 답답하지만 그럴수록 굳건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한 발짝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같은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대립이 아니라 10억 이상의 아파트에 사는 부자들과 먹고 살기 힘든 서민층의 양극화,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의 공동화(空洞化) 같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민생문제들이다.

먹고 사는 일이란 개의 해가 황금 돼지의 해로 바뀌듯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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