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청주, 광주 들리는가?(FTA)
여기는 청주, 광주 들리는가?(FTA)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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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충북대 교수.한미FTA 충북도민운동본부 공동대표)
전국의 85명에게 체포 또는 소환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제법 삼엄한 발표를 듣고 있는 나도 그 85명에 속해 있었다. 망연하다. 어째야 할까.

27일(월), 우리는 급히 청주 복대성당에 진(陣)을 쳤다. 어두운 하늘엔 별이 희미하다. 지새는 별 곁에 서리 빛이 서늘하다. 지난 22일의 몇 시간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오래 전이 아니건만 아련하기만 하다. 그날, 그날은 이랬다.

그날 나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 살만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농민/노동자의 서러움을 외면하므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그들과 함께 하려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나는 충북체육관에서 충북도청까지 [한미FTA 저지하자]라는 표어를 안고 대표단 중심에서 행진했다.

눈을 감았지만, 인간이라는 이름의 왼편 동지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오른편 친구가 있어서 넘어지지도 않고 잘못 가지도 않았다. 인간을 유린하고 마침내 인류를 파멸시킬 저 광기(狂氣)의 자본과 신자유주의에 항거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지개를 들고 행진했다. 그리고 수십 년 전에 불렀던 [농민가]를 꺼내서,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를 비감히 불렀다.

보수언론은 22일의 시위를 폭도, 폭동, 폭력 등 온갖 악의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비난했다. 무법천지로 묘사하면서도 시위의 원인과 본질에 대해서는 무정(無情)히 외면했다. 그날의 시위를 친북좌파의 반미투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자들은 친미사대주의자요 농민/노동자는 죽어도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자인가. 농민들은 누가 선동한다고 동원되는 하위주체(subaltern)가 아니다.

그야말로 살 수가 없고, 미래도 캄캄하고, 이렇게 스러져가나 저렇게 사그러드나 매 한가지이기 때문에 사판이 이판이 된 것이다. 그날의 시위는 농민들의 전통적 항거방식인 민란(民亂)의 성격이 있다.

지치고 병든 양은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한국이다. 성장과 발전만이 미덕이고 인정과 사랑은 철없는 감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건강한 구십 마리의 양만 살면 그뿐, 천덕꾸러기 농민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내팽개치는 것이 오늘날의 정책이다.

세계화와 세계정부로 가는 FTA가 민족과 문화를 버리고 민중과 인간을 능멸하는데도 그래야 한국이 산다고 주장하는 것이 현 정부와 여당/야당이다. 핸드폰, 자동차, 반도체, 선박을 팔아서 농촌과 지역을 살게 해주겠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헛소리다.

농민은 비렁뱅이가 아니다. 농민은 자기 손으로 떳떳하게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은 것이지, 시혜적으로 베푸는 알량한 자선에 목을 맬 노예가 아니다. 배운 것도 많지 않고, 자본도 없고, 그저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갈고 가꾸어야 하는 농민들은 이 나라에서 버림받은 것이 서럽고 또 믿고 기댈 곳도 없기에 마지막 유서(遺書)를 남긴 것이다.

그래서 생긴 사태였다. 그날, 그렇게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면서 불렀던 [농민가]였다. ‘밝은 태양 솟아오르는 우리 새 역사’를 위하여 그 어색한 주먹을 들었던 것을 폭도라고 매도하니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예수 성상의 발끝의 못에 새벽이 비쳤다. 나는 성지(聖地) 광주를 불러본다. ‘여기는 청주 여기는 청주, 광주 광주 들리는가!’ 광주 또한 격렬한 시위로 아픔이 컸다고 알고 있다. 이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신자유주의 전쟁에서 우리 승리할 그날까지 잘 있거라 광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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